민간단체들 ‘눈먼 보조금’… “1865건 314억 부정 사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5일 03시 00분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대통령실 “1만2000여곳 감사 결과, 1조1000억 규모 사업서 비리 확인”
감사 범위 확대땐 부정수급 늘듯… 尹, 국민 신고 포상금제도 도입 주문

#1. 울산의 A 지역아동센터장은 2020∼2022년 국고 보조금으로 지급받은 센터 운영비를 본인 계좌에 입금한 뒤 포토샵 기술을 활용해 이체 증명서를 위조했다. 그는 보조금을 강사료나 소모품비로 업체에 정식 지불한 것처럼 위조해 225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2. 통일운동 단체인 B문화연합은 민족 영웅을 발굴한다는 명목으로 국고 보조금 6260만 원을 지원받았지만 ‘윤석열 정권 취임 100일 국정난맥 진단과 처방’ 등 관련이 없는 강의를 편성했다. 이어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강의 등에 강사비 211만 원을 지급했다.

국무조정실 총괄로 최근 3년간 국고 보조금을 받은 민간단체 1만2133곳에 대한 보조금 집행 실태 감사를 진행한 결과 이 같은 사례를 포함해 총 1조1000억 원 규모의 사업에서 1865건의 부정, 비리가 확인됐다고 대통령실이 4일 밝혔다. 현재까지 확인된 부정 사용액은 314억 원에 이른다. 이는 최근 3년간 민간단체에 지급된 보조금 가운데 6조8000억 원에 대한 감사 결과로, 감사 범위를 확대할 경우엔 보조금 부정 수급 및 사용 내역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관섭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 및 개선 방안’ 브리핑을 열고 “횡령, 리베이트 수수, 사적 사용, 서류 조작 등 다양한 유형의 부정행위가 적발돼 현재 확인된 부정 사용 금액만 314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어 “보조금 유용·횡령, 리베이트 등 비위 수위가 심각한 86건은 사법기관에 형사고발 또는 수사의뢰하고, 목적 외 사용과 내부거래 등 300여 건은 감사원에 추가 감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보조금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감시하지 않으면 보조금이 잘못 사용될 소지가 많다”며 “국민의 혈세를 국민이 직접 감시하는 포상금 제도를 (확대) 도입하는 등 앞으로도 계속 관리하라”고 주문했다고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에 지급될 보조금을 5000억 원 이상 감축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간단체 보조금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 부정이 적발된 사업, 최근 과도하게 증가한 사업, 관행적으로 편성된 사업, 선심성 사업 등은 과감히 구조조정할 것”이라며 “보조금 구조조정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향후 윤석열 정부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 사업비로 유흥업소 이용… 서류 ‘포토샵 조작’ 보조금 횡령
1865건 314억 부정사용
임원들 가족 폰 구입-통신비 지급
협회장 개인 사무실 임차비로 써
출장비 지원받아 해외여행 가고, 페이퍼컴퍼니 만들어 부정 수령

“국민 혈세를 쓰는 곳에 성역은 있을 수 없다.”(윤석열 대통령, 지난해 12월 국무회의)

대통령실이 4일 발표한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투명성 제고’를 위해 보조금 관리 체계를 전면 재정비하면서 이뤄졌다. 올 1월부터 4개월간 국무조정실 총괄하에 29개 부처가 실시한 일제 감사인 만큼,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한 보조금(3년간 약 5조7000억 원)은 감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럼에도 과거 수준을 뛰어넘은 수준의 횡령과 부정 사용 등 후진적 관행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게 대통령실의 인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비리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고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대통령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 직접 발표자로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 “보조금으로 협회장 개인회사 사무실 임차비”
이날 공개된 민간단체의 국고 보조금 부정 사례에는 보조금 횡령과 사적 사용, 거래업체 리베이트 수령을 비롯해 △가족, 임원 등 내부자 부당 거래 △서류 조작 등을 통한 부정 수급 △임의적 수의계약 등 규정 위반 사례가 다수 포함됐다.

