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27일 말레이시아 랑카위국제공항에서 열린 국제해양·항공전시회(LIMA)에서 K-방산의 새로운 낭보가 전해졌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말레이시아에 초음속 경전투기 FA-50 18대를 수출하기로 한 것이다. FA-50은 T-50 고등훈련기를 기반으로 전술데이터링크, 정밀유도폭탄, 자체 보호 장비 등을 추가 탑재해 개발된 경전투기다. 합리적 수준의 도입 가격과 정비비용, 우수한 성능 덕에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KAI가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에 이어 말레이시아 수출까지 성공하면서 한국산 항공기를 매개로 한 아시아·태평양 안보 벨트가 구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산 특성상 무기체계 판매 후에도 정비, 업그레이드 등 지속적 수요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아세안 협력체계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 수출로 한국-아세안 협력 강화 전망
T-50, FA-50 등 고정익기에서 시작된 동남아시아에서의 한국산 항공기 열풍은 헬리콥터(회전익기)로 이어지고 있다. KAI는 6월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현지 항공우주 전문기업 VTX와 회전익기 사업 분야 발전을 위한 상호협력 업무협약식을 가졌다. VTX는 베트남 최대 통신기업 비엣텔그룹 소속으로 항공 및 우주 장비를 개발·설계·제조하는 기업이다. 이번 업무협약은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순방 중 열린 ‘한국-베트남 비즈니스 포럼’ 현장에서 진행됐다. KAI는 순방에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동행했다.
KAI와 VTX는 향후 베트남에서 회전익기를 개발·생산하는 데 협력하며, 이를 위해 실무협의단 및 검토위원회를 꾸려 사업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이번 업무협약으로 국산 항공기 산업이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마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트남 기업과 업무협약에 대해 강구영 KAI 사장은 “그간 국내 운용 실적을 통해 안정성과 효율성을 입증받은 국산 헬기를 베트남에 소개해 기쁘다”면서 “VTX와 협력을 통해 미래 베트남 항공 시장의 헬기 수요에 대비하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방산업계에서는 KAI의 이번 업무협약 체결이 수리온 수출의 전초전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은 2013년 수리온 개발을 완료해 세계 11번째 헬기 생산국이 됐다. 수리온 전력화 1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 헬기가 해외 수출이라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첫 날갯짓을 한 것이다. 향후 수출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리온의 강점은 지난 10년간 한국군 운용 과정에서 그 성능이 입증됐다는 점이다. 창군 후 외국산 헬기에 의존하던 한국군은 수리온 전력화를 계기로 첨단 항공전자 장비를 갖춘 국산 회전익기를 보유하게 됐다. 수리온 운용 결과 조종사의 생존성과 임무 수행 능력이 높아졌고, 반대로 피로도는 낮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수리온을 모체로 다양한 파생형 헬기를 개발한 것도 향후 수출에 강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존에 동남아 국가를 포함한 상당수 중진국은 러시아산 헬기를 다수 운용했다. 이 중 상당수가 노후화된 데다, 최근 미국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로 부품 수급이 어려운 실정이다. 수리온의 경우 기본형 기동헬기를 기반으로 10여 종의 파생 모델이 개발돼 경찰, 소방, 산림, 해경 등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글로벌 헬기 시장 강자였던 러시아가 주춤한 사이 한국산 수리온이 비상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
전력화 10년 차 수리온, 베트남 수출 청신호
한국산 항공기의 경쟁력은 더는 중진국을 대상으로 한 ‘가성비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KAI는 FA-50을 앞세워 세계 항공기 산업의 심장부인 미국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미군은 향후 2~3년 안에 총 500여 대 규모의 각종 군용기 도입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사업 내역을 살펴보면 미 공군 고등전술훈련기(ATT) 획득 사업, 미 해군 고등 신규 훈련기(UJTS) 사업 및 전술대체항공기(TSA) 사업 등으로 한국산 FA-50 계열기가 주요 주자로 꼽힌다. 미국 방산 시장 진출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 군용기 500대 획득 비용과 후속지원 비용을 합치면 사업 규모는 약 54조 원으로 추산된다. 군용기 생산과 이에 따른 부가가치까지 감안할 경우 항공기 산업에 미칠 파급 효과는 100조 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KAI의 FA-50을 비롯한 T-50 계열 항공기는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공동개발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방산 DNA’를 갖춘 셈이다. 미군의 신형 무기체계 획득 사업은 자국산 우선 구매 원칙에 따라 미국 업체가 주계약자 자격을 갖는다. KAI는 록히드마틴사와 지난 20여 년간 세계 시장에서 공동마케팅을 펼친 덕에 상호협력 체계가 탄탄하다. 미국 시장 진출에 필요한 강점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2018년 미 공군 ATT 사업에 선정된 보잉 T-7이 기술 결함으로 지금까지 개발이 지연된 점도 K-방산에는 호재다. 이미 개발을 마치고 전력화된 FA-50이 미 공군 당국에 어필할 가능성이 크다. 미 해군 UJTS의 경우 현재 운용 중인 T-45 기종의 노후화로 훈련 여건이 악화하면서 후속기 도입이 절실한 상황이다. 미군의 군용기 도입 사업 일정이 앞당겨질 공산이 큰 가운데 한국산 항공기의 활약이 기대된다.
KAI “대륙별·국가별 맞춤형 마케팅 강화할 것”
미국 진출에 성공할 경우 KAI는 해외 고등훈련기 및 경전투기 시장에서 50% 넘는 시장 지배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약 500대의 추가 수요와 KAI가 개발 중인 FA-50 단좌형 모델 300대를 포함하면 잠재적 시장 수요는 1300대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른 항공기 산업 파급 효과는 최대 34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 T-50, FA-50의 성공은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KF-21은 최근 시험비행 평가를 성공적으로 마친 데 이어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까지 받아 전투기로서 성능을 입증했다. 오늘날 군용기 시장에서는 KF-21 같은 4.5세대 전투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긴장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공중전 양상을 면밀히 분석한 각국 군 당국은 최첨단 전투기 못지않게 합리적 가격에 도입해 즉각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4.5세대 전투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한국산 4.5세대 전투기 KF-21이 전력화될 시점에 미국산, 유럽산 경쟁 모델은 거꾸로 단종될 것으로 보인다. KF-21의 높은 성능과 확장성도 신형 전투기 도입을 고려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KF-21은 5세대 플랫폼에 버금가는 스펙을 갖춘 데다, 향후 성능 개량 및 유무인 복합 편대 적용을 통해 6세대 미래 비행체로 도약도 기대된다.
향후 글로벌 항공기 시장 진출 계획에 대해 KAI 관계자는 “대륙별·고객별로 특화된 FA-50 마케팅을 강화함으로써 향후 KF-21의 안정적 수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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