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부 “中 고압적 언행 좌시안해… 국민 자존심 세우는 외교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3일 03시 00분


“국민 자존심 세우는 외교로”
대통령실, 싱하이밍 中대사 비판
“본국-주재국 이익 해칠 수 있어”

정부의 대중국 정책이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 발언 논란을 계기로 중국의 고압적인 외교 언사와 태도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는 강경 기조로 바뀐다. 중국 정부의 언행이 도를 넘는 등 ‘차이나 리스크’가 본격화하고 있다고 판단한 정부가 대중(對中) 정책 방향을 더욱 선명화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대중 관계 기조로 ‘국민 자존심을 세우는 외교’에 방점을 찍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12일 “중국의 고압적이거나 (한국을) 무시하는 언행을 이제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민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리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의) 색깔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반중 감정이 치솟고 있는 배경에 문재인 정부 당시 보인 ‘저자세 외교’가 있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국을 ‘높은 봉우리’라고 한 (문 전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민들 자존심이 무너졌고, 그게 중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변했다”며 “당당한 외교를 하면 반중 감정도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핵심 관계자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3각 군사동맹 불가)과 관련해 중국과 협의할 대상이 아니라며 특히 “사드 3불도 바꿀 필요가 있다면 안보적 필요성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공급망 핵심 품목과 관련해선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나가는 ‘디리스킹’(탈위험)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방침이다. 이에 음극재와 같은 배터리 핵심 소재 등 중국 의존도가 특히 높은 품목들 현황부터 정밀 파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싱 대사에 대해 “본국과 주재국을 잇는 가교 역할이 적절하지 않으면 본국과 주재국의 국가적 이익을 해칠 수 있다”며 “외교관은 주재국 내정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이 직접 특정 국가 대사를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與 “오만한 싱하이밍 추방을” 韓총리 “외교관으로 부적절 행동”


당정 ‘中대사 발언’ 비판… 野 언급 자제
박진 “모든 결과는 대사 본인 책임”
與 “野, 中이라면 쩔쩔매는 DNA”
野 “우리만 중국과 대결적 정책”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이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윤 의원은 “후쿠시마 오염수 무단 해양방류를 반대할 의향은 없느냐”라고 물었고, 박 장관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안전하게 검증되지 않으면 방류하는 것은 안 된다고 (일본에)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이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윤 의원은 “후쿠시마 오염수 무단 해양방류를 반대할 의향은 없느냐”라고 물었고, 박 장관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안전하게 검증되지 않으면 방류하는 것은 안 된다고 (일본에)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싱하이밍(邢海明) 대사는 상습적으로 대한민국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여 온 사람이다.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해 추방해야 한다.”(국민의힘 김석기 의원)

“미국, 유럽연합(EU)도 중국에 대해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해서 관계 조정하겠다는데, 우리만 중국과 대결적 언사와 대결적 정책을 쓰고 있다.”(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

12일 국회 대정부질문 첫날 여당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에서 나온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중국의 외교 행태를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미국, 일본 일변도의 외교 정책을 펴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고 맞섰다.

● 외교적 기피 인물 요구에 박진 “모든 결과 邢 책임”

여당 의원 중 첫 질의자로 나선 김 의원은 “이 대표가 일개 외교부 국장급에 불과한 주한 중국대사를 찾아가 15분간 지극히 무례하고 대한민국을 협박하는 내용의 발언을 듣고도 항의 한마디 안 했다. 이런 것이 굴욕적 자세 아닌가”라며 “민주당은 중국이라면 쩔쩔매는 DNA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도 “대사가 주재국을 향해 이렇게 무례하게 발언을 해도 되는 것인지, 빈협약과 외교 관례에 심히 어긋난다”며 싱 대사에 대한 외교적 기피 인물 지정을 언급했다.

정부도 결을 맞췄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싱 대사가)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과 같은 언사를 한 것은 외교관으로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이었다”고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싱 대사에 대한 외교적 기피 인물 지정 요구에 “외교부는 모든 결과가 대사 본인의 책임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경고했다”고 말했다.

반면 야권은 싱 대사 언급을 자제하는 대신 한중 관계 악화를 거론했다. 윤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진영외교, 가치외교를 내세워 과도하게 중국 러시아에 적대적인 언사를 해서 우리 경제와 기업에 부담을 준 건 사실 아닌가”라며 “그 결과 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싱 대사가 이 대표와의 회동에서 “한국의 대중국 무역적자 확대는 탈중국화 추진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과 비슷한 인식을 내보인 것.

● 대통령실 “邢, 한중 국가적 이익 해칠 수 있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싱 대사를 겨냥해 “가교 역할이 적절하지 않다면 본국과 주재국의 국가적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이 직접 주재국 대사를 강도 높게 성토한 건 이례적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도 “싱 대사가 현재 한중 관계에서 플러스 요인인지 마이너스 요인인지 중국 측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며 “싱 대사 부임 이후 한국의 대중국 인식이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의 싱 대사 비판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브리핑에서 “한국 각계 인사들과 폭넓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이 싱 대사의 책무”라며 “그 목적은 중한 관계의 발전을 유지하고 추동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발언의 파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싱 대사가 고액의 접대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싱 대사는 5월 경북 울릉의 한 고급 리조트 독채 풀빌라에서 일행과 1박을 했다. 싱 대사는 고가의 숙박비를 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리조트를 운영하는 A사 관계자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피해자 유족을 위한 차량을 지원했는데, 중국인 유족들도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며 “중국대사관이 먼저 고맙다면서 감사패를 보내와서 우리도 답례 차원으로 제안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싱 대사는 지난해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정책과 관련해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문제가 많다”며 장청강 주광주 중국 총영사에게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대사관이 싱 대사 부임 이후인 2020년 4월부터 서울 용산구에 있는 공관원 숙소 부지를 사설 주차장으로 대여해 수익을 챙겼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동아일보는 의혹에 대한 싱 대사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중국대사관에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중국#고압적 언행#차이나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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