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인공기 사용 금지 처분을 무시한 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여했다. WADA는 선수들이 경기 또는 훈련 중에 성과 향상을 위해 금지된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진 독립 국제 감시기구다.
북한 선수단은 23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인공기를 들고 입장했다. 남자 사격의 박명원 선수와 여자 복싱의 방철미 선수는 인공기를 들고 선수단을 이끌었다. 이어 다른 북한 선수들도 손에 작은 인공기 깃발을 들고 입장했다.
앞서 WADA는 지난 2021년 10월 북한의 반도핑기관이 국제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올림픽·패럴림픽을 제외한 국제대회에서 북한 국기의 게양을 금지했다. 지난 5월 WADA측은 미국의 소리(VOA)를 통해 “북한은 여전히 국제대회 참가를 위한 도핑방지규약 의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같은 북한 인공기 게양 규제로 인해 지난 8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국제태권도연맹(ITF) 세계선수권대회는 모든 참가국의 국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22일 아시안게임 선수촌 입촌식을 비롯해 탁구와 축구 등의 종목에서 인공기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 21일 북한과 대만의 남자 축구 경기에 이어 22일 북한과 일본의 탁구 남자단체 경기장에도 인공기가 게양됐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이 순위권에 오를 경우, 시상식에서 WADA의 제재를 위반하는 인공기 게양도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은 역도와 레슬링, 사격, 권투 등 여러 종목에서 메달권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규정 위반에 최근 WADA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등 아시안게임 주최 측에 인공기 게양 관련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WADA의 금지 처분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인공기 게양이 이뤄진 배경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한과 중국의 우호적인 관계, 북한이 5년 만에 종합 국제대회에 복귀한 상황 등이 고려된 것이 배경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WADA의 게양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북한 반도핑 기관에 대한 외부 감시단의 시찰 등 시정 조치가 필요하다. 매년 최대 6번의 현장 방문을 해야 하고 도핑 검사 등 모든 비용은 북한 측에서 사전에 부담해야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며 시정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WADA 측은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를 통해 “우리의 조치가 존중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면 관련 단체들과 접촉하고 시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필요하다면 결과를 이행하지 않는 단체에 대해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지난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 불참했다. 이로 인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고, 지난해 12월 31일 징계가 풀렸다. 이후 북한은 우호적 관계에 있는 중국 주최의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며 국제 스포츠 무대로 복귀했다. 북한은 이번 아시안게임 총 17개 종목에 185명 선수를 파견했다.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 출전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이후 5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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