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은 말 그대로 천체 주위를 돌도록 만든 인공구조물이다. 인간 힘으로 지구 밖 우주에 뭔가를 올려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돈도 많이 든다. 우주개발을 시도하는 나라 대부분이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경제 수준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5월 한반도에서는 남북한 모두 위성 발사를 시도했다.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가진 대한민국은 5월 25일 위성 8개를 실은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 이를 시샘했는지 같은 달 31일 무리하게 위성 발사를 강행한 북한은 ‘천리마-1형’ 로켓이 서해에 추락하는 실패를 지켜봐야 했다.
희비 교차한 남북한 우주개발
사실 북한은 남한보다 먼저 우주개발을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발사를 시작한 대포동 시리즈를 두고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한 번 발사하는 데 3억 달러(약 3820억 원) 정도 돈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식량 살 돈으로 로켓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김정일 위원장이 죽기 얼마 전인 2009년 발사된 ‘은하-3호’와 여기에 실린 ‘광명성-3호’ 발사 비용은 8억5000만 달러(약 1조800억 원) 정도로 추산됐다. 천리마-1형 발사에는 은하-3호 발사 때보다 더 많은 돈이 소요됐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최근 중국으로부터 쌀 수입을 크게 늘렸다. t당 450달러(약 57만 원) 정도에 쌀을 수입해 다급한 식량난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번 위성 발사 실패로 쌀 200만t을 살 수 있는 돈을 날린 셈이다. 일부 북한 전문 매체는 “북한이 발사 실패와 연속 발사에 대비해 천리마-1형 예비 기체를 여럿 만들어뒀다”고 관측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북한이 전 인민에게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일 수 있는 돈으로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모든 인민이 기와집에 살고 쌀밥에 고깃국을 실컷 먹여야 한다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무색해지는 이런 짓을 북한은 왜 계속하는 것일까.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확보하려는 이유는 자기들의 ‘펀치’를 좀 더 정확히 날릴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서다. 올해 초부터 북한이 쏴댔던 다양한 미사일과 드론은 유사시 한국을 위협할 ‘펀치’다. 북한은 이제 원하는 곳에 이런 펀치를 정확히 날릴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2021년 6월 11일 조선노동당 제8기 중앙군사회의 확대회의에서 중대 결정을 내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시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미국의 대조선(북한) 압박은 비핵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염두에 둔 국제정치적 전략의 일부”라고 규정했다. 김 위원장은 이런 교시에 덧붙여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돼 전쟁이 발발했을 때 중국 편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전략군 개편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 후 북한은 말 그대로 중국의 전위(前衛)가 된 셈이다.
중국과 북한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다. 북한은 미국의 서태평양 대중(對中) 전진 군사기지로부터 중국 본토를 지키는 완충구역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이 완충구역 역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전략자산을 갖춘 후 서태평양 지역 미국 전략자산과 미 동맹국들을 견제·제압하는 역할까지 맡는다면 어찌 될까. 중국으로선 이보다 고마운 일이 없을 테다. 대만과 유사시 북한이 한미일의 군사적 개입을 억제, 차단해주거나 미·중 충돌 국면에서 북한이 한국·일본과 서태평양 지역 미군 전략자산을 대신 핵공격 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핵전력에서 열세인 중국이 미국에 직접 핵공격을 가하는 것은 말 그대로 멸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핵공격을 북한 내 일부 강경파의 돌발 행동으로 꾸밀 경우 북한 지역에 군대를 보낼 구실까지 얻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전력 강화를 막을 이유가 없다.
北 위성은 유사시 美 항모 전단 위치 파악용
북한은 3월 다양한 유형의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 이른바 ‘핵 반(反)접근/지역거부(Anti-Access/Area Denial·A2/AD)’ 개념을 선보인 것이다. 당시 북한은 지하 사일로에서 기습 발사한 전술탄도미사일을 800㎞까지 비행시킨 후 800m 상공에서 모의 핵탄두를 터뜨리는 시범을 보였다. 이때 발사 원점부터 동해상 탄착점까지 가상의 선을 긋고, 이 선을 그대로 남쪽으로 돌리면 제주 남동 해역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당시 이 해역에는 F-35B 전투기를 실은 미국 ‘마킨 아일랜드’ 강습상륙함 전단이 있었다. 당시 북한이 발사한 화살-1·2형 순항미사일과 해일-1·2형 수중 핵 자폭드론 역시 미국 항공모함(항모) 및 상륙함 전단을 노린 것이다. 북한이 이런 무기를 미 항모 전단에 정확히 투사하려면 적어도 1시간 단위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 눈이 바로 북한이 이번에 발사를 시도한 ‘만리경-1호’다.
