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특권 포기’ 선언했던 이재명, 당에 ‘부결’ 직접 요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0일 21시 10분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했던 이재명, 당에 ‘부결’ 직접 요구

단식 투쟁 19일째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오전 녹색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2023.9.18/뉴스1
‘검찰독재의 폭주기관차를 멈춰 세워주십시오.’

20일 오후 1시 30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단식 중 병원으로 옮겨져 3일째 입원치료 중인 이 대표가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하루 앞두고 직접 입장을 밝힌 것.

이 대표는 “정치의 최일선에 선 검찰이 자신들이 조작한 상상의 세계에 꿰맞춰 저를 감옥에 가두겠다고 한다. 명백한 정치보복이자 검찰권 남용”이라고 썼다. 이날 오후 4시로 예정된 의원총회를 2시간여 앞두고 ‘부결 당론’을 채택해줄 것을 사실상 촉구한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하루 앞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공개 의원총회에 의원들이 참석하고 있다. 2023.9.20/뉴스1 ⓒ News1
2시간 45분 가량 이어진 의총에서 당 최고위원회는 “부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결론내리면서도 “그러나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하진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탄 정당’이라는 비판 여론에 대한 부담이 큰 데다, 비명(비이재명)계에서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반발이 이어지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6월 불체포특권 포기르르 선언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불체포특권을 포기한다고 한 이 대표가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 李 “부결” 갑작스런 촉구에 원내지도부 당황
이 대표가 표결 관련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월 첫 체포동의안 표결 때는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에 대해 날을 세웠을 뿐, 체포동의안 표결 관련 언급은 피했다.

이 대표의 메시지는 예정에 없다가 이날 오전 급하게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의 의견 수렴 중이던 원내지도부도 이 대표의 갑작스런 메시지에 크게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병문안 때도 건강상태가 좋지 못해 길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 이 대표는 이날 구두로 1989자 분량을 읽었고, 이를 최측근이 받아 써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2월 체포동의안 표결 때도 지도부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이탈표가 있었던 만큼, 이번에도 혹시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에 이 대표가 직접 나서 부결을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1일 표결에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재적의원(297명)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시 가결된다. 입원 중인 이 대표와 구속 중인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출석한다고 가정했을 때 148명이 가결정족수다. 국민의힘 소속(111명) 및 국민의힘 출신 무소속(2명)에 불체포특권 포기를 당론으로 정한 정의당(6명)과 시대전환 조정훈 대표까지 가결표를 던진다고 계산할 경우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진영에서 28명만 이탈해도 가결된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장기화되면서 ‘이제는 끝을 내야 한다’는 당내 피로감이 적지 않다”며 “원내지도부 내에서도 가결 필요성이 나오는 등 당 내 여론이 엇갈리고 있어 결과를 전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검찰 안팎에선 영장실질심사에 대한 거부감 탓에 이 대표가 당초 공언과 다르게 부결을 호소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대표가 법률가임에도 초조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법리 대결이 아닌 여론전으로 사건을 끌고 가려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병원에서 회복 치료 중인 이 대표는 현재 거동이 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오전 표결을 앞두고 전국 원외지역위원장과 지지자들이 대거 국회에 집결하기로 한 가운데 당내에선 이 대표가 깜짝 등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 당 지도부, 부결 당론으로 정하진 않아
이날 당 지도부는 ‘부결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밝힌 뒤 의총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소영 원대대변인은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부결을 당론으로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의총에서도 의원들에게 이 같이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날 30여 명의 의원들이 발언에 나선 가운데 ‘부결’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일부 비명계 의원들은 가결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명계 의원들은 “무슨 근거로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약속을) 우리가 뒤집나”, “각자 양심에 따라서 투표해야 한다”고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내대변인도 “지도부의 요청 공감하는 의견도, 공감하지 않는 의견도 있었다”고 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이럴 거면 왜 불체포특권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고, 본회의장에서 뜬금없이 왜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했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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