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땐 식물 방통위” 이동관, 전격 사퇴…野 “제2 이동관도 탄핵”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일 20시 38분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1일 오후 경기 과천 방송통신위원회 브리핑실에서 사퇴 관련 입장을 밝힌 후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3.12.01.뉴시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1일 오후 경기 과천 방송통신위원회 브리핑실에서 사퇴 관련 입장을 밝힌 후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3.12.01.뉴시스
“최장 180일(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소요 기간) ‘식물 방통위’로 놔두느니 차라리 사퇴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1일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물러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년 4월 총선을 4개월 앞두고 탄핵안 통과 시 헌법재판소가 심리하는 최장 6개월간 ‘방통위 업무 마비’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의미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탄핵 처리가 불발되자 이 위원장의 사표 수리를 놓고 “정치적 꼼수”, “뺑소니 사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여야 극한 대치로 치달았던 이 위원장 탄핵 정국이 1일 자진 사퇴로 한 달 만에 마무리됐지만 차기 방통위원장 인선을 두고 재충돌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지난달 9일 이 위원장 탄핵을 처음 시도했다가 무산된 데 이어 2차례 시도가 모두 불발됐다.

● 방통위 마비 우려에 사퇴 전격 결정

이 위원장의 사의 표명은 전날인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 탄핵안이 보고된 후 결정됐다. 여권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윤석열 대통령은 이 위원장이 먼저 물러나기보다는 “야당으로부터 탄핵을 당해 거야의 폭거를 보여주는” 방안에 무게를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방통위원장 자리를 5, 6개월 동안 비워두는 건 도저히 견디지 못할 일”이라며 “사표를 내겠다”고 윤 대통령에게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도 이에 따라 고심 끝에 이 위원장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한다.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1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방통위에서 사퇴 관련 입장을 발표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탄핵으로 인한 방통위 기능 정지 사태를 막기 위해 전날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 전 위원장을 임명 3개월 만에 면직했다. 2023.12.1/뉴스1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1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방통위에서 사퇴 관련 입장을 발표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탄핵으로 인한 방통위 기능 정지 사태를 막기 위해 전날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 전 위원장을 임명 3개월 만에 면직했다. 2023.12.1/뉴스1
여당 내에서도 탄핵안 보고 전부터 이 위원장의 사퇴 제안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중진 의원을 중심으로 “총선 4개월 전 5~6개월 직무 정지가 되면 총선까지 방통위를 무력화려는 야당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다”, “단순히 사람을 교체하는 문제가 아니다. 방통위 기능이 마비되면 국정에도 부담을 주고 선거에도 영향을 준다”는 의견들이 원내 지도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 심리 동안 방통위를 비워두면 총선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위기감이 표출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 위원장의 사표 수리를 두고 “YTN과 연합뉴스TV 최대 주주 변경 승인 처리 건으로 사실상 경질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여권 고위관계자는 “경질이 아니라 이 위원장 본인의 결심이 크게 작용했다”고 반박했다.

● 민주 “제2, 3의 이동관도 모두 탄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12.1/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12.1/뉴스1
민주당은 이 위원장의 사퇴 가능성을 사전에 전혀 예측하지 못한 눈치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위원장 사퇴 가능성을 “이런 꼼수를 쓸 줄은 잘 몰랐다”며 “비정상적인 국정수행 행태라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탄핵안이 불발되자 홍익표 원내대표는 “또 다시 중대한 결정을 한다면 제2, 제3의 이동관도 모두 탄핵시킬 것”이라고 했다.

허를 찔린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이 위원장의 사의를 수리하면 안 된다”고 거듭 촉구했다. 홍 원내대표는 “탄핵 처리가 법적으로 이뤄지고, 헌법재판소에 가서 본인들의 범죄 혐의가 인용될 것을 우려해서 이 위원장의 뺑소니를 사표 수리란 이름으로 허용한 것은 매우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성명을 통해 “이 위원장은 이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된 상태”라며 “만약 윤 대통령이 이동관의 사의를 수리한다면 범죄 혐의자를 도피시켜주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뺑소니를 방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 3시간 전 윤 대통령이 이 위원장 사표를 수리하자 이번에는 이를 ‘민주당의 성과’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본회의 전 열린 윤 대통령 규탄대회 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은 이 위원장의 사의를 수용하는 것이 아닌 파면을 했어야 옳다”면서도 “결국 많은 이들의 힘으로 이동관을 끌어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 위원장이 스스로 물러날 수 있다는 것도 한참 전부터 원내와 논의했다”며 “앞으로도 유능한 야당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 법조계 “수사 여부 상관없이 퇴직 가능”

공수처 특별수사본부는 올해 9월 전국언론노조는 이 위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중이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국가공무원법상 퇴직 제한 규정을 적용 받지 않는 정무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고발·수사 여부와 상관없이 퇴직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견해다.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 때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사표가 수리되기도 했다.

앞서 민주당은 채모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탄핵도 추진했지만, 이 전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중대 위법 행위라는 것도 민주당의 주장”이라며 “민주당의 정치 공세에 이 위원장이 정치적 결정을 한 것 것 같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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