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초유의 인사번복 파문
김규현원장 측근 인사전횡 논란… 측근과 함께 근무한 2인 임명 시도
대북업무 국장에도 측근의 동기
일각 “인사불만에 金원장 흔들기”
국가정보원이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 5일 만에 뒤집은 1급 간부 인사에서 미국과 일본 정무2공사 자리에 김규현 국정원장(사진)의 측근 A 씨(2급)와 함께 근무했던 국내 정치과 출신 인사를 임명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정보 수집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비전문가를 핵심 외교 지역 거점장에 앉히려 했다가 인사가 철회됐다는 설명이다. 미국과 일본 거점장과 함께 인사가 난 대북업무 국장급(1급)에도 A 씨의 1993년 국정원 입직 동기인 3급 간부가 올라 논란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A 씨가 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한 의혹을 확인하고 직접 인사를 철회했다.
1급 간부 인사가 철회될 당시 국정원 인사담당자도 함께 경질됐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국정원은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인수위원회에서 일한 국정원 공채 출신 B 씨를 다른 직급의 새 인사담당자로 임명해 인사 철회로 공백이 된 후임 보직 인선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국정원 인사 번복 파동에 대해 문제를 진단하기 위한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 “대북업무 국장에 인사전횡 의혹 A 씨 동기”
정보 관계자는 15일 “문제가 된 이번 인사는 전문성이 우선 고려됐다고 보긴 어려운 인사였다”며 “‘해당 지역과 분야에 정통인 사람이 아니라 비전문가들을 앉혔고 알고 보니 A 씨의 사람이더라’는 게 직원들의 이야기”라며 “해외 정보 업무나 지역에 대해 잘 모르는 인사를 앉히니 당연히 말이 나왔다”고 했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도 “국내 정치를 담당했던 인사가 본부 보직이 아닌 핵심 외교 지역의 거점장으로 간다는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이 재가 뒤 인사를 뒤집은 결정적 배경에는 A 씨의 동기 등 특정 인맥이 보직을 차지했다는 것과 함께 전문성 시비가 불거질 인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일 거점장과 함께 이번 인사에서 대북업무 관련 국장으로 임명됐다가 취소된 3급 간부를 놓고도 뒷말이 무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훈 전 국정원장 시절 3급 이상 승진 최소 소요 기간(승진 연한)을 없애 제도적으로 승진은 가능하지만 1급 자리를 ‘1·2급 공통(보직 가능)’으로 해놓고 이 자리에 A 씨의 국정원 공채 동기인 3급 간부가 임명되자 반발이 상당했다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개인 사정이 있어 정상적인 업무를 볼 수 없는 상황인데도 A 씨의 동기가 1급으로 고속 승진하면서 중간에 임명에서 배제됐다고 생각하는 2, 3급 고참급 간부들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인사 결정 과정에 대한 불만 누적”
상당수 정보당국 관계자는 이번 인사 번복 파동을 두고 “A 씨의 인사 전횡 논란으로만 단언할 수 없다”면서도 “김 원장과 지난해부터 단행된 인사 결정 과정을 놓고 누적된 불만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인사(담당) 라인에서 지난번 2급 해외지역 공사들을 인사할 때 담당 차장과 국장에 대한 보고나 교차 확인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때도 국정원 안팎에서는 인사 라인이 담당을 거치지 않고 A 씨를 통해 인사를 보고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인사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현 국정원장을 흔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들은 조직 정상화를 위해 직원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정권이 바뀌어도 영향을 쉽게 받지 않는 제도화된 인사 시스템을 조속히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 인사는 “직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개혁 시도는 실패한 것”이라며 “공정과 상식이 인사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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