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러시아의 최첨단 우주시설인 보스토치니 기지에서 13일(현지 시간) 북-러 정상회담을 가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의 위성 개발을 돕겠다고 언급하면서 사실상 정찰위성 기술 이전을 공식화했다. 정찰위성 기술 이전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위반 사항이다. 북한이 두 차례 발사에 실패한 위성 발사체(천리마-1형)는 탄두부 탑재체만 바꾸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전용이 가능하다. 안보리 대북 제재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 기여했던 러시아가 이제는 북한의 핵무력 종착지인 ICBM 기술력 진전을 지원하겠다며 안보리 대북 제재에서 이탈하겠다는 뜻을 대외에 선언한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뒤 러시아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연방은 유엔 대북 제재를 준수하지만 군사기술 협력 분야에선 (북한과) 협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북한과 공개되면 안 되는 민감한 영역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또 “북-러 간 모든 관계는 군사적 교류, 안보 분야의 가장 시급한 문제에 대한 의견 교환 등 민감한 영역에서의 상호작용을 포함한다”고도 했다.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해주는 대가로 북한이 핵추진잠수함 등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를 무력화하는 ‘게임 체인저’ 전략무기 개발에 한발 다가섰다는 우려가 나온다.
● ICBM 美 본토 타격 능력 전수 가능성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 앞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이냐’란 러시아 언론의 질의에 “우리는 이 때문에 이곳에 왔다. 북한은 로켓 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우주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2021년 정찰위성 개발을 공식화한 뒤 2년 만에 발사에 나선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위성·로켓 개발의 핵심 기지로 초대한 이유를 분명히 밝힌 것. 조광래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러시아가 ‘원포인트 레슨’식 관련 기술을 전수한다면 3∼6개월 정도면 정찰위성 개발을 완료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위성 발사체의 추진체와 전기·전자 부품 관련 기술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앞선 두 차례 위성 발사체 발사는 사실상 ICBM 정상각도 발사 테스트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향후 추진체 기술 등을 전수받는 과정에서 ICBM 비행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미가 군사적 효용이 없다고 판단한 현 북한의 정찰위성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지닌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면 새로운 위협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북한이 개발한 정찰위성(만리경-1호) 해상도는 5∼10m급으로 조악한 수준인데 만약 서브미터급(가로세로 1m 미만의 물체 식별) 해상도를 갖출 경우 한미 대응 태세를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정부 소식통은 “F-35A 스텔스기 등 주요 전력 배치 거점과 훈련 상황 등이 고스란히 노출돼 한미 방공망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민감한 영역”에 핵잠기술 포함됐나
한미는 북-러가 공개하지 않은 이 ‘민감한 영역’에 핵추진잠수함 관련 기술이 포함될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크기와 위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타이푼급(4만8000t) 전략핵잠(SSBN)을 보유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전략핵추진잠수함 등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해군 함정들이 정박해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33번 부두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소형 원자로 등 핵잠의 핵심 기술이 북한에 전수될 경우 미 확장 억제에 치명타가 우려된다. 핵잠은 수개월간 잠항 작전이 가능하다. 북한이 여러 발의 핵 장착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SSBN을 갖게 되면 미 본토 가까이에 접근해 기습 핵 타격도 할 수 있다.
미그-29, 수호이(Su)-25 등 노후된 옛 소련제 전투기를 운용 중인 북한이 러시아의 최신 전투기 기술을 도입하거나 생산 시스템을 모방해도 한미 방위태세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방러 기간 중 김 위원장의 방문이 유력한 하바롭스크의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은 첨단 5세대 전투기 Su-57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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