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亞안보회의서 만나 합의
한미일 “北미사일 궤적 등 경보정보
올해 안에 실시간 공유체계 가동”
한일이 2018년 12월부터 4년 반 남짓 끌어온 이른바 ‘초계기 갈등’을 봉합하기로 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4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제20차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하마다 야스카즈 일본 방위상과 회담한 뒤 한일 간 ‘초계기 갈등’에 대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8년 12월 동해상에서 한국 해군 함정이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를 향해 사격 통제용 레이더를 조준했다는 일본 주장과 그런 적이 없고 오히려 초계기가 저공 위협 비행을 했다는 한국 입장을 그대로 둔 채 한일 당국이 재발방지책을 논의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4년 반 만에 봉합하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일 국방장관이 회담한 것은 약 3년 6개월 만이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양측 입장 차가 오랜 기간 너무 분명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양측이 공감했다”며 “양국 정상이 신뢰를 구축해 나가기로 한 만큼 초계기 갈등 역시 양측 입장을 있는 그대로 두는 한편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위해 그런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한미일은 전날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계를 올해 안에 구축해 정상 가동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산하 하와이 연동통제소를 3국 간 실시간 경보 정보가 오가는 ‘허브’로 활용한다는 것이 3국의 구상이다. 실시간 공유될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는 북한 미사일 발사 시 발사 지점, 비행 궤적, 예상 탄착 지점 등 3가지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 정상이 합의한 실시간 공유 시스템이 가시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하마다 방위상은 3일 3자 회담을 연 뒤 공동 보도문을 통해 “북한 발사 미사일에 대한 각국의 탐지·평가 역량을 증진하기 위한 실시간 공유 메커니즘을 올해 안에 가동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韓日 ‘초계기 갈등’, 입장차 그대로 두고 봉합… “미래지향 공감대”
“日 위협 비행” “韓 레이더 조준” 4년 갈등 묻어두고 재발방지 협의 韓, 북핵위협 억제위해 日과 협력 中-러엔 “北 불법 행태 방기 안돼”
약 3년 6개월 만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도출된 한일 군 당국 간 ‘초계기 갈등’ 해법은 한일 각자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봉인’해 갈등을 ‘봉합’하는 방식이었다. 국방부는 4일 40여 분간의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끝난 후 보도자료를 통해 “한일 국방 당국 간 현안에 대해 재발방지책을 포함한 협의를 가속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국 군 당국 간 교류의 걸림돌이었지만 입장 차를 좁히기 어려운 초계기 갈등 문제에 대해 4년 반 만에 양국 모두 더는 양국 입장을 거론하지 않고 묻어두기로 한 것이다.
● 4년 반 한일 양국 입장 차 ‘봉합’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싱가포르 현지에서 취재진을 만나 “상대 입장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은 데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며 “갈등의 원인이 된 상황이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데 양국이 공감했다”고 했다. 이어 “(갈등 재발방지책은) 양측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지책을 만들어 향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초계기 갈등이 발생한 2018년 12월부터 일본은 “한국 해군이 일본 초계기를 향해 사격 레이더를 조사(조준)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해군이 자신들에게 사격하려 했다고 주장한 것. 우리 군은 그런 사실이 없고 오히려 일본이 별다른 이유 없이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저공 위협 비행을 했다고 맞섰다. 한일 모두 4년 6개월간 이 입장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양국 차관이 만나 이 문제와 관련한 의견을 교환하고 실무진 간 논의도 몇 차례 있었지만 입장 차를 좁힐 수 없다는 사실만 매번 확인했다.
양국은 오랜 기간 팽팽한 대치 끝에 ‘초계기 갈등’은 한쪽 손을 들어주는 식의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입장 차를 좁힐 수 없다면 3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과 지난달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한 등으로 한일 셔틀 외교가 복원되고 양국 정상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수차례 강조하고 있는 만큼 국방 당국도 이를 따르는 취지로 갈등을 봉합하고 양국이 재발방지책을 논의하기로 한 것.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3일 샹그릴라 회담 본회의 연설 이후 한일 관계를 묻는 청중의 질문에 “한일 관계는 과거에 매몰되기보다 미래지향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양국 간에 형성돼 있다. 특히 북핵 위협은 (한일이) 함께 해결해나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밝히며 초계기 갈등을 매듭지을 것임을 시사했다.
● 美국방 “도쿄-서울 강한 연대 모두에 좋아”
양국이 이 갈등을 묻어두기로 한 배경에는 북한의 위협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공동 평가도 있었다. 국방부는 “한일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고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를 증진하기 위한 한일·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한미일 3국 간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 체계 구축을 주도하고 있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3일 샹그릴라 회담 본회의 연설에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한일 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오스틴 장관은 “미국은 한일이 더 긴밀히 협력하기 위해 취한 과감한 조치(bold steps)에 경의를 표한다”며 “도쿄와 서울의 강한 연대는 양국과 역내 지역 모두에 좋은 것”이라고 했다.
● 이종섭, 중-러에 “일부 국가 北 불법 행태 방기”
이 장관은 3일 한중 회담에선 리상푸(李尙福) 중국 국방부장에게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해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장관은 샹그릴라 본회의 연설에서도 “일부 국가는 규칙 기반의 질서를 위반하는 북한의 불법적 행태를 방기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를 통해 결의했던 대북 제재에 틈이 발생하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했다.
한일 초계기 갈등
일본이 2018년 12월 20일 동해상에서 한국 해군 함정이 해상자위대 초계기를 향해 사격용 레이더를 조준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진 한일 갈등. 우리 군은 표류 중이던 북한 어선을 찾기 위해 레이더를 가동했을 뿐 초계기에 사격 레이더를 조준하지 않았고 오히려 초계기가 우리 함정을 향해 저공 위협 비행을 했다고 반박했다. 이후 한일 군 당국 간 교류가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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