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전국 지역위원회 소속 인사들은 요즘 출퇴근 시간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든 채 교통 요지에 서서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출퇴근 피켓팅은 총선 등 주요 선거를 앞두고 하는 대표적인 선거운동 방식이죠. 각 지역위원회가 홈페이지에 경쟁적으로 올린 ‘인증샷’ 중에는 내년 총선 출마 예정자들도 상당수 눈에 띕니다. 피켓에 ‘후쿠시마’ ‘오염수’보다 자기 이름을 더 크게 써놓은 경우도 허다합니다.
민주당은 전국 시도당이 각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받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 서명 운동 실적도 매일 집계 중입니다. 5월 26일 이재명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을 연 데에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심지어 18일 공유된 당 내부 문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진행했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검추진 범국민 서명운동’결과 대비 시도당별 서명운동 실적 현황까지 표로 만들어 공유했더군요.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오프라인 현장에서 받은 서명운동 참여 인원은 서울이 12만4510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전북(9만3562명), 경기(8만2163명), 전남(7만8176명), 광주(3만5024명) 순이었습니다.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때와 비교해 올려둔 퍼센테이지로 따져보면 전남이 이태원 참사 때 받은 3만8522명 대비 2배 이상인 203%의 달성률로 1위였습니다. 이어 전북(133%), 경남(132%), 경북(127%), 부산(105%), 경기(101%) 순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도 “국민적 참사를 정쟁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끌어들인다”, “총선 앞두고 경쟁시키고 줄 세우기라도 하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하지만 당 공보국은 해당 보도에 대해 “서명운동의 진행 추이를 지도부에 보고하기 위해 앞선 서명운동 사례를 첨가한 것이지, 이태원 참사와 비교해 경쟁시키는 건 아니다”라고 일축하더군요. 당 지도부가 서명운동 숫자에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민주당 지도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현수막 개수에도 관심이 많더군요. 민주당 조직국은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와 관련해 홍보가 잘 되고 있는지 파악하라는 당 지도부 지시가 있었다”라며 지역위원회별로 현수막 게시 상황을 취합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전국민이 반대한다’, ‘후쿠시마 방사능 수산물 수입, 5천만이 반대한다’, ‘밥상 소금 걱정에 어쩌나’, ‘“일본이 먼저 써라”고 정부가 말하라’ 등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지역별로 몇 개씩 내걸었는지 세서 보고하라는 겁니다.
내부 불만과 지적에도 아랑곳 않고 민주당은 7월 한 달간 전국을 돌며 후쿠시마 오염수 규탄대회를 이어간다죠. 토요일인 7월 1일 서울에서 전국 단위로 총집결하는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고, 이어서 호남과 충청, 제주 등에서 당 최고위원회와 규탄대회를 병행한다고 합니다. 7월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앞서 대대적으로 비판 여론을 확산하겠다는 겁니다. 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은 6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 의원총회에서 “7월 한 달 동안 대국민활동을 통해 일본을 규탄하고,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굴욕적인 모습을 규탄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정리해 가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아직 IAEA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인데 “IAEA도 못 믿는다”며 벌써부터 또 다시 길거리로 나가겠다는 민주당의 행보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의 사전 선거운동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효과도 있나 봅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총공세에 나선 뒤로 그동안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강원도와 부산, 경남 등 ‘동·남해 벨트’에서 지지율이 일부 오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둘러싼 국회 내에서의 치열한 현안 질의나 국회 차원의 특위 활동은 응원합니다. 그런데 이슈를 국회 밖으로 들고나와 정치화하는 건 또 다른 문제죠. 거리에 내걸린 현수막과 피켓 속 자극적 문구와, 장외 집회 때마다 당 대표란 사람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돌팔이”, “핵폐수” 등의 거친 표현으로 사회적 불안감과 갈등만 거세지고 있습니다.
“여름 휴가철이라 손님들 올 때 됐잖아요?” (이재명 대표) “안 올 것 같아요. 방송에서 때려서. 눈만 뜨면 뭐라고들 해서.”(상인)
이 대표는 지난 22일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민심을 직접 듣겠다며 찾아간 강릉 주문진시장에서 “장사가 안 돼서 죽겠다”는 상인들의 애끓는 하소연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한 상인은 이 대표를 향해 “주문진 시장 좀 살려주세요. 그래야 표심도 나오는 거예요. 우리는 당(黨)은 다 필요 없어요. 여당, 야당 필요 없어요. 국민이 살아야 여당, 야당 다 사는 거예요”라고 외쳤습니다.
이어진 현장 간담회에서도 멍게 양식을 하고 있다는 한 수산업자는 “올해 판매량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가격도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게 전부 다 심리적 불안 요소 때문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 때문에 도리어 장사가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입니다.
23일 국민의힘 원내지도부가 찾은 서울 송파구 가락동 수산시장에서도 “정치권에서 수산물에 오염 있다고만 하지 말고 서민들을 위해 말씀을 잘해서 잘살게 해달라” “젓갈은 일본산이 거의 없는데 소비자들이 수산시장 자체를 안 온다”는 상인들의 호소가 쏟아졌습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후쿠시마) 오염수가 위험하다고 선동하면서 수산물을 많이 구매하라고 하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고, 자가당착이 끝을 모른다”고 비판했죠. 이에 민주당은 발끈하며 논평을 내고 “국민의힘 지도부가 연일 수산시장을 찾아 국민 불안의 책임을 야당에 전가하고 있으니 뻔뻔하다”라고 맞받아쳤습니다. 민주당의 후쿠시마 오염수 규탄이 진짜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미리 자기 장사를 하는 것인지 유권자들이 제대로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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