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에 주민 2500만 명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북한 정권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마치 화수분이라도 있는 양 각종 전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북한이 최근 여러 발의 탄도미사일을 탑재하는 전략잠수함까지 선보였다. 북한이 정권 수립 기념일을 하루 앞둔 9월 8일 ‘전술핵공격잠수함’이라며 공개한 ‘김군옥영웅함’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 관영매체는 9월 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관으로 치른 신형 잠수함 진수식 소식을 “주체적 해군 무력 강화의 새 시대, 전환기의 도래를 알리는 일대 사변”이라며 거창하게 전했다. 진수식에는 잠수함 건조 사업을 총괄한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인 리병철 원수와 박정천 원수, 최근 김 위원장으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았던 김덕훈 내각총리도 등장했다.
6·25 해전 ‘패장’ 이름 붙인 北 신형 잠수함
김 위원장은 “오늘 진수하는 제841호 김군옥영웅함의 실체가 바로 지난 해군절에 언급한 바 있는, 해군의 기존 중형 잠수함들을 공격형으로 개조하려는 전술핵잠수함의 표준형”이라며 이번에 진수한 잠수함이 기존 모델의 개조형임을 밝혔다. 그는 이미 보유한 중형 잠수함도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공격형 잠수함으로 개조하겠다는 의사를 함께 밝혔다.
북한이 군함에 김 씨 일가가 아닌 사람의 이름을 붙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김군옥은 2009년 천수를 누리고 사망한 인물로, 6·25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일 벌어진 주문진항 해전의 패장(敗將)이다. 주문진항 해전 당시 북한 측 지휘관이던 김군옥은 어뢰정 4척과 포함 2척, 수송선 10척으로 구성된 선단을 이끌고 해안 후방 상륙·보급 지원 임무를 수행하던 중 유엔군 함대에 발각됐다. 당시 주문진항에는 영국 해군 1만t급 경순양함 1척과 1700t급 초계함 1척, 미 해군 8450t급 경순양함 1척 등으로 구성된 순찰대가 있었다. 이 순찰대는 북한군의 17t짜리 어뢰정들이 돌격해오는 것을 발견하고 곧장 포격을 시작했다. 당시 16척의 북한 수상선단 가운데 김군옥이 탑승한 21호 어뢰정을 제외한 15척이 격침된 반면, 유엔군 측은 흠집조차 입지 않았다. 당시 유엔군은 이 같은 전과(戰果)를 ‘전투’라고 부르지도 않고 작전일지에 “지상 포격 지원 임무 수행 중 북한군 어뢰정이 달려들어 포격으로 쫓아냈다”고만 기록했다.
그러나 생환한 김군옥과 북한군 수병들은 자기네가 주문진 앞바다에서 미 해군 중순양함 ‘발찌모르’를 격침했다고 허위 보고했다. 이들이 ‘발찌모르’라고 말한 군함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건조된 1만7000t 규모의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이었다. 이 군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7년 퇴역해 한반도 근처에는 와본 적조차 없음에도 당시 북한군 최고사령관이던 김일성은 김군옥의 허위 보고를 믿어버렸다. 그 결과 김군옥과 21호 어뢰정은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고 졸전으로 전멸한 제2어뢰정대에는 ‘근위 제2어뢰정대’라는 칭호가 수여됐다. 북한은 발찌모르 격침 사건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으며 지금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관련 유물을 자랑스럽게 전시해놓고 있다.
찌그러진 선체 외벽… 잠수함 개조 흔적 역력
김군옥의 보고가 거짓말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북한이 그 이름을 신형 잠수함에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해군에 선전용으로 쓸 만한 이렇다 할 인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거짓말로 영웅이 된 김군옥처럼 김군옥영웅함도 믿기 어려울 만큼 형편없는 잠수함으로 보인다. 이 잠수함은 2019년 7월 김정은 위원장이 신포 잠수함 조선소를 시찰할 때 그 존재가 처음 드러났다. 당시 기존 033형 잠수함을 개조한 흔적이 꽤 보였는데, 이번에 공개된 김군옥영웅함은 그 흔적을 지우고자 부단히 애를 쓴 티가 난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 탓에 033형 잠수함의 모든 흔적을 지우지는 못한 듯하다. 이에 김군옥영웅함은 등장과 동시에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 정보당국이 파악한 북한 신형 잠수함의 길이는 약 80m로, 기존 033형보다 4~5m 길다. 이는 세일(sail: 잠수함 선체 위에 설치하는 구조물)과 연결되는 대형 수직발사관(VLS)을 설치할 구역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033형 잠수함의 수중배수량은 1800t대 후반이다. 김군옥영웅함의 수중배수량은 선체가 연장된 데다 VLS 구역도 추가돼 3000t대 초반까지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한국 해군의 도산안창호급보다 작은 덩치다.
북한이 공개한 김군옥영웅함의 고해상도 사진들을 살펴보면 이 잠수함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여러 시체에서 상태가 좋은 부위들을 모아 조립한 뒤 전기로 다시 생명을 불어넣은 괴물이다. 김군옥영웅함은 노후화된 기존 033형 잠수함을 가져다 이어 붙이는 형태로 만들었다. 즉 덩치를 키우는 데 사용한 압력 선체 모듈은 다른 잠수함에서 떼어내 붙였을 개연성이 크다. 사진 속 김군옥영웅함 선체 외벽 곳곳의 찌그러진 흔적이 바로 그 증거다. 오랫동안 운용된 잠수함이 수압에 노출된 탓에 찌그러진 것이다.