국가정보원은 만리경-1호가 1m급 해상도를 가진 광학정찰위성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가로세로 1m를 하나의 픽셀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급 해상도의 위성이 상용화된 상황에서 대단한 성능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 추적하려는 목표물의 크기가 길이 300m, 폭 70m를 가뿐히 넘는 덩치라면 이 정도 해상도로도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정찰위성은 500~1500㎞ 저궤도·극궤도에 올려놓는다. 그래야 하루 2번 같은 지역의 상공을 지나며 정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주간 정찰용 광학정찰위성 7~8개와 야간 정찰용 레이더 정찰위성 3~4개를 발사할 경우 1시간에 한 번씩 미 항모 전단 위치를 확인하는 정찰 능력을 갖게 된다. 미 항모는 최대시속 60㎞ 정도밖에 못 내기 때문에 1시간에 한 번 위치와 항해 방향을 파악한다면 공격이 가능하다. 북한 기술력으로 구현이 불가능한 위성 정밀도는 수십 킬로t 위력의 높은 파괴력, 즉 핵탄두가 해결해줄 것이다.
위성 소프트·하드 킬 겸비한 미군
북한은 다양한 타격자산과 정찰위성을 연계해 운용하기 위한 전담 조직도 신설했다. 지난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의결로 같은 해 10월 ‘무력총사령관 핵전쟁 억제력 강화발전을 위한 사업’이라는 명령서가 북한 전략군에 하달됐다. 그 결과 북 전략군 산하에 ‘우주전략부’라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당시 북한 당국은 “전략군에 대량 배치될 군사정찰위성은 전술핵 운용부대의 눈과 귀, 신경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만리경-1호 같은 정찰위성이 북한판 핵 A2/AD 자산의 표적 획득 수단으로 전략군 통제하에 운용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정말 미국 항모 전단을 원거리에서 핵으로 정밀 요격하는 북한판 핵 A2/AD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일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선 대단히 원통하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이 이미 대응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2021년 2월 1일 주한미군 군산기지 제607항공작전센터에서 일부 공군 병력의 우주군 전속(轉屬) 행사가 열렸다. 이들은 우주군의 일부로 군산에 상시 배치돼 유사시 수송기로 배치되는 ‘대(對)통신체계(CCS) 블록 10.2’ 운용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CCS 블록 10.2는 2020년 작전 운용되기 시작한 신형 무기체계다. 외형은 위성통신용 안테나처럼 생겼지만 적 위성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자산이다. CCS 블록 10.2는 적 지상관제소와 위성 간 통신을 교란하는 소프트 킬(soft kill) 무기다. 지상관제소가 위성으로 전송하는 명령 신호와 위성이 지상관제소로 보내는 데이터 신호, 즉 업링크·다운링크 양방향 신호를 모두 교란할 수 있다.
로켓 쏠 돈으로 인민 먹여 살리길
미군이 동북아시아 지역에 CCS 블록 10.2를 배치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북한이 정찰위성을 운용하고 싶어도 쓸 수 없다는 뜻이다. CCS 블록 10.2를 작동하면 적 위성에 관제소가 보내는 명령 신호가 모두 막히는 것은 물론, 위성이 촬영해 보내는 데이터도 모두 교란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미국 ‘전략방위구상(SDI)’ 기술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옛 소련의 위성에 대응하고자 처음 개발됐다. 하드 킬(hard kill) 수단으로 위성을 파괴할 경우 우주 쓰레기 문제가 발생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기에 위성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무력화하기 위해 등장한 무기다.
미군은 하드 킬 수단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이지스함에 탑재되는 SM-3는 2008년 이미 저궤도 위성 요격 능력을 입증했다. 현재 배치되고 있는 SM-3 블록 2A의 요격 고도는 당시 사용된 모델에 비해 3배 가까이 높다. 북한이 제아무리 정찰위성을 띄워놓아도 그 위성이 저궤도를 도는 한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요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항모 타격용 대함탄도미사일 DF-21D와 DF-26을 운용하는 중국이 표적 획득 수단을 위성에서 극초음속 무인 정찰기 WZ-8(無偵-8)로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위성 대신,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면서도 생존성이 높은 극초음속·스텔스 무인기로 감시정찰자산을 바꾼 것이다. 중국과 달리 북한은 이런 무기를 개발할 수도, 대량 배치해 운용할 능력도 없으니 위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북한은 5월 천리마-1형 발사에 실패한 후 가까운 시일 내 기술적 문제를 보완해 다시 발사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제 딴에는 핵 A2/AD를 완성해 미국에 큰소리치고, 중국으로부터 떡고물 좀 받으려는 심산이겠지만 헛수고다. 북한 지도부는 막대한 돈을 들인 위성이 유사시 무력화되는 모습을 보며 후회하지 말길 바란다. 위성·로켓 만들 돈으로 식량을 사 인민부터 먹여 살리는 게 위태로운 체제를 하루라도 연장하는 길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