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의를 가졌다. 한미일 3국 정상이 별도의 회의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이사장 남시욱)은 회의의 의미와 한반도 안보를 주제로 2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문가 토론회를 가졌다. 안호영 전 주미 대사(경남대 석좌교수),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미주연구부장),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통일학연구원장)가 참석했다. 사회는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이 맡았다.
● 한미일 ‘뉴노멀 시대’
구자룡 소장=정상회의 후 ‘정신’(공동성명) ‘원칙’ ‘공약’ 등 세 가지 문건을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안호영 전 대사=통상 공동성명과 ‘팩트 시트’를 낸다. 3국이 회담에 얼마나 중요성을 부여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3국 관계는 ‘뉴노멀의 시대’를 맞았다.
박원곤 교수=‘협의에 대한 공약’ 문건 제목을 ‘듀티(duty·의무)’가 아닌 ‘공약(commitment)’으로 한 데는 복잡한 속내가 있다. 한미일이 동맹이 아니면서 동맹 같은 최대치의 안보 협의체를 구축하려다 보니 복잡한 문서들이 만들어졌다.
김현욱 교수=‘공약’ 뒤에 ‘디스클레이머’(면책조항)를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추후에 삼각동맹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지만 한일 모두 부담스럽다.
구=바이든 취임 이후 처음으로 캠프 데이비드에서 회의를 가졌다.
김=의전과 형식보다 실질적인 협의를 하고 3국 공조가 새로운 시대에 돌입하는 성과를 내겠다는 의도를 반영한다. 내용도 충실했다. 군사 안보뿐 아니라 대부분의 어젠다가 다 들어갔다. 국제표준, 글로벌 공급망 정보 시스템 구축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3국이 주도를 하고 지역도 글로벌 차원이다. 이런 ‘소다자협의체’는 없다.
● ‘변곡점’ 맞은 변화의 시대
구=회의의 성과는 3국 간 ‘전방위 글로벌 협력체’ 구축으로 요약된다.
박=공동 기자회견의 모두발언에서 정상들이 탈냉전 이후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가 나와 있다. 바이든의 ‘인플렉션 포인트(inflection point·변곡점)’, 윤 대통령의 ‘미증유의 복합 위기’, 기시다의 ‘법의 지배에 입각한 자유롭고 열린 국제 질서의 위기’.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도전을 받고 있다는 기본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세계 질서 변화의 성격에 기본적 인식이 일치한 것이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의미다.
안=바이든 발언의 핵심인 ‘변곡점’이 ‘원칙’ 문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3국 협력체가 어디에 대항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직면한 시대를 ‘신냉전’이라고 하면 쉽게 개념화가 되는데 그 표현을 안 쓰려다 보니 ‘변곡점’이라고 한 것 같다.
김=‘원칙’ 초반 ‘인도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라는 구절은 한국의 외교와 한미동맹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2009년 한미가 ‘포괄적 전략 동맹’을 맺었지만 글로벌 차원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면서 NATO 회의에 참여했다. 이제 외교의 지평과 한미동맹의 범위가 실질적으로 포괄적 전략동맹화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한미일 협의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북한은 경각심 가져야
구=‘공약’에서 ‘도전 도발 위협’에 대해 3국이 신속하게 협의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북한에 주는 메시지는?
박=문서를 제대로 읽었다면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미국은 ‘통합 억제’를 추구하는데 높은 수준의 3국 협의체는 나토와도 연결된다. 이번 문서에 ‘멀티 도메인’은 우주와 사이버까지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한미일이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안보협의를 하고 범위도 나토까지 포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북한이 이전에 한미 동맹만 상대한 것과 다르다. 4월 워싱턴 선언이 나왔을 때 북한 김여정이 바로 담화를 냈는데 이번에는 반응을 못 하고 있다. 복잡한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성명’에서 북한이 뒤에 나오지만 구체적인 액션 플랜은 북한에 대한 것이 가장 많다. 순서만으로 우리의 관심사가 뒤로 밀렸다고 볼 것은 아니다.
