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외교 마찰]
대통령실 “中의 적절한 조치 기다려”
中 “인신공격 유감” 사실상 조치거부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나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킨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에 대해 “(조선) 국정을 농단한 (청나라) 위안스카이를 떠올린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부적절한 처신에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13일 정부와 대통령실 관계자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공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싱 대사의 태도를 보면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이나 우호 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싱 대사의 언사가) 20대 초반인 1880년대 국정을 농단한 위안스카이를 떠올리게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23세 때인 1882년 임오군란 진압 명목으로 조선에 온 위안스카이가 1885년 조선 주재 교섭·통상 대표를 맡아 조선의 내정과 외교에 간섭한 일까지 이례적으로 거론한 것.
윤 대통령은 또 “중국대사라 하니 2인자라도 되는 줄 알고 못 만나서 안달 난 부분이 있는데 예의 주시하고 경계해야 한다”며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했다. 이어 “(한중 간) 정책에서도 ‘상호주의’에 위배되는 것이 있다면 철저하게 제도를 바꿔 나가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중국 측이 이 문제를 숙고해 보고 우리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싱 대사 교체나 경고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적절한 조치’ 관련 질문에 “한국 측의 관련 입장 표명과 함께 일부 매체가 싱 대사 개인을 겨냥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심지어 인신공격성 보도를 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를 겨냥해 “1880년대 20대 초반에 국정을 농단한 위안스카이를 떠올린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직격한 것은 싱 대사가 주한 중국대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뜻을 강하게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과 여권 핵심 인사들이 비공개를 전제로 싱 대사를 조선 말기 내정에 간섭했던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에 비유하곤 했지만 윤 대통령이 이 같은 세간의 평가를 회의석상에서 직접 소개한 것은 무게감이 다르다.
대통령실은 싱 대사에 대해 “중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싱 대사 교체 등의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정부는 싱 대사의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 지정은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 尹 “2인자라도 되는 줄 알고 못 만나서 안달”
윤 대통령은 또 “중국대사라 하니 2인자라도 되는 줄 알고 못 만나서 안달이 난 부분이 있는데 예의주시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패권 경쟁 구도 속에 한국의 여러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싱 대사와 만남을 갖고, 싱 대사의 민원 등을 청취해 온 상황이 여권에 널리 알려졌는데, 윤 대통령이 사실상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 관저로 직접 찾아가 성사된 만찬에서 싱 대사가 공개 발언으로 한국 정부를 정면 비판한 점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 대표를 비판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아울러 국무회의에서 “정책에서도 한중 간 상호주의에 위배되는 것이 있다면 철저하게 제도를 바꿔 나가자”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투표권, 건강보험 적용 등 한국 거주 중국인에게는 허용되는데 중국 거주 한국인은 누리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대중 정책에 대해 ‘상호주의’와 ‘상호존중’을 강조했다고 한다. 1992년 수교 후 이어진 한중 관계를 심화시키되 ‘국익과 원칙에 입각한 당당한 외교 기조’라는 원칙이 훼손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 주권과 권익에 대해 국익과 원칙에 기반해 일관되고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했다.
● 대통령실 “중국, 적절한 조치 기다린다”
이 같은 기류 속에 대통령실은 브리핑에서 싱 대사의 발언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중 무역 관계를 설명한 (싱 대사의) 논리 자체가,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며 싱 대사를 비판했다. 싱 대사가 한국의 대중 무역 적자에 대해 “탈중국화 추진을 시도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한 데 대한 반박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국의 부품 자급률이 높아지는 등 복합 요인이 작용해 2018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향 추세를 보여 왔다”며 “무엇보다 한국이 탈중국을 선언한 적도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한국이)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다”는 싱 대사의 발언도 비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헌법정신에 기초해 자유민주주의 동맹국과 협력하며 동시에 중국과 상호 호혜 입장을 밝혀 왔는데, 마치 그런 정책이 편향적이고 특정국을 배제하는 듯한 곡해된 발언을 했다”고도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싱 대사가 주재국 대사로 역할 하기 어렵게 된 만큼 명확한 중국 측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국에 온 외교관으로서 아무리 문제점이 느껴진다고 해도 그것을 비공개로 풀어 나가고 국민 앞에선 빈협약을 지켜서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런 취지에 어긋났다”고 덧붙였다.
이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중국에 대해 “주권 국가에 대한 압박 전술”이라고 비판하며 중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해 “명백히 압박 전술(pressure tactic)의 일종으로 보인다”며 “한국은 중요하거나 적절하다고 여기는 외교정책 결정과 관련해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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