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퇴임하고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22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대법관들이 16일 회의를 열고 차기 대법원장이 임명될 때까지 후임 대법관 제청 절차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선임대법관인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후임 대법관을 제청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이 퇴임하는 내년 1월 1일까지 대법원장이 임명되지 않을 경우 대법관 3명이 공석이 되면서 대법원이 파행 운영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장이 일단 임명돼야 대법관 2명의 후임 제청 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이달 말 대법원장이 임명돼도 이미 일정상 대법관 2명 자리는 한달 간 공백이 불가피하다. 대법원장 공백이 길어질수록 대법관 공백도 계속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대법원 소부 선고까지 차질빚을 듯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안 권한대행은 16일 오후 대법관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참고해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결정했다. 안 권한대행은 회의에서 “권한대행의 권한은 현상 유지가 원칙이므로 통상 업무에 속하는 사항에는 권한을 행사하되 정책적 결정이 필요한 사항은 유보하거나 자제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먼저 대법관들은 대법관 제청권은 헌법에 규정된 대법원장의 권한인 만큼 안 권한대행이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법원행정처는 대법관회의 후 “2024년 1월 1일자로 임기가 만료되는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인선 절차는 부득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대법관 인선에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추천, 대법원장의 후보자 제청, 국회 인사청문회 개최 등으로 약 3개월이 걸린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1일까지 대법원장이 임명되지 않으면 대법관 3명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게 된다. 이 경우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 선고도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된다. 대법관 한 명이 한 해 처리하는 사건은 지난해 기준으로 4038건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이날 회의에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과 국민 천거 등 일부 사전 절차는 진행하고 최종 제청을 새 대법원장이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관 공백 사태가 현실화되면 대법관 4명의 자리가 약 20일간 비었던 2012년 7~8월 이후 11년 만이다.
● 전합 심리는 진행…선고까진 어려울 듯
다만 대법관들은 안 권한대행이 전원합의체(전합) 재판장 권한대행으로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고, 법관 정기 인사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전합은 대법관 전원(13명)이 모여 소부에서 이견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을 논의하는 자리로, 전합의 재판장은 대법원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민의 충실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안 권한대행이 재판장을 대행해 심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대법관들의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권한대행 체제로 선고까지 내릴지 여부에 대해선 결론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적으로는 안 권한대행이 전합 재판장을 맡을 수는 있지만, 실제 선고를 내리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한다. 또 “심리는 하되 선고는 미뤄야 한다”는 의견과 “심리와 선고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선고를 하지 않으려면 심리도 해선 안된다”는 의견도 각각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관들은 일단 안 권한대행이 재판장을 맡아 전합 사건을 심리하되 선고 여부는 사건의 시급성과 필요성을 고려해 결정하기로 했다. 현재 전합에 올라온 사건은 5건이다.
대법관들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도입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계속 실시할지 여부도 권한대행이 결정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보고 결론을 내지 않았다. 내년 초 법원장 등 법관 정기인사와 법원 공무원 인사는 안 권한대행 주재로 진행하기로 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대법원장 후보자로 오석준 대법관(사법연수원 19기), 홍승면 서울고법 부장판사(18기), 이종석 헌법재판소 재판관(15기), 이광만 서울고법 부장판사(16기), 조희대 전 대법관(13기)을 각각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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