잠수함 선체는 일반 선박과는 다른 소재와 공법으로 제작된다. 물속으로 10m씩 내려갈 때마다 압력이 1기압씩 상승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잠수함이 바닷속 깊이 들어갈수록 잠수함 안팎의 압력 차이도 커진다. 잠수함이 해수면 200m 아래로 내려가면 잠수함 외벽에 가해지는 압력은 20기압이지만, 인간이 거주하는 잠수함 내부 압력은 1기압이다. 따라서 잠수함에는 엄청난 압력차를 버틸 수 있도록 일반 강철이 아닌 고장력강(high tensile steel)이 사용된다. 고장력강 생산 기술은 일부 선진국만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잠수함을 새로 건조하고 싶어도 고장력강이 없어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설령 고장력강을 흉내 낸 강재로 선체를 건조한다 해도 잠수함이 잠항할 수 있는 깊이는 매우 얕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기존 잠수함에 쓰인 압력 선체를 재활용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현재 북한 기술력과 인프라로는 잠항 심도 200~300m 이상 내려갈 수 있는 고장력강을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북한은 1973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중국으로부터 잠수함 22척을 도입한 바 있다. 7척은 완성품으로 직도입했고, 15척은 1975~1995년 중국제 부품을 받아 북한 조선소에서 조립·완성했다. 가장 오래된 잠수함 함령은 50년, 가장 쌩쌩한 것도 30년이 됐으니 선체 곳곳에 수압으로 찌그러진 흔적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김군옥영웅함은 2023년 9월 진수됐지만, 그 원형이 된 잠수함 선체는 30~50세라는 얘기다.
퇴물 잠수함이 쏘는 핵미사일이 핵심 위협
잠수함은 수명이 지나면 구조 강도에 문제가 생겨 잠항할 수 있는 심도가 얕아진다. 그럼에도 무리해서 잠수함을 더 운용하면 아예 잠항이 불가능해진다. 김군옥영웅함의 경우 033형의 작전 심도인 250m까지 잠항은 어림없고, 해수면에서 가까운 얕은 수심에서만 운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연합군의 대잠 탐지 자산을 피하고자 깊은 바다로 내려갔다가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이번에 신형 잠수함을 공개한 직후 한국군 당국이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힌 배경이다.
물론 김군옥영웅함은 ‘정상적 운용’이 어려울 뿐, 운용 자체가 불가능한 배는 아니다. 작전 심도까지 잠항하지 못해도 미사일 발사 심도인 50m 안팎까지는 충분히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군옥영웅함은 덩치에 비해 대단히 강력한 무장을 하고 있다. 이 정도 스펙만 갖춰도 수중 잠수함 타격 능력과 장거리 대잠 경계 능력이 부족한 한국군에 위협적 존재가 될 수 있다.
낡은 배를 긁어모아 프랑켄슈타인처럼 만든 잠수함이 한국군에 위협적인 이유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때문이다. 김군옥영웅함은 세일과 연결된 거대한 VLS 구역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형 SLBM용 VLS 4개와 소형 SLBM용 VLS 6개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대형 SLBM용 VLS에는 2020년 공개된 ‘북극성-4ㅅ(시옷)’ SLBM을 탑재할 가능성이 크다. 이 미사일은 기존 북극성-3형보다 소형화된 길이 9m, 직경 2m 규모에 사거리는 약 3000㎞다. 한반도 동해 수중에서 미국의 서태평양 핵심 군사 거점인 괌을 타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소형 SLBM용 VLS에 탑재될 미사일로는 사거리 600㎞의 ‘화성-11ㅅ’이 유력해 보인다. 이 경우 북한은 김군옥영웅함을 동해 해류를 타고 내려보내 한국군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의 사각지대에서 화성-11ㅅ을 발사할 수 있다. 괌 타격용 미사일과 남한 타격용 미사일에는 모두 ‘화산-31’로 명명된 전술핵탄두가 탑재된다.
고작 4발의 북극성-ㅅ으로는 최근 강화된 괌의 미사일방어(MD)체제를 뚫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이 동종의 미사일 발사 플랫폼을 다수 확보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억제 전력 정도의 가치만 발휘될 것이다. 반면 화성-11ㅅ의 위협은 상당하다. 이 미사일은 한국군 조기경보레이더 사각지대에서 발사돼 한국의 뒤통수를 노릴 수 있다. 미국 SM-3, SM-6 미사일의 요격 고도 중간 지대를 비행하는 특성도 문제다. 유사시 미 항공모함·상륙함 증원 전력에 대한 연쇄 핵공격 수단으로서 위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에 맞설 ‘반(反)접근/지역 거부’(Anti-Access/Area Denial·A2/AD) 전력을 갖췄다는 얘기다.
유사시 美 항모전단 타격 가능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북한이 이번에 진수한 것과 유사한 잠수함을 여러 척 만들겠다고 공언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북한은 이미 김군옥영웅함과 비슷하거나 규모가 더 큰 잠수함을 건조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잠수함 전력을 강화할수록 한국 배후에 핵미사일을 꽂을 수 있는 능력은 배가될 것이다. 미사일방어 능력과 대잠 작전 능력 모두 취약한 한국군으로서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위협이다. 한국군 당국의 평가처럼 김군옥영웅함은 분명 고철 잠수함 선체를 이어 붙인 퇴물이 맞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한국군은 그 퇴물에 대응할 확실한 대잠 작전 능력도, 그 퇴물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막을 MD 능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 신형 잠수함의 위협을 재평가하고 MD·대잠 전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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