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를 버는 민주당식 화법 [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2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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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말이 있죠. 요즘 연일 설화로 일을 키우는 더불어민주당에 딱 맞는 표현입니다. ‘천안함 자폭’ 발언으로 당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지 9시간 만에 사퇴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민주당 특유의 스스로 ‘매를 버는’ 화법이 돋보이더군요.

“그런데 천안함 함장은 무슨 낯짝으로 그런 얘기를 한 거지? 부하들 다 죽이고 어이가 없네. 원래 함장은 배에서 내리는 것 아니다.”
이 이사장이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던 지난 5일 저녁, 당 고위전략회의를 마치고 나온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 이사장의 사퇴 필요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이같이 답했습니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이 이 이사장의 ‘천안함 자폭’ 발언에 강력 반발하자 ‘본인은 부하들을 버려두고 자신만 살아남은 사람 아니냐’는 취지로 비판한 겁니다.

해당 발언이 곧장 기사화되고 논란이 되자 권 수석대변인은 다시 당 대표실로 들어갔습니다. 이때만 해도 “실언이었다”라고 바로 사과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30여 분 뒤 권 수석대변인은 당 공보국 문자메시지를 통해 아래와 같이 공지하더군요. “책임도 함께 느껴야 할 지휘관은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에서 한 말”이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은 거죠.


● 어떤 실언도 ‘서로 감싸기’
매도 나눠 맞자는 걸까요. 다음날부터는 민주당 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가 이어졌습니다.

“최고위원회가 끝나면 기자들이 딱 서 있어요. 그걸 ‘백브리핑’이라고 하거든요. (중략) 백브리핑이 끝나고 걸어가는 중간에 기자가 사적으로 물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백백브리핑’이라고 합니다. 아마 권칠승 수석님이 지나가는 말씀으로 한 것 같은데 그게 뉴스가 된 것이지요.” (박성준 대변인, 6일 SBS 라디오)

지나가는 말은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요. 진행자도 같은 의문이 들었는지 “그래도 지나가는 말이라고 하기엔, 어제 그 상황에서 당의 수석대변인 입에서 나온 언급이라고는 너무 강한 내용이 아닌가, 부적절한 내용이 아닌가라는 여당의 비판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박 대변인은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장수, 함장, 아니면 장군 등, 보통 이런 혁신위원장 문제가 있었을 때도 당 대표가 사의 표명하고 이렇게 하는 과정들이 있는 것처럼 아마 그런 원론적인 입장에서 얘기한 것 아닌가 싶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당황해서 그런 건지 답변이 조금 꼬인 듯한데 이재명 대표는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죠.

한 지도부 소속 의원도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권 수석대변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적 대화 같은 상황에서 발언했다고 하더라. 툭 물어보는 그런 식의 대화였는데 기사로 써버린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 사적 자리에서 한 말을 갖고 (징계하고) 그러면 기자들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듣고 쓴 기자가 문제라는 겁니다.

●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도 민주당 특유의 화를 키우는 화법입니다.

장경태 최고위원도 7일 오전 CBS라디오에서 “백브리핑을 마치고 기자들이 따라 붙는 과정에서 혼잣말로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군대에 다녀와 봤지만, 지휘관으로서의 책임감을 좀 느꼈으면 좋겠다, 어찌 됐건 소중한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런 발언이 강경하게 나온 걸로 이해를 하고 있다”라고 덧붙이더군요. 이어 최 전 함장을 겨냥한 듯 “어찌 됐건 군인이라면 경계에 실패하거나 여러 가지 침략을 당한 것도 어찌 됐건 그 부분에 대한 책임감도 결국 있다. 예를 들면 탈영병이 발생했거나 북한 군인이 DMZ를 넘어오면 그 지휘관은 보직 해임된다. 그러니까 그런 정도의 지휘권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셨으면 좋겠다”라고도 했습니다.

최 전 함장은 또 한 번 페이스북에 “사과 없이 최고위원들을 공격수로 내보내나요? 유족, 생존자와 함장 갈라치기로 방향을 바꾸셨네요. 이재명 대표님! 자중시키시고 더 이상 시간 끌지 마세요. 고소장만 늘어납니다”라고 반발했습니다.
천안함 생존 장병 전준영 씨가 7일 오후 서울 국회의원회관의 권칠승 의원실을 항의 방문해 면담을 기다리고 있다. 전 씨는 “너무 분해서 찾아왔다”라고 했다. 뉴스1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논란에 권 수석대변인은 결국 발언 이틀만인 7일에야 국회에서 머리를 숙이고, 8일엔 최 전 함장을 직접 만나 사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천안함 생존장병 전준영 씨가“아침부터 너무 울었다. 너무 분해서 몸이 덜덜 떨리고 일이 안 잡혀서 왔다”라며 권 수석대변인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항의차 방문하기도 했죠. 곧장 말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될 일을, 이틀간 여러 사람 마음고생 시키고 일을 키운 셈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이 6월 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자신의 천안함 관련 막말 논란과 관련해 천안함 장병과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뉴스1
이 이사장의 자질 논란을 두둔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을 키우는 민주당식 이상한 화법이 대거 나왔습니다. 7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장경태 최고위원이 쏟아낸 말들입니다.

