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 부족 심화 논란에 한발 후퇴
정부가 의무경찰(의경) 재도입 논란과 관련해 경찰 인력 조정부터 한 뒤 필요시 검토하기로 했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25일 통화에서 “경찰 인력 재배치 이후에도 필요할 경우 의경 재도입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의경 제도가 폐지된 지 4개월 만에 재도입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지자 ‘톤 다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23일 대국민 담화에서 흉악범죄 예방을 위해 “치안 업무를 경찰 업무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경찰 조직을 재편해 치안 역량을 보강하겠다”며 “의경 재도입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자리에 배석한 윤희근 경찰청장은 “7500∼8000명 정도를 순차 채용해 운용하는 방안을 국방부 등과 협의할 것”이라며 필요한 인력 규모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의경 재도입이 병력 부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논란이 확산되자 총리실은 다음 날 “치안 활동 강화를 위한 경찰 인력 배치 조정을 먼저 진행한 후 필요시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했다는 논란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의경 재도입은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고, 여러 가지 안 중 하나였던 만큼 백지화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여권에서는 “섣부른 언급이 논란에 불씨를 댕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부처 간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병역자원 부족이 심각한 가운데 의경 제도 부활을 시사하는 방안이 대통령실, 총리실, 부처 간 조정 없이 설익은 채로 발표됐다는 것.
특히 의경 부활 카드는 국방부와도 협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경 재도입 검토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쉽게 동의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문제(의경 부활)와 관련해 협의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의 질의에도 “구체적으로 협의한 바는 없다”고 답했다.
경찰 내부에선 실망감이 큰 분위기다. 일각에선 윤 청장이 필요한 의경의 규모, 도입 시기 등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내놓는 바람에 ‘의경 부활’이 가시화된 것처럼 혼선이 빚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경찰은 수사 말고 치안에 집중하라’는 취지였는데 경찰 혼자 ‘의경 부활’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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