사단법인 C협회는 2020∼2021년 이산가족 교류 촉진 사업을 명목으로 24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아 이 중 2000여만 원을 유용했다. 전직 임원의 휴대전화 구입비와 미납 통신비, 현 임원 가족의 통신비로 541만 원을 썼다. 또 협회장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중국 내 사무실 임차료로 1500만 원이 지출돼 수사 의뢰를 앞두고 있다.

전남의 D사회적협동조합은 이사장이 보조금 1000만 원 전액을 무단 인출해 개인적 용도로 쓰고 잠적해 연락이 두절되는 일이 빚어졌다.

E협회연맹의 사무총장은 국내외 단체 간 협력 강화를 명목으로 보조금을 지급받았지만 사적 해외여행(2건), 아예 출장을 가지 않은 허위 출장 1건 등 총 3건에 출장비 1344만 원을 착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기념품이나 책자를 만들겠다며 제작비 1937만 원을 받아 제작하지 않거나 지출 근거 없이 200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한 사실이 감사에서 드러나 형사 고발을 앞두고 있다.

업무추진비로 주류를 구입하고 유흥업소에서 사용한 단체도 있었다. 사단법인 F연합회 이사장 등 임직원은 2020년 통일 분야 가족단체 지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245건(1800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주류 구입 △보조금 사용 불가 업종인 유흥업소 등에서 사용하거나 △주말·심야 시간대에 쓴 것으로 조사됐다.

● “거래업체에 리베이트, 부부간 내부 거래도”
독립운동 관련 G기념사업회는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전시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비로 5300만 원을 업체에 지급한 뒤 500만 원을 돌려받는 등 거래업체 4곳에서 33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감사로 나타났다.

H사회적협동조합과 I교육은 2021년 지역산업 맞춤형 일자리 창출 사업에 참여해 보조금을 수령한 뒤 친족 간 내부 거래로 3150만 원을 집행했다. H조합은 I교육에 1900만 원 상당의 노트북PC 42대를 빌려줬는데, 두 단체의 대표가 부부 사이인 사실이 감사에서 적발됐다. H조합 대표는 처형이 대표인 다른 교육협동조합으로부터 1250만 원 상당의 노트북 20대를 임차한 사실도 드러났다.

시설과 기자재를 허위로 기재한 ‘페이퍼컴퍼니’로 일자리 사업 보조금 3110만 원을 부정 수령한 사례도 드러났다. J시민단체는 강의실, PC, 상근 직원도 없어 보조금 사업 수행 자격이 없는 페이퍼컴퍼니였다. 이 단체의 공동 대표 중 1명이 이사장인 학원의 시설과 기자재를 J시민단체 소유로 허위 기재해 보조금을 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대통령실은 “지난 정부에서 일자리 지원 사업이 과도하게 확대됐다”며 “대상자 모집이 어려워지자 무자격자를 선정하고 서류를 조작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고 전했다.

서류 위조 등 허위 증빙 서류를 활용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 노총의 K지역지부는 회계 서류를 조작해 숙박비, 식비 등 840만 원의 보조금을 부정 수급받았다. L탈북자협회는 ‘2021년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을 수행하면서 현수막 날짜만 변경해 사진을 촬영하거나 사진 날짜를 조작하는 방법 등으로 강사비를 부정 집행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 정부에서 보조금이 이례적으로 늘어난 게 확실하지만 부처 차원의 감시, 감사 시스템은 취약했다”고 지적했다.

[알려왔습니다] <민간단체들 ‘눈먼 보조금’… “1865건 314억 부정 사용”> 등 관련
본보는 지난 6월 5일자 정치 섹션에 <민간단체들 ‘눈먼 보조금’… “1865건 314억 부정 사용”>이라는 제목의 기사 등에서 통일운동을 한다는 A단체가 ‘묻힌민족영웅 발굴’을 명목으로 작년에 국고보조금 6260만원을 지원받았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해당 통일문화단체는 「정부 발표와 달리 6260만 원 중 4800만 원이 정부 보조금이고 1460만 원은 자부담이었으며, 실제로 지급받은 보조금은 1500만원이었고, 이는 회계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 그리고 강사비 211만원은 심사위원 수당으로 정당하게 지급된 것이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보조금#1865건 314억 부정 사용#포토샵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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