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68·사진)과 가족이 8월 4일 정몽헌 전 회장 20주기 기일을 맞아 방북을 추진 중인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정부는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이지만 추모식 성격 등을 고려해 인도적 차원의 방북은 허용해야 한다”며 최종 승인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의 방북이 성사되면 2018년 11월 ‘금강산 관광 시작 2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 참석을 위해 금강산을 방문한 이후 5년 만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현대아산 측이 27일 정 전 회장 20주기 계기 추모행사를 위한 금강산 지역 방북을 타진하려고 북한 주민 접촉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절차에 따라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한 결과 통일부와 대통령실 간 긴밀한 협의를 거쳐 방북 허가가 내려질 방침이다.
다만 군 통신선을 포함한 남북 연락 채널이 4월부터 전면 두절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한 점을 고려할 때 현 회장의 방북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북한 인권 문제 제기 등으로 대북 압박 고삐를 바짝 죄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현 회장의 방북을 허용하려는 배경에는 현 회장이 북한 지도부를 접촉할 경우 북한의 속내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 회장의 방북이 이뤄지려면 북측과 교섭해 방북 동의서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부에 방북 신청을 낸 다음 통일부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
금강산 南자산 철거-연락채널 두절 상태… 정부, 玄 통해 北지도부 속내 파악 나설듯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측의 초청장을 받고 통일부의 최종 방북 승인까지 얻어내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는 물론이고 코로나19로 3년여간 닫혀 있던 북한 국경을 열고 방북하는 첫 남측 인사가 된다. 정부 당국과 현대아산 측은 일단 이번 방문이 정 전 회장의 20주기 기일을 기리기 위한 목적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로선 북한의 국경 봉쇄가 장기화되는 데다 금강산 내 남측 자산이 철거되고 남북 간 상시 연락 채널까지 차단되는 등 녹록지 않은 상황 속에 민간을 통해 북한 내부 상황과 대남 정책 의도를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대북 강경 기조를 이어가는 정부가 이번 방북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건 남북 간 의미 있는 의사 교환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통일부는 북한의 현 상황이 당장 현 회장의 방북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면서도 만약 북한이 현 회장의 방북을 수용하면 남북 대화의 여지가 생길 측면도 있고 북한의 향후 대외 정책 행보를 가늠해볼 수 있다고 본다.
현 회장은 앞서 보수·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북한을 방문해 최고지도자와 수차례 접촉한 인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 회장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 회장은 앞서 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네 차례 독대했다. 2013년 방북에선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부터 남측 인사로는 처음으로 구두 친서를 전달받았다.
북한이 이런 특수성을 고려해 현 회장의 방북을 허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현 회장은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 사건 이후 15년간 전면 중단된 대북 사업의 끈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또 대북 사업 단독 운영권을 확인받은 유일한 남측 재계 인사라는 점 등에서 북측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현 회장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7박 8일간 방북해 북한과 협상한 끝에 137일간 억류돼 있던 현대아산 직원을 귀환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또 김정일과의 면담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백두산 관광, 군사분계선 육로 통행 등을 성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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