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의원 1인당 515건 요구 ‘역대급’
올해도 비슷한 수준 자료 요청 추정
출석기관들 질문도 못받고 돌아가
“피감기관 감시 못하고 맹탕” 지적
올해 국회 국정감사를 받은 전체 피감 기관 791곳 중 최소 164곳(20.7%)이 국감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한 차례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상임위원회 17곳 가운데 겸임 상임위를 제외한 상임위 14곳의 국감 일정이 끝난 상태다. 국감 기간(18일) 동안 상임위 1곳이 하루 10개 이상 기관을 동시에 감사한 횟수는 27회에 달했다. 10개 이상 기관이 같은 날 함께 감사를 받은 기관(441곳) 중 한 번도 답변 못 한 기관이 164곳(37.2%)으로 29일 집계됐다.
지난해 국회가 피감기관에 요구한 공식 자료 제출 요청 건수가 16만 건에 육박했다. 올해도 이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 정치권에서는 “자료 제출 요구만 요란하고 정작 알맹이는 없는 맹탕 국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지난해 의원 1인당 자료 요구 10년 새 최대
동아일보가 이날 국회사무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국회가 피감기관에 요청한 자료는 15만7836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14만4962건)보다 1만3000건가량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피감기관은 745곳에서 784곳으로 늘었다. 의원 한 사람당 자료 제출 요청 건수는 515.8건으로 최근 10년 사이 가장 많았다. 종전 최고치였던 2018년(503.6건)보다도 12건가량 늘었다. 이 같은 수치는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의결한 공통 자료 요구만 계산한 것으로 의원실이 개별적으로 피감기관에 요구한 자료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21대 국회 마지막 국감인 올해 국감도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A 의원실은 8월 초부터 이달 20일까지 공식 자료 290건에 더해 개별적으로 비공식 자료 431건 등 총 721건의 자료를 피감기관에 요청했다. A 의원실 관계자는 “자료 요구 건수가 700건을 넘어서면 물리적으로 모두 검토할 시간이 없다”며 “잊고 있다가 ‘이런 자료도 요청했었구나’ 하는 자료도 있다”고 했다.
여당도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 B 의원실 역시 같은 기간 공통 자료 200건을 포함해 600건 수준의 자료를 요구했다. B 의원실 관계자는 “피감기관이 무성의한 답변을 하거나 자료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 때문에 질의 한 개를 준비하는 데 한 번이면 될 자료 요구를 20번 넘게 하게 된다”고 했다.
피감기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법상 피감기관을 상대로 한 자료 요구 권한은 본회의나 상임위와 같이 회의체에 있다. 개별 의원실의 자료 요구는 강제성이 없는 ‘업무 협조’ 형태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중앙 부처 기조실 소속 5급 사무관은 “의원실별로 기선 제압을 하겠다며 말도 안 되는 분량을 요구하거나 아예 엑셀 파일을 던져주고 빈칸을 채워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인 2020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페이스북에 “국감에서 약 2000건의 자료를 요구했다”며 “법적 근거 없는 국정감사는 거부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 출석기관 17곳 중 15곳 질문 못 받은 상임위도
자료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작 상임위장에선 입 한번 못 떼본 피감기관장도 수두룩하다. 이날 시민단체인 국정감사NGO모니터단에 따르면 올해 국감 때 상임위 1곳에서 하루 10개 이상 동시에 감사한 피감기관 441곳 중 답변을 한 차례도 하지 못한 기관은 164곳이다.
10월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기상청 국정감사에서는 출석 기관 17곳 중 15곳이 질문을 한 차례도 받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다 돌아갔다. 환노위 의원들은 이날 오후 기상청 현장시찰을 이유로 오전에만 2시간 국감을 진행했다.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오늘 많은 기관장님들이 참석했는데 한 말씀도 못 하신 분들도 있다”며 해당 기관장에게 발언 기회를 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발언하고 싶은 분이 계시느냐”는 이상헌 문체위원장의 질문에 김세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은 손을 들어 단상에 서서 “발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국정감사가 피감기관 감시라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공격을 위한 어떤 수단으로 바뀌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협치를 할 수 있도록 여야 문화나 상임위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