“인사 검증만으로 책임져야 한다면 정말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장관을 추천한 대통령의 책임도 당연히 물어야겠죠.”
“저희가 외교안보위원장을 추천한 것도 아니고 당의 쇄신을 맡기고자 하는 부분인데요. 이래경 위원장을 외교안보위원장으로 모신 건 아니잖아요.”
“저희가 무슨 ‘슈퍼스타K’ 하는 것도 아니고, 혁신위원장을 한 10명 추천받아놓고 거기서 국민투표도 하고 인사 검증도 하고 그러면 아주 클리어한 분이 추천될 수 있겠죠. 그런데 혁신위원장은 슈퍼스타K는 아니다(라는 거죠).”

갑자기 윤 대통령으로 화살을 돌리는가 하면, 상임위원장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따지느냐는 취지로 반박하다가, 오디션 프로그램하듯 공개적으로 뽑을 수는 없다고 변명도 합니다. 물론 장 최고위원 주장대로 민주당을 쇄신하기 위한 혁신위원장이니, 민주당 마음대로 뽑아도 되긴 하겠죠. 하지만 세비를 지원받는 공당의 새 핵심이 될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가 심각한 사회적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적 발언을 과거에 한두 번도 아니고 수차례 해왔다는 점에 대해 우리가 문제제기는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지적도 못하게 할 거면 선거 때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해선 안 되겠죠.

● ‘모르쇠’로 버티다 ‘남 탓’
매를 버는 화법의 대미는 역시 수장답게 이재명 대표가 장식했습니다. 이 대표는 논란 당일 “(이 이사장 발언의) 정확한 내용을 몰랐다”고만 한 이후 내내 침묵을 이어갔습니다. 이 이사장이 자진사퇴를 발표한 지 4시간 뒤인 밤 11시 45분엔 자신의 트위터에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실 보좌관이 퇴직 후 코인거래소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는 기사를 달랑 올렸더군요. 한 때 이어가던 ‘(국민의힘) 박순자는요’, ‘김현아는요’ 시리즈의 연장선상인가 봅니다.
이재명 대표가 5일 밤 11시 45분 트위터에 올린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 보좌관 관련 기사 링크.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천안함 자폭’ 발언 논란으로 당 혁신위원장에서 자진사퇴하겠다고 밝힌 직후다. 트위터 캡쳐
이재명 대표가 5일 밤 11시 45분 트위터에 올린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 보좌관 관련 기사 링크.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천안함 자폭’ 발언 논란으로 당 혁신위원장에서 자진사퇴하겠다고 밝힌 직후다. 트위터 캡쳐
결국 이 대표가 관련해서 첫 공식 입장을 내놓은 건 사태 이틀 만인 7일 오전 11시였습니다.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이 대표는 ‘대표가 직접 해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최원일 전 함장과 면담할 계획이 있나’, ‘대표 사당화라는 비판이 있다’라는 등의 질문에 답하지 않더니 “대표 책임론이 나오고 있다”는 말에 이렇게 답합니다.

“당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당 대표가 언제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죠. 당 대표가 권한을 가진 만큼 내부 논의를 충분히 했든 안 했든, 충분히 다 논의하고 하는 일입니다만, 결과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 당 대표가 하는 일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냐’, ‘사과할 계획이 있느냐’, ‘거취 문제 등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말로 해석해도 되나’라는 질문에는 또다시 침묵하고 지나갔습니다. 이 대표 특유의 ‘선택적 답변’ 화법이죠.

당내에서조차 “안 하느니만 못한 입장 표명”이란 비난이 쇄도했습니다. 한 비명계 초선 의원은 “무한책임이 대체 무슨 의미냐. 뭐 어쩌겠다는 거냐. 인정하고 반성하는 순간 저쪽(국민의힘)이 공격할 테니 절대 사과는 하면 안 된다는 의식이 기저에 깔린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초선 의원도 “책임을 지려면 사퇴하는 게 맞다. 사퇴할 생각은 없을 테니 ‘무한 책임’이란 말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라고 일축했습니다. 한 재선 의원은 “그냥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평가 절하하더군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오른쪽)가 미리 준비해 온 모두발언 원고를 꺼내 읽는 것을 듣고 있다. 동아일보 DB
이 대표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의 ‘굴욕 대담’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야당의 노력에 대해 이런저런 폄훼를 하고 비난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의 태도는 아니다”라며 “(싱 대사와) 싸우러 간 것이 아니라, 관계를 개선하고 대한민국 국익을 지켜내기 위해 공동으로 협조할 방향을 찾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일 아니겠나”라고 반박했습니다. “그게 바로 외교”라고 훈수도 뒀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남의 탓부터 하고 보는 그 자세가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겁니다.

옛말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도 있죠. 민주당 지도부가 애초에 쓸데없는 말을 줄이고, 불필요한 첨언으로 화를 더 하지만 않아도 당 지지율이 지금보다는 훨씬 올라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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