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조 원이 넘는 투자가 이뤄지는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사업’과 관련해 “우리 지역 숙원 사업부터 해결해달라”며 인허가를 지연시킨 여주시장에 대해 감사원이 주의 처분을 내렸다. 전임 시장 시절 건축 허가를 받았던 ‘물류센터 사업’을 “주민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백지화시키려 한 경기 양주시장도 같은 처분을 받았다.
감사원은 25일 소극 행정 개선 및 개혁 추진 실태 감사 보고서를 내고 이 같은 지자체장들의 권한남용 사실을 지적했다. 감사원은 여주시와 양주시 사례를 전국 지자체에 알려 앞으로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통보했다. 감사원이 규제기관의 권한남용과 소극행정 등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감사를 실시한 결과다.
● 국책사업 인허가 볼모로 市 지원 요구
감사원에 따르면 이충우 여주시장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마무리 단계에 있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 관련 인허가 절차를 중단하라는 취지로 실무진에게 지시했다. 사업 시행사는 법적으로 갖춰야 할 인허가 요건을 모두 충족한 뒤 시의 결정만을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SK하이닉스가 120조 원, 정부가 2조3000억여 원을 투자하기로 한 이 사업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반도체 기업이 모인 산업단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1만7000명 이상의 일자리가 생겨나고, 188조 원의 부가가치를 유발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산단 가동을 위해 공업 용수를 끌어오려면 인근 남한강에 관로를 설치해야 했고, 남한강을 관할하는 여주시의 인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 시장은 정부에 “상생 방안이 필요하다”며 인허가 조건을 제시했다. 국토교통부에는 ‘자연보전권역’으로 지정된 여주시 일부 지역을 개발이 자유로운 ‘성장관리권역’으로 조정해 달라고 했고, 경기도엔 여주시를 ‘K-반도체 벨트’에 포함시켜 달라고 했다. 정부가 여주시 숙원 사업을 해결해줘야 국책사업을 위한 인허가에 협조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시장은 지난해 11월 여주시에 산단을 조성한다는 약속을 받은 뒤에야 인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부당한 사업 지연으로 사업 시행사가 공사비와 대출 이자 등 한 주에 17억 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강수현 양주시장은 적법하게 건축 허가를 받은 양주 옥정신도시 물류센터 건설 사업에 대해 신도시 입주 예정자들이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민원을 넣었다는 이유를 들어 건축 허가 신청을 반려했다. 양주시는 지난해 11월 뒤늦게 인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시행사는 매달 6억7000만 원 가까운 손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 ‘무단 휴업 택시’ 방관, 요금 인상
개인 택시의 무단 휴업 등으로 택시 운행률이 면허 대수의 57%에 불과한데도 서울시가 업계 반발을 우려해 제대로 된 규제를 하지 않았다는 감사원의 지적도 나왔다. 택시 부족으로 시민 불편이 커지자 서울시는 무단 휴업 택시의 운행을 강제하는 대신 요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택시 운행률을 높이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1월 택시 기본요금은 3800원에서 4800원으로 올랐고, 심야 할증 시작 시간은 기존 자정에서 오후 10시로 당겨졌다. 감사원은 서울시 과·팀장급 직원 3명의 징계를 요구했다.
금융위원회가 핀테크 사업자들의 금융 규제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주는 ‘혁신금융 서비스’를 운용하면서 소관 과의 사전심사를 거쳐 일부 업체만 신청서를 낼 수 있도록 권한을 남용한 사실도 이번 감사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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