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 사이 정부 산하 기관 등에 고위·전문직 출신 탈북 인사를 등용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관계를 의식해 엘리트 탈북민들의 공개 채용을 꺼린 문재인 정부와 대조된다. 최근 해외에 나온 북한 외교관 등의 이탈 조짐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엘리트 출신 탈북 인사들이 통일·대북정책 수립이나 북한 정세 분석에 참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11일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 이후 정부 산하 위원회 등에 새로 임용된 고위·전문직 출신 탈북 인사는 최소 1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략연은 올해 초 탈북 외교관 등 3명을 연구위원으로 임용했고 퇴임했던 탈북민 연구원을 다시 초빙해 탈북 출신 연구원 7명으로 진용을 꾸렸다. 전략연 관계자는 “이들은 북한 매체들의 보도와 지면배치만 보고도 정보를 추출해 내는 능력이나 행간을 해석하는 능력이 남다르다”며 “앞으로 국가 정책에 이바지할 탈북민들을 더 뽑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올해 2월 정부의 ‘신통일미래구상’을 수립하기 위해 출범한 통일부 산하 통일미래기획위원회에도 5개 분과마다 5명의 고위직·전문직 탈북민들이 각각 참여하고 있다. 북한에서 주체철학을 가르쳤던 대학 교원 출신 현인애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위원(66·여)은 사회문화분과위원장을 맡았다. 3월 출범한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증진위원회(12명)에는 탈북민 위원이 3명 참여해 북한 인권 증진 정책 수립 및 공감대 확산 사업 등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2명), 통일교육원 교수(2명)직도 문이 열렸다.
북한에서 정치교육 교원이었던 엄현숙 국립통일교육원 교수(46·여)는 2016년 북한학 박사 학위를 딴 뒤 지난해 7월 교육원에 임용됐다. 엄 교수는 “통일 정책에 ‘우리 의견이 반영될 수 있고 우리가 기여할 수 있구나’ 하는 자긍심이 생겼다”며 “우리가 중용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될 많은 탈북민이나 해외에서 탈북을 시도할 (북한 엘리트) 직원들에게는 새로운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탈북민들이 정부 기관에 등용되는 것은 ‘먼저 온 통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고위급 탈북 인사들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제일 섭섭했던 건 고위급 탈북자들의 상황을 외면했다는 것”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중책을 맡게 된다는 사실이 널리 퍼져야 탈북을 고민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에도 동요가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엄 교수는 “고위급 인사들을 방치하면서 그들이 가진 고급 정보를 묵히는 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고위 탈북인사, 대북문제 해결 플러스 될 것”
안보전략硏 탈북 외교관 인터뷰 “지난 정부서 배제돼 배신감 느껴”
“한국으로 들어온 북한 외교관은 (모두) 20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 고위급 탈북 인사들을 중용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북한과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반드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해외 지역에서 양자 외교와 정무관계를 담당하다가 탈북한 50대 참사관급 탈북 외교관 A 씨는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6년 전 탈북해 한국행을 택한 그는 올해 4월 국가정보원 산하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원으로 임용됐다.
A 씨는 “지난 정권에서 생계를 위해 막노동판에도 다녀봤다”고 했다. 그는 “애초에 미래 세대들의 앞날을 위해 오다 보니 한국 정부에서 우리를 중용해야 할 의무나 기대감이라는 게 없었지만 우리(탈북민)를 배제하고 평화라는 정치적 허울 아래 남북관계를 형성하려는 데 소외감보다 배신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특히 2019년 11월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은 그 배신감이 가장 극대화됐던 지점이라며 “한국을 희망의 등대로 여겼던 2500만 북한 주민들을 저버린 사건”이었다고 평했다.
A 씨는 “남북 경색 국면에는 찬밥 신세가 되기 쉬운데 이런 때일수록 제한된 정보를 읽어내 전술전략적으로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게 엘리트 탈북민들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탈북 고위 인사들의 중용은 탈북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한국에서의 쓰임새를 확신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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