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총선용 신간’ 출간이 줄 잇고 있습니다. 원래 선거를 앞두고 다들 ‘보여주기용’ 책을 낸다지만 이번엔 유독 뻔뻔하다 못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제목의 책들이 눈에 띕니다. ‘적어도 당신들이 그 주제를 말할 자격은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분노유발’ 신간 5권을 소개합니다.
‘윤미향과 나비의 꿈’
부동산 불법 의혹 논란으로 더불어민주당에서 출당된 윤미향 의원이 낸 책입니다. 윤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금 등을 빼돌린 혐의로 올해 9월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죠. 정의기억연대 자금 중 8000여만 원을 횡령하고,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등 1억3000만 원을 불법 모금한 혐의 등입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사실상 무죄였던 1심 판결은 뒤집힌 겁니다. 그런 윤 의원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나비’를 제목에 붙인 책을 낸 거죠. 책 표지에는 한복 입은 모습의 할머니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나는 무죄다’라는 제목의 첫 장에서 “2심 판결이 내려진 뒤 많은 고민이 있었다. 책이 대부분 무죄로 판명된 1심 판결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라며 “독자에게는 다소 혼돈을 줄 수 있겠지만 무죄를 선고받은 내 심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썼습니다. 2심에서 유죄가 나왔는데도 1심 재판 결과만 갖고 얘기하겠다는 겁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직접 추천사도 써줬더군요. 그는 윤 의원을 향해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며 “2심 판결에도 불구하고 윤 의원의 꺾이지 않는 마음은 여전할 것이라 믿는다”고 했습니다. 올해 10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여전히 “윤미향을 용서한 적 없다”고 했던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여기에 동의하실지 의문입니다.
추미애 ‘장하리’
“소설을 쓰시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소설을 쓰고 있네? 우리가 소설가입니까, 국회의원들이?”(윤한홍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
2020년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아들 관련 의혹을 따져 묻는 의원을 향해 “소설을 쓴다”고 비판했던 추 전 장관이 직접 소설을 썼습니다. 추 전 장관은 저 발언으로 한국소설가협회로부터 공개 사과 요구도 받았었죠. 당시 소설가협회는 성명을 내고 “소설 쓰는 것을 ‘거짓말하는 행위’로 빗대어 소설가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줬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거짓말은 상대방에게 가짜를 진짜라고 믿게끔 속이는 행위이고, 소설에서의 허구는 거짓말과 다르다. 소설을 ‘거짓말’에 빗대어 폄훼하지 말라”고도 했죠.
그때 소설 쓰는 법을 배운 걸까요, 추 장관은 페이스북에 책 제목이자 소설 주인공인 ‘장하리’를 소개하며 “검찰개혁 숙명 앞에 섰던 ‘장하리’가 절정으로 치닫는 국민의 분노와 시대의 소명을 광장의 촛불로 밝혀낸 주인공으로 장편소설 속에 재탄생했다”고 썼더군요. 책 소개에 따르면, “대한민국을 흔든 검찰 관련 사건들이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생생하게 등장하는 검찰개혁에 대한 다양한 인물들과 입장들을 만날 수 있다. 소설보다 ‘더 소설스러운 현실’을 소설로 담은 아이러니는 검찰개혁의 선두에 섰고 온몸으로 경험했던 저자만이 구현해낼 수 있는 서사”라고 하네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소설인 거죠?
조국 ‘디케의 눈물’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올해 8월 낸 ‘디케의 눈물’을 앞세워 요즘 전국을 돌며 출판기념회 중이죠. 문재인 전 대통령의 평산책방에서 책 사인회를 여는가 하면, “명예 회복할 길을 찾겠다”며 사실상의 총선 출마 선언도 했습니다. 그의 책 제목 속 ‘디케’는 정의의 여신을 말합니다. 조 전 장관은 책 소개에서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법과 법치주의에는 오직 혹형만 강조되고 있을 뿐 ‘연민’과 ‘정의’가 빠져 있다”며 “책 제목의 ‘눈물’은 폭압적인 법 권력에 의해 신음하며 흘리는 ‘분노의 눈물’과, 그런 압력에 맞서면서도 주변의 아픔을 살피며 ‘연민의 눈물’을 동시에 흘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뜻한다”고 적었더군요. 굉장히 현학적이고 감정에 호소하는 제목이네요.
