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이 박사는 이날 오후 6시 53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 박사는 이 전 대통령이 하와이에 체류하던 시절인 1961년 양자로 입적됐다. 당시 전주 이씨(李氏) 문중이 결정했다. 이 전 대통령이 86세로 고령인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영어로 대화할 줄 알아야 하고, 미혼이며 가정교육이 바른 집안이어야 한다는 조건에 적합한 사람이 이 박사였다고 한다. 이 박사는 양녕대군의 17대손으로, 16대손인 이 전 대통령과 계대가 맞기도 했다.
이 박사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 법정대학장을 지냈다. 1996년부터 이 전 대통령 기념사업회에서 활동하며 이 전 대통령의 명예 회복에 힘썼다.
이 박사는 2011년 4·19혁명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고 사과문을 발표하려 했으나 ‘사죄가 진정성이 없고 갑작스럽다’는 희생자 단체 측 저지로 무산됐다.
이후 4·19혁명 63년 만인 올해 9월 1일 이 박사는 이 전 대통령 유족으로는 처음으로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내 유영봉안소를 찾아 참배했다.
이 박사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로서 4·19 민주 영령들에게 참배하고 명복을 빌었다”며 “4·19혁명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와 아울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참배와 사과에 대해서 항상 국민을 사랑하셨던 아버님께서도 ‘참 잘하였노라’ 기뻐하실 것”이라며 “국민 모두의 통합과 화해에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박사의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오는 4일 오전이다. 장지는 충북 국립괴산호국원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혜자 여사와 두 아들 병구·병조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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