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편은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51화입니다.
재판장님 죄송합니다만, 청이 하나 있습니다. 보석 조건 때문에 제가 정진상 피고인과 전혀 접촉을 못 하는데, 법정 안에서라도 휴정하거나 재판 종료되면, 대화는 하지 않을 테니까 신체 접촉만 할 수 있도록 그것만 부탁드립니다. 안아보고 싶습니다.“
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서관 311호. 법정에 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재판 끝무렵 재판부에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재판장인 김동현 부장판사는 “지금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이 대표는 “아니요. 끝나고 하겠습니다”고 답했습니다. 이후 이 대표는 정 전 실장의 등을 토닥이고 껴안은 뒤 악수를 나누고 법정을 떠났습니다.
● 포옹 허락 받은 이재명… 현직 법관들, “이례적인 일”
우선 정 전 실장의 ‘보석 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올해 4월 21일 당시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병구)는 정 전 실장의 보석 요청을 허가하며 △법원이 지정하는 일시장소에 출석하고 증거인멸하지 않겠다는 서약 △보증금 5000만 원 △출석보증인이 작성한 출석보증서 제출 △사건 관련자들과 통화나 문자, SNS 등으로 연락하거나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축하는 일체의 행위 금지 등의 조건을 붙였습니다.
이 대표가 재판부에 ‘포옹 허락’을 받은 건 사건 관계자와 직간접적 접촉을 금지한 마지막 조건을 염두해 둔 걸로 보입니다. 정말 보석 조건이 포옹마저 금지하는 걸까요? 경력 15년 이상의 현직 법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A 판사는 “재판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증거인멸의 우려 때문에 접촉을 금지하는 것일 뿐 신체적 접촉을 금지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재판 경력 15년의 B 부장판사 역시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 대표 본인이 변호사라 잘 알 텐데도 포옹 요청을 한 건 퍼포먼스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추측했습니다. 경력 10년 이상의 형사재판 전문 변호사 역시 “정 전 실장에게 여전히 한 팀임을 어필하는 한편, 대중에 그 모습을 노출함으로써 정 전 실장이 자신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것에 저항감을 주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했습니다. 포옹의 진짜 의미는 이 대표와 정 전 실장만이 알 것으로 보입니다.
● 법원의 고민거리 된 ‘이재명 건강과 당 대표 스케줄’
이날은 이 대표와 정 전 실장의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의혹’ 첫 공판 기일이었습니다. 6차례 공판준비절차를 거쳐 기소 6개월 만에 열린 첫 대장동 공판은 이 대표 측 변호인이 건강 문제를 호소해 약 1시간 20분 만에 끝났습니다.
검찰과 변호인 측은 단식을 24일간 한 이 대표의 건강 상태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변호인 측은 재판부에 장기간 단식으로 이 대표가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 상태임을 설명하며 “얼마 전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8~9시간 장시간 법정에 앉아 있어서 굉장히 큰 후유증을 남겼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상 재판 소화는 매우 어려워 보이며 차회 기일에서 공방이 이뤄지는 게 합리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검찰 측은 이 대표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면서도 “SNS 활동을 하는 걸 봐서는 일단 오늘 모두 절차를 진행할 정도는 되는 것 같다”며 정상적인 재판 진행 진행을 요청했습니다. 재판부는 결국 이 대표의 건강을 고려해 검찰이 준비해 온 4시간 분량의 모두 진술 중 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 부분만 읽게한 뒤 재판을 끝냈습니다.
공판 말미 이 대표 측 변호인은 “24일엔 중요한 국감 일정이 있다”며 재판부에 일정 조정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대표가 국회의원, 당 대표라서 일정 없는 날이 없을 것이지만 다 고려할 수 없다”고 엄중히 말했습니다.
● 이 대표 불출석에 ‘3분 컷’ 된 공판…재판부 “다음엔 안 나와도 진행”
1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강규태) 심리로 열린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도 3분 만에 끝났습니다. 이 대표가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불출석 하느냐”는 강규태 부장판사의 물음에 이 대표 측 변호인은 “오늘 국정감사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재판부는 “고민해봤는데 원칙대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선거법 공판에 불출석하면 당연히 빨리 종결하자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공직선거법 제270조는 ‘선거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해야 하며, 1심은 공소제기 6개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일반 형사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6개월 안에 판결해야 하는 공선법의 경우 제270조의2에 따라 피고인이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부가 다시 기일을 정하고, 이후에도 출석하지 않으면 예외적으로 피고인 없이 재판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대표 측 변호인도 재판부에 “재판 자체를 (이 대표 출석 없이) 진행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이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피고인인 이 대표가 직접 법정에 나와 자신을 둘러싼 혐의에 대한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 출석 여부 상관없이 27일 당초 일정을 진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날 건강 문제를 이유로 소속 상임위원회인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9월 8일 기소 된 이 대표의 공선법 위반 공판은 이미 1년을 훌쩍 넘겨 1심 심리 중입니다. 8월 25일 이후 50일 만에 재개된 공판마저 이 대표의 불출석으로 3분 만에 끝나면서 재판부의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 ‘100회’ 맞은 ‘대장동 본류’ 사건 재판
한편 ‘대장동 본류’ 사건은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100회차 공판이 열렸습니다. 지난해 1월 10일 첫 공판 이후 1년 반 넘게 진행되면서 배임 혐의에 대한 심리는 어느 정도 마무리 된 상황. 최근엔 이해충돌방지법 혐의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증인 신문이 시작 될 예정이었던 이날 공판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던 이현철 당시 공사 개발사업2처장이 사정상 나오지 못하면서 일주일 뒤인 20일로 연기됐습니다.
같은 날 오전 513호 법정에선 형사1단독(부장판사 김상일) 심리로 화천대유 대표이사 이한성 씨의 보석조건 변경 심문 기일이 진행됐습니다. 이 씨는 김만배 씨의 범죄수익은닉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데 김 씨와 만나지 않는 등의 조건으로 석방된 상황입니다.
이 씨측 변호인은 “화천대유는 엄연히 직원이 있는 회사”라면서 “최우향 이사, 김만배 이사와 대표이사 이성문이 자산매각 혹은 소송 대응에 대한 이사회 회의를 해야한다”며 재판부에 이들이 화상 회의를 할 수 있게 보석조건 완화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검찰 측은 “절대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구속 사건인 만큼 (변호인 측 요청은) 오히려 보석을 다시 취소할 사안”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재판부는 고민하다 “무죄추정원칙이 유지되는 이상 회사 유지는 가능하게 해야할 것 같으니 회의를 해야는 할 것 같다”며 변호인과 검찰 측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시해달라”며 심문 기일을 마쳤습니다.
김 씨 등의 범죄수익은닉 혐의 재판은 11월 29일 열립니다. 다음주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이 대표와 정 전 실장의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의혹’ 혐의 재판이 열립니다. 12일 검찰이 이 대표에게 백현동 관련 혐의를 분리해 추가 기소한 사건 역시 같은 재판부에 배당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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