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닻을 올렸습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국민의힘이 꺼내든 카드죠. 어렵게 출범한 혁신위인 만큼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어느덧 너무 꼬여버려서 정치권이 스스로 풀지 못하는 난제를 정치권 밖에서 온 사람들이 현명하게 해결해주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쪽도 싫고, 저쪽도 싫다’라는 정치혐오층에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약간의 기대감이라도 심어줄 수 있길 바라봅니다.
민주당 출입 기자인 저는 앞서 올여름 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가 제대로 ‘폭망’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혁신을 못 하는 혁신위는 정말 없느니만 못하더군요. 인요한 혁신위가 김은경 혁신위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라며 지켜봤던 주요 관전 포인트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 성공포인트 1. 인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혁신위를 구성하는 면면일 겁니다. 인 위원장이 10월 26일 발표한 혁신위원 명단을 두고 여야에선 일단 “고민한 흔적은 보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12명의 혁신위원 중에는 현역 의원 중에선 유일하게 박성중 의원(재선, 서울 서초을)이 이름을 올렸죠. 전직 의원 중에선 내년 총선에서 서울 동대문을에 도전하는 검사 출신 김경진 전 의원과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으로 서울 광진을에 도전하는 오신환 전 의원이 포함됐습니다. 일단 전현직 의원을 모두 수도권 출신들로 배치해 ‘수도권 위기론’에 대응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름 ‘통합’의 색채를 내려는 시도도 엿보입니다. 사실 박성중 의원은 국회에서 ‘고성’과 ‘갈등’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라 혁신과는 거리가 먼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긴 합니다만, 계파로만 따져보면 사실 친윤(친윤석열) 색채는 상대적으로 옅은 편이죠. 김경진 전 의원도 친윤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소장파인데다,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소속으로 광주 북구 갑에 출마해 광주·전남 최다 득표율(70.8%)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오 전 의원은 친오세훈계로, 미래통합당 출신의 비윤 인사입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비윤계 내에서도 일단 쇄신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로 혁신위를 꾸리려 했다는 의도 자체에 대해선 크게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일단은 지켜보자는 기류”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도 “윤희숙, 천하람 등 확실한 비윤계에도 혁신위 합류를 제안했지만 그들이 거절한 것 아니냐”라며 “비윤계도 혁신위 인선 면면만 두고 일방적으로 비판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주당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입니다. 공식적으로는 “구태 혁신위원 인선 그 자체가 실수” “혁신의 주체가 아닌 혁신의 대상들”(강선우 대변인) “비윤은 빠진 ‘비운’ 혁신위”(정청래 최고위원) “60일간 하루 1점씩 까먹는 혁신위가 될 것”(장경태 최고위원)이라고 평가절하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래도 김은경 혁신위보다는 낫다”라는 분위기가 있네요.
앞서 6월 김은경 혁신위는 7명의 위원을 발표했는데 그중 6명이 이재명 캠프 제주선거대책위원회 공동본부장 출신, 이재명 지지 선언을 한 재야 지식인 출신, 이재명 대리인으로 대통령 후보 등록한 사람 등 이른바 ‘친명’(친이재명) 사단이었죠. “혁신위가 아니라 차라리 ‘이재명 친위부대’라 해라”는 당 안팎 비판이 쏟아졌던 것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인지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우리 당부터 잘해야지, 우리가 누굴 비판하고 걱정하느냐”고 했고, 재선 의원도 “적어도 저기는 ‘친윤 일색’이라는 말은 안 나오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 성공포인트 2. 혁신의 명확한 목표와 방향 제시
인선을 마친 인요한 혁신위가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혁신의 목표와 그를 위한 운영 방향부터 명확하게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김은경 혁신위가 활동하는 내내 어떤 말을 해도 줄곧 반발만 샀던 이유는 ‘누구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한 당내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채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김은경 위원장은 6월 20일 첫 회의를 열고 “정당 공천 과정에서 현역 의원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체계를 혁파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즉시 “비명(비이재명)계 총선 물갈이를 의도한 발언이냐”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사실 ‘기득권 혁파’, ‘현역 의원 물갈이’ 등의 키워드는 선거를 앞두고는 줄기차게 나오는 ‘클리셰’같은 것인데도 김 위원장이 말하니 다들 들고 일어난 겁니다. 혁신위가 인선부터 워낙 말이 많았던 탓에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게 크겠죠.
이재명 대표가 “혁신 기구가 우리 당과 정치를 새롭게 바꿀 수 있도록 이름부터 역할까지 모든 것을 맡기겠다”며 전권을 위임했지만, 이미 ‘친명 혁신위’라는 타이틀이 붙어버린 상황에서 어떤 맞는 말을 하고 제안을 해도 “결국 비명계 공천 학살을 하려는 것이냐” “사법리스크 투성이인 이재명 대표 체제부터 혁신해라”는 반발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비명계인 조응천 의원도 “혁신위 역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지도부의 별동대 비슷하게 보는 것”(6월 15일 CBS라디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김은경 혁신위는 그 뒤로도 혁신 목표와 운영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 채, 제안하는 쇄신안마다 족족 ‘보이콧’을 당했습니다. 1호 쇄신안으로 내놨던 △의원 전원의 불체포특권 포기 △체포동의안 당론 가결은 의원들의 거센 반발 속 의원총회에서 한 차례 결의가 불발되는 망신도 당했죠. 결국 쫓기듯 부랴부랴 조기 퇴장하면서 내놓은 ‘대의원 투표권 폐지’ ‘권리당원 투표권 비중 강화’ 쇄신안 역시 “결국 개딸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냐”는 비판 속 당내 분란만 키웠습니다.
김은경 혁신위와 임기를 함께 한 민주당 원내지도부 출신 한 의원은 “인요한 혁신위도 일단 내부 과제와 목표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그랬듯,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도 인요한 혁신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말은 했지만, 혁신위가 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혁신해도 되는 것인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겁니다. 공천룰까지 건드려도 되는 것인지, 지도체제를 바꾸는 것인지 이런 점이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고, 당내에서 명확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혁신위가 어떤 말을 해도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살 것이라는 거죠.
또 다른 민주당 의원 역시 “혁신의 방향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하게 하고 시작해야 한다”며 “국민의힘도 ‘용산 거수기’같은 당 지도부에 대해 쓴소리를 하면 무조건 배제시키고 몰아세우는 것이 민주당과 비슷한 상황 아니냐. 그런 당 문화부터 혁신하겠다고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 성공포인트 3: 리스크 매니징
마지막으로 인요한 혁신위가 성공하려면 설화와 논란도 최소화해야 합니다. 언론 트레이닝이 덜 된 비정치인 출신들이 많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말실수가 나오기 쉽고, 수습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생깁니다. 김은경 혁신위도 돌아보면 솔직히 기억에 남는 ‘노인 폄하’ 사건부터 ‘초선의원 비하’ 논란, ‘시누이의 가족사 폭로’ 등 대형 사고뿐입니다.
이재명호는 사법리스크와 돈봉투 의혹 등 각종 부정부패 논란 속 침몰 위기에 처하자 부랴부랴 ‘김은경 혁신위’를 띄웠지만 결국 더 큰 암초를 만난 꼴이 됐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대패 충격 속 인요한 혁신위를 띄운 국민의힘은 순항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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