● ‘특정 국가 배제 협의체 아니다’
김=바이든 정부가 인·태 전략으로 오커스(AUKUS·호주 미국 영국의 안보협의체)와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국 협의체)도 만들었지만 잘 굴러가지 않고 있다.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는 군사협의체를 원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미일 협력체에 기대를 가지고 있고 군사협의체로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
안=미국의 인·태 지역에 대한 ‘안보 아키텍처’ 구상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한국 일본 호주 등과의 양자 안보동맹이었다(‘허브 앤드 스포크’). 이제 ‘소지역주의’로 가고 있다. 한미일 협력체도 3국 국명의 영문을 조합한 이름을 붙여야 정체성이 뚜렷해진다.
김=‘원칙’ 문서를 보고 처음에는 개념이 막연했는데 자세히 뜯어보니 공통의 목표와 지향점이 뚜렷하다.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국제법과 국제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다.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도 거론한 것은 이를 위반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협의체가 특정 국가에 맞서기 위한 것으로 읽히면 안 된다.
● ‘플래시 포인트’ 개입 불가피
구=앞으로 남중국해나 동중국해 대만해협 등 북핵 외 현안들에 대해 한국이 개입, 관여하게 되나.
박=‘플래시 포인트’, 즉 남중국해와 대만 등에 위기가 발생하면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플래시 포인트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전진 배치된 미군 전력을 활용하게 돼 있다. 이제 대만해협에 미국이 어떤 작전 계획을 갖고 요구해 오면 어디까지 대응할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
안=대만에서 비상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반도가 개입된다,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탁상공론이다. 이제 대만해협의 안보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김=남중국해 ‘자유의 항행’ 작전에 한국이 군함은 아니어도 상선 정도는 들어가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 ‘한미일 3국 핵우산’은 아니다
구=이번 회담으로 ‘한미일 공동의 핵우산’은 안 만들어진 건지?
박=그렇게 되려면 동맹으로 엮여 나토(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응하는 것이 핵심) 수준이 돼야 되는데 ‘아시아판 나토’로는 못 간다고 본다. 나토는 바르샤바 조약기구라는 명백한 적이 있었다. 한일이 중국을 명백한 적대 대상으로 할 수는 없다. 미국도 (중국을 공동의 적으로 하려는) 꿈을 가졌지만 10여 년 전부터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됐다. 그래서 이번 같은 협의체가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김=유럽은 냉전시대 소련에 대응하기 위해 서유럽 국가들을 통합했다. 반면 동북아에서는 한일 간에 ‘협의 공약’을 하는 데도 여러 ‘면책 조항’을 붙여야 하는 상황이다.
● 고심하는 중국
구=3국 정상회의 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나 관영 언론에서 ‘중국에 먹칠, 난폭한 내정 간섭’ 등 반발이 나오고 있다.
박=그럼에도 ‘불에 타 죽을 것’ 같은 거친 표현은 없다. ‘대만해협에서 힘을 통한 현상 변경’ 같은 중국이 민감하게 보는 아킬레스건을 빼버리니 우리가 늘 알던 반발 표현들만 나왔다. 이번에 중국 견제의 방향성과 의지를 보였지만 중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어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처럼 반응하기 어려운 데다 ‘피크 차이나’라는 말처럼 중국이 크게 반발할 여력이 없는 것도 중국의 반발 수위가 낮은 배경으로 보인다. 청년 실업률, 부동산 위기 속에서 중국이 확전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반응이 안 나오는 것은 중국을 보고 수위를 맞추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김=11월에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미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간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뭔가 실질적인 소득을 얻고자 한다. 중국은 더 이상 주변국들에 이전처럼 경제적 위협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구=북한 미사일 정보 실시간 공유 등은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구축과 비슷한데 중국의 반발도 거의 없다. 사드의 X밴드 레이더 하나 돌린다고 보복을 한 것과 대비된다.
