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특위 시한 내년 5월로 연장
여야가 이달 말로 종료되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의 활동 기한을 내년 5월까지 연장하기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2일 알려졌다. 지난해 7월 구성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인 상태를 이어가다 두 번째 연장에 나서는 것. 여야는 기한을 연장하는 대로 국민 공론조사를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지만, 정치적 부담 때문에 논의를 1년 넘게 미뤄 오던 여야가 결국 이번 21대 국회에선 이 문제를 처리하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연금특위 여야 간사인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0월 국회에서 ‘연금특위 활동 기간 연장의 건’을 처리하기로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구성된 연금특위는 올해 4월 30일까지 운영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론의 관심이 큰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母數) 개혁 문제가 떠오르자 정치권은 “‘구조 개혁’이 먼저”라며 논의 속도를 늦췄다. 이에 연금특위 활동 기한이 이달 말까지로 한 차례 연장됐지만, 연장된 5개월 동안 열린 전체회의는 단 두 차례뿐이었다.
연금특위 출범 1년 지나서야 여론수렴… “정치권 개혁의지 없다”
특위 활동시한 내년 5월까지 연장
‘5년전 실패 답습’ 공론화委 추진
총선 앞두고 합의 도출 쉽지않을듯
사실상 ‘22대 국회로 미루겠다’ 선언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활동 기한을 내년 5월로 연장하는 것은 국민연금 개혁을 사실상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총선 이후로 미루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연금특위가 ‘국민과 이해 관계자들의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명분을 댔지만, 2018년에도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의견을 듣겠다’며 논의를 미루다가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5년 전 실패한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정치권이 사실상 연금 개혁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특위 꾸린 지 1년 지나서야 “여론 수렴”
연금특위는 활동 기한을 미루는 대로 국민 500명을 대상으로 한 공론화조사위원회 설치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여론을 충분히 들어본다는 취지다. 그러나 연금특위가 결론을 내기까지는 적잖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연금특위는 공론화조사에서 연금 가입자가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母數) 개혁뿐 아니라 기초연금 차등 지급 등 다른 제도에 대한 여론도 확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사 문항과 방식을 조율하는 데에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치권은 공론화조사위 예산도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7월 연금특위가 출범한 지 1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야 ‘여론부터 들어 보겠다’며 결론을 미룬 자체가 ‘책임 회피’라는 지적도 나온다. 2055년으로 예견된 국민연금 기금 소진을 늦추려면 보험료 인상 등 ‘인기 없는’ 개혁안을 밀어붙여야 하는데, 이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2018년 12월 정부는 국회에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4개 방안으로 조합한 ‘사지선다형’ 개편안을 제출했는데, “국민 여론조사에서 현행 유지안에 찬성하는 비율이 50% 정도 나왔다”며 현행 유지안을 끼워 넣으면서 개혁 동력이 약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연금 개혁을 미루면 향후 ‘보험료 폭탄’을 맞게 될 미래 세대가 정작 이번 조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것도 맹점이다.
● “이해 관계자 뒤에 숨으면 개혁 안 돼”
연금특위가 논의 과정에서 가입자 단체 등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듣기로 한 것을 두고도 5년 전 개혁 실패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019년 1월 단 한 차례 연금 개편안을 논의한 후 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개혁특위’가 합의안을 만들면 이를 토대로 논의하겠다며 공을 넘겼다. 하지만 국민연금개혁특위는 총 22차례 회의를 열고도 합의점을 내지 못하고 활동을 마쳤다. 참가자들이 소속 집단의 입장만 대변하면서 논의가 평행선을 그렸다. 당시 참여한 한 전문가는 “각 집단을 대표해서 나온 이들이 ‘돌 맞을’ 발언을 피하면서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내년 ‘총선 모드’로 돌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가 숙의를 해낼지는 미지수다. 연금특위 여당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최소한 모수 개혁 정도는 기본적으로 논의해 놨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수 개혁과 구조 개혁을 한꺼번에 하려니 논의가 늦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연금특위 야당 관계자는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의 종합보고서가 빨리 나와야 본격 논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국회 연금특위 논의와 별개로 이달 안에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확정해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개혁을 미루는 사이 연금 재정은 악화하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1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2026년에는 연금 지출이 올해 대비 55.5% 늘어난다고 예측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에 참가하는 한 전문가는 “베이비부머 2세대(1965∼1974년생)가 조금이라도 더 노동시장에 남아 있을 때 개혁하지 않으면 5년 후엔 재정 안정에 필요한 보험료 인상 폭이 너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