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 대한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재판을 통해 가려지게 된다. 정부가 법원에 배상금을 맡기는 공탁 신청을 했지만 전국의 법원 공탁관 대부분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6일에는 전주지법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고 박해옥 할머니의 유족 2명을 대상으로 낸 공탁 신청을 ‘불수리’ 결정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공탁 신청에 대해 “적법 절차”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변제로 채권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 있다”는 민법 481조와 “채권자가 변제를 받지 않거나 받을 수 없는 때는 변제자가 공탁해 채무를 면할 수 있다”는 민법 487조가 근거가 됐다. 외교부는 “이런 상황에서 공탁 신청에 대해 법리를 제시하며 불수리 결정한 건 공탁 공무원의 권한을 넘어선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피해자 측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금을 확정받은 사건에서 ‘제3자’인 재단은 피해자 측이 거부하는 한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할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민법 469조는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면서도 “당사자의 의사 표시로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 때는 그럴 수 없다”고 돼 있다.
법원 공탁관이 정부 공탁을 받지 않은 건 “피해자가 명확한 거부 의사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공탁관의 결정에는 “정부나 재단은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없는 ‘제3자’”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어질 재판에선 정부나 재단이 일본 기업의 배상금을 변제할 수 있는 ‘이해관계 있는 제3자’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공탁 가능 여부를 판가름할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선 재단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피고 기업으로부터 손해배상 채무를 인수하기로 했다는 약정서 등을 받아 재판부에 제출해야 ‘이해관계 있는 제3자’로 인정돼 공탁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재단은 공탁 절차를 진행하면서 ‘채무 인수 서류’ 등은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재단 관계자는 “일본 기업이 채무를 넘긴다는 확약서에 사인하는 건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확약서를 받는 건 쉽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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