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후보자에 ‘원칙주의자’ 조희대
尹, 이균용 국회 부결 33일만에 지명
보수 성향… 대통령실 “인준 신경써”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에 조희대 전 대법관(66·사법연수원 13기·사진)을 지명했다.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61·16기)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야당 주도로 부결된 지 33일 만이다. 보수 성향의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조 전 대법관이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됨에 따라 국회 인준 여부가 또다시 변수로 떠오르게 됐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조 후보자의 지명 사실을 알리며 “대법관으로서 원칙론자로 정평이 날 정도로 법과 원칙이 바로 선,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력을 보여 왔다”고 밝혔다. 또 “원칙과 정의, 상식에 기반해 사법부를 이끌며 사법부 신뢰를 신속히 회복해 나갈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9월 퇴임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부의 정치화, 재판 지연 등으로 법원의 신뢰가 크게 실추됐다고 보고 법원 개혁을 위한 확고한 리더십과 통솔력을 갖춘 인물을 물색하다 고심 끝에 조 후보자를 지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경주 출신인 조 후보자는 대구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6년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임관해 30년 가까이 법관으로 일했다. 2014년 3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으로 대법관에 임명됐으며, 퇴임 후 로펌에 가지 않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해 왔다. 이른바 고위 법관의 퇴임 후 ‘전관예우’ 논란에서 자유롭다.
다만 1957년생인 조 후보자는 대법원장 정년(70세) 규정상 임기 6년을 다 채우지 못한다. 윤 대통령 퇴임(2027년 5월) 한 달 뒤 시점이기도 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부분과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오래되면 안 되는 부분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조희대, 尹과 통화서 “헌법이 정한 대법원장 역할 하겠다”
[대법원장 후보자에 조희대] 이균용 인선때 고사, 尹이 직접 전화… 曺, 주변에 “지명될줄 생각 못했다” 대법관 퇴임후 로펌대신 로스쿨 강의 사법행정 경험 적은 점이 단점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61·사법연수원 16기)의 국회 인준 부결 이후 고심을 이어가던 윤석열 대통령은 5일 조희대 전 대법관(66·사법연수원 13기)과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후보자는 “윤 대통령에게 헌법이 정한 틀 안에서 대법원장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지인들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최고법원 수장 후보자로서 행정권력과 사법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염두에 둔 답변으로 해석됐다. 헌법은 법관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 후보자는 지난달 6일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이 전 후보자 등을 검증, 지명하는 과정에서도 후보군에 포함됐다. 당시 대통령실 주진우 법률비서관이 직접 조 후보자를 찾아가는 등 대통령실이 설득에 나섰지만 조 후보자는 후보자 지명을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이 요청했던 오찬 자리에 참석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번엔 윤 대통령이 설득을 위해 직접 전화를 걸었고 조 후보자가 의향을 밝혀 이날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가 됐다. 조 후보자는 이날 주변에 “대통령이 지명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한다. 조 후보자는 이날 공식적으로는 “인사청문회 준비에 매진하겠다. 추가적인 말씀은 추후에 드리겠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 “선비형 법관, 안정적 개혁 전망”
경북 경주 출신인 조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통과하면 김용철 전 대법원장 이후 37년 만에 대구·경북(TK) 출신 대법원장이 된다. 조 후보자는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찾아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만날 계획이다.
대구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조 후보자는 대표적인 보수 성향 엘리트 법관으로 꼽힌다.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됐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일선 법원 요직을 두루 거쳤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3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의 임명제청을 받아 대법관에 임명됐다.
2020년 3월 대법관 퇴임 후 대형 로펌에 가지 않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대법관까지 지낸 법조인이 로펌에 가지 않은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응이 나왔다. 판사 시절에도 원칙주의자로 통했다. ‘선비형 법관’으로 분류될 만큼 공사 구분이 뚜렷했다고 한다. 배석 판사들이 불편할까봐 같이 식사하는 자리도 최소화할 정도로 엄격했다.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 제자들이 “집에 가져가시라”며 선물로 케이크를 사오자 “선물을 받으면 안 된다. 차라리 여기서 같이 먹자”고 한 일화도 있다.
2020년 대법관 퇴임 당시 조 후보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퇴임식을 고사했다. 주변에서 간소하게라도 퇴임식을 열자고 3차례 요청했지만 끝내 고사하고 기념 촬영도 하지 않았다. 동료 대법관 등이 “법원 내부망에 퇴임사라도 남겨 주시라”고 요청했지만 “조용히 떠나고 싶다”며 하지 않았다. 법원에선 “평판사보다 소박하게 떠난 대법관”이란 말도 나왔다. 불경을 가까이하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조 후보자는 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보 성향에 치우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선 ‘미스터 소수 의견’으로 불릴 정도로 보수적 목소리를 내왔다. 2019년 8월 자신이 주심을 맡았던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선 어떠한 뇌물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씨가 삼성그룹으로부터 받은 말 3필에 대해서도 “뇌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소수 의견을 밝혔다. 성전환자의 법적 지위와 환경법, 국제거래, 해상운송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판례 평석을 발표하는 등 법원 내 학구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조 후보자가 법원행정 경험이 적은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조 후보자의 이력상 사법행정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며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고 사법행정을 개혁하려면 법원행정처장을 누구로 기용할 것인지가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 “대통령과 인연 없고, 로펌 안 거쳐”
1957년생인 조 전 대법관은 대법원장 정년(70세) 규정상 임기 6년을 다 채우지 못한다. 조 전 대법관의 정년은 2027년 6월이다. 윤 대통령 퇴임(2027년 5월) 후 한 달 뒤 정년퇴임을 하게 돼 차기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게 되는 것. 여권 입장에선 대선에 더해 사법권력 변동 여지가 생기는데도 조 후보자가 지명된 것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수사와 김명수 코트에서 신망 있는 법관이 법원을 떠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한 달 넘게 장기화됨에 따라 국회 인준을 통과할 수 있는지도 검증의 주요 기준으로 작용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조 후보자는 대법관을 하고 나서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변호사를 하지 않고 대학원에서 후학을 양성했다”며 “인품 등을 봐서 충분히 (국회 인준을) 통과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늦어도 다음 달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날 전까진 후보자의 국회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판단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