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교육부에 공교육 교과 과정 밖에서 출제되는 국어 비문학과 과목융합형 등 ‘킬러 문항’을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50%가량 줄이라는 취지의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킬러 문항 출제 관행이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공정 수능’의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 간 ‘이권 카르텔’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6월 모의평가에서 윤 대통령의 지시가 이행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학입시 담당 교육부 간부를 경질했다.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도 19일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해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공교육 교과과정 밖 수능 출제 배제’ 지시 나흘 만에 수능 출제를 주관하는 평가원장까지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 원장은 “평가원은 수능 출제라는 본연의 업무에 전념해 2024학년도 수능이 안정적으로 시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수능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교육부에 공교육 교과 과정엔 없고, 사교육 의존도를 키우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킬러 문항’의 대표적 사례들로 국어 비문학 문항과 과목 융합형 문항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했다고 한다. 이 문항들은 지나치게 난도가 높아 사교육 시장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윤 대통령은 이 킬러 문항을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절반가량 줄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해 9월 모의평가와 수능에서는 복잡한 킬러 문항을 대부분 빼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이번 수능에서 킬러 문항이 거의 없어지고, 내년부턴 완벽하게 사라지도록 하겠다는 게 윤 대통령 의중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하지만 6월 모의평가에서 윤 대통령 지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이 부총리는 15일 윤 대통령에게 대학입시 담당 교육부 간부를 경질하겠다고 보고하고, “죄송하다”는 입장을 윤 대통령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원장은 사임 의사를 밝힌 뒤 본보와의 통화에서 “평가원과 교육부는 이번 6월 모의평가 출제 전략도 긴밀히 협조 소통하면서 짰다”고 말했다. 마치 평가원이 교육부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6월 모의평가가 어렵게 나온 것처럼 비치는 현 상황을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원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6월 모의고사에서 50% 줄이라, 이런 지시는 없었다”며 “대통령실과 우리가 직접 얘기하지는 않고, 교육부와 협의를 했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뜻은 교과서에 없는 걸 수능에 출제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교과 과정 안에서 변별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킬러 문항으로 수능 변별력을 확보해 온 교육 당국과 고액 강의로 이득을 본 사교육 산업의 ‘이권 카르텔’ 구조를 수사 당국이 직접 규명하고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이권 카르텔은 교육 질서를 왜곡하고 학생들이 같은 출발선에서 공정한 기회를 제공받는 것을 저해한다”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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