조 전 장관은 올해 2월 1심에서 자녀 입시 비리 혐의 7개 중 6개를 유죄로 인정받아 징역 2년을 받았습니다. 아들의 인턴십 증명서를 허위 발급하고, 미국 대학교 온라인 시험을 대신 치러준 혐의 등입니다. 그의 배우자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는 딸의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이미 징역 4년을 확정받았습니다. 여기에 아들 입시 비리 관련해서도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이 추가됐고요.
조 전 장관은 “가족 전체가 도륙 났다”며 호소하지만, 반대로 따지면 온 가족이 입시 비리에 가담한 겁니다. 그런 그가 “정의의 여신이 울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법치를 논하다니요. 아무리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지만 적어도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을 ‘조국유죄’와 ‘조국무죄’로 두동강 내놓고 각종 사회적 비용을 유발했던 그가 ‘연민’과 ‘정의’를 운운할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고, 상대방에 대한 ‘정의’인가요. 이러니 ‘내로남불’ 소리를 듣는 겁니다.
심지어 정 전 교수도 27일 옥중에서 쓴 글을 모아 ‘나 혼자 슬퍼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죠. 이제 아들만 출간하면 온 가족이 ‘작가 데뷔’ 성공이네요.
민형배 ‘탈당의 정치’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 처리하기 위해 지난해 민주당을 ‘위장탈당’했다 1년 만에 복당한 민형배 의원의 책입니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탈당과 복당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사회적 논란과 물의를 일으켰던 사람이 책 제목으로 ‘탈당의 정치’를 쓴 게 맞나 싶더군요. 이 정도면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미 헌법재판소도 민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 자격으로 국회 안건조정위원회에 들어가 제도 자체를 무력화한 것에 대해 “소수당의 심사권을 제한했다”며 위법 행위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민 의원 본인도 올해 4월 복당한 직후엔 페이스북에 “헌재(헌법재판소)와 당의 판단을 존중한다. 의도치 않게 소란스러웠다. 송구하다. 비판과 조언 겸허하게 듣겠다”고 썼었죠. 그래 놓고 선거를 앞두고는 다시 자신의 탈당 이력을 자랑스러운 홍보용으로 쓰려는가 봅니다. 실제 강성 지지층 사이에선 확실히 효과가 있는 듯하네요. 19일 광주에서 열린 그의 출판기념회에선 최강욱 전 의원의 ‘설치는 암컷’ 발언부터 김용민 의원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발의 주장까지 ‘막말 종합 세트’가 펼쳐졌습니다. 이 자리에 있던 관객들은 ‘암컷’, ‘탄핵’ 등의 발언에 격렬하게 호응하더군요. 그럴 때마다 의원들은 활짝 웃으며 더 센 발언으로 화답했고요. 한 민주당 의원은 “자기들 장사에는 이득일지 몰라도, 당에는 막대한 손해”라며 “지독한 해당(害黨) 행위”라고 했습니다.
‘송영길의 선전포고’
‘돈봉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송영길 전 대표도 최근 ‘송영길의 선전포고’라는 책을 내고 정치 복귀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책 소개 글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 경영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지내던 송영길이 왜 한국으로 돌아와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게 되었는지” 등을 담았다네요.
그렇게 멋지게 선전포고할 거면서 왜 올해 4월 돈봉투 의혹으로 당이 사면초가에 처했을 땐 빨리 귀국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당시 오죽하면 당 지도부는 물론이고 초선 의원들까지 들고일어나 그의 조기 귀국을 촉구했었죠.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기자회견을 열고 “송 전 대표는 조속히 귀국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달라”고 했고, 당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도 “송 대표가 귀국을 미루며 외국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건 당의 전직 대표로서, 또한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매우 부적절한 태도이자 처신”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어쨌든 송 전 대표의 때늦은 ‘선전포고’는 막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달 9일 출판기념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어린놈”이라고 불러 선거철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막말 논란’에 불씨를 댕겼죠. 요즘 민주당은 송 전 대표가 또 어디서 무슨 소리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송영길의 선전포고가 혹시 검찰이 아닌 민주당을 향한 건 아니었을까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