안=사드 때는 전략적 모호성을 취했다. 이제는 전략적 명확성을, 그것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한미 차원에서 하니까 훨씬 대응이 쉬워졌다. 중국이 ‘진흙탕’ ‘바둑돌’ 소리를 하면서 한국에 압력을 넣어도 우리의 기본 입장을 견지해야 한중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회담 전 문건에 ‘중국’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대통령실에서 브리핑했는데 들어갔다.
안=3국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가 자유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 그리고 거기에 기초한 국제질서다. 여기에 역행하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며 그 예시로 들어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미중 사이가 좋아지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구=그래도 대통령실 브리핑이 불과 2, 3일 만에 뒤집혔다.
박=2016년 7월 국제중재재판소에서 남중국해의 영유권 주장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했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을 넣기를 원하고 한국이 동의했을 것이다. 한국이 양보만 한 것은 아니다. 과거 미일 성명 등에 들어가 중국이 발끈한 ‘대만해협에서 힘을 통한 현상 변경’ 그리고 ‘신장위구르’ 얘기는 빠졌다.
김=최근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부처 관료들이 매우 자신만만해했다. 대중국 견제가 성공적이어서 중국 경제가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미중 경쟁 구도가 기울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한미일 3자 협력체가 만들어졌다. 이번에 중국이 경제적 압박을 할 경우 공급망 재편 등 공동 대응하는 것들이 많다. 이런 상태에서 중국이 한국이나 일본에 경제적 보복 협박 등을 해도 효과를 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 한일 관계 ‘방화벽’의 중요성
구=이번 3국 회의는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관계가 개선된 것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정상회의 후 기시다 총리에게 일본이 좀 더 성의 표시를 해야 한다는 질문도 나왔다. 이번 ‘3인의 약속이 3국의 약속’으로 지속성을 가질지 변수는 일본이 아닐지.
안=한일 관계에서 역사와 다른 경제적 관계 등은 서로 분리해서 나간다는 것이 1965년 이후 대한민국의 기본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난 정부 5년간 그런 ‘파이어 월(방화벽)’이 무시됐다. 아베 신조 전 총리도 마찬가지여서 한일 관계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윤 대통령이 그걸 복원한 것이다.
박=대일 관계에서 문재인 정부 실정 중 하나가 도덕적 우위를 놓치고 완전히 훼손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시다가 원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전에 한국에 안 오려고 했는데 올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일본이 큰 부담을 갖게 될 것이다.
김=지난 정부에서 강제징용 문제가 대법원 판결까지 갔기 때문에 한일 관계에서 역사와 안보 협력이 나란히 가기 어려웠다.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어려운 결단을 했다. 한국은 도덕적 우위를 넘어 전략적 우위까지 점했다고 생각한다.
● 협의체의 지속 가능성이 과제
구=3국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정책이 많이 바뀔 수 있다. 이번에 구축한 3국 협의체가 정권 교체 후에도 지속될 만큼 소위 ‘불가역적 제도화’가 될 수 있을지.
박=그래서 2차 한미일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면 형식이 중요하다. 내년 상반기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붙여서 열리기보다 이번처럼 독자적으로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미일 협의체 이게 뭐야!’라고 할 수 있다.
김=‘한반도 통일’이 3자 회의의 문서에 들어간 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주변국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지지하는 언급을 한 적이 없었다.
● 연말 한중일 정상회의 가능성
구=3국 회의에 대한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연말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한 기대가 높다.
박=한중일 회의는 중국에서는 총리가 오니까 경제 문제를 많이 얘기할 수 있다. 중국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한중일 3국 회의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분위기다.
안=동남아 어디에서든 열리는 국제회의에 바이든이 참석한 뒤 한국에 들러 한미일 정상회의를 할 수도 있다.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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