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연일 2016년 20대 총선까지 적용됐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섰다. 이재명 대표가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현실론’을 꺼내 들자 당 차원에서 병립형 회귀 방침에 거듭 힘을 싣는 모습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공식적으로 병립형 회귀 결정을 내린 건 아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연일 나오는 지도부 인사들의 공식 발언으로 볼 때 민주당이 병립형 회귀로 기울고 있다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국민의힘은 총선용 위성정당을 막기 위해 현행 선거제인 준연동제 비례대표제를 폐기하고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입장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 입장을 공식화할 경우 선거제 개편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준연동제 비례대표제는 2020년 21대 총선부터 시행돼 ‘꼼수’ 위성정당 논란을 낳았다.
홍 원내대표는 5일 CBS 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대선 때 공약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대신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갈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내가 우리 의원들한테 대선 때 정치개혁 한다고 한 약속 다 지키려면 ‘3선 연임 금지’까지도 다 지킬 거냐고 물었다”고 했다. 왜 선택적으로 일부 약속을 지키냐는 취지다. 그는 “때로는 약속을 못 지키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런 경우에는 당당하게 약속을 못 지키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 측근인 김영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은 더 나아가 이날 YTN 라디오에서 “연동형 비례제는 내각제와 같이 가는 다당제 구조이지 대통령제와 같이 가는 구조는 아닌 것 같다”며 “국가와 국민에게 과연 적절한 제도인가를 큰 차원에서 판단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정한 뒤 지역구 당선자가 정해진 의석수에 미치지 못하면 비례대표로 일정 의석수를 채우는 제도다. 소수 정당이 비례 의석을 얻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주자는 취지로 지역구 의석을 가진 정당이 비례 의석 확보에 불리하도록 만든 제도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란 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를 따로 해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단순 배분하는 제도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를 모두 낼 수 있다.
이 대표 측은 병립형으로 회귀해야 총선 승리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면 이른바 ‘송영길 신당’ ‘조국 신당’ 등 친(親)민주당 정당을 표방하는 비례전문 ‘참칭’ 신당이 대거 출현해 민주당 표를 분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홍 원내대표가 “민주당이 연합비례정당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추진하는 신당이 현실화할 경우 국민의힘보다 민주당 표 일부를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민주당 일각에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비례대표 후보자를 낼 수 있는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게 총선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이에 대해 비명(비이재명)계는 “정치의 기본은 신뢰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 대표는 대선 때 총선용 위성정당 방지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공약했다.
조응천 의원은 이날 BBS 라디오에서 “지난 대선 직전에 긴급 비상 의원총회를 열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겠다고 약속했고 당론으로 채택했다. 그 이후에 당론을 다른 걸로 바꾸자고 결의를 한 적이 없다”며 “(불신의 정치는) 그 자체로 정치 퇴행”이라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최근 송영길 전 대표가 비례 전문 위성정당인 ‘윤석열 퇴진당’을 만들어 “민주당의 우(友)당이 되겠다”고 한 데 대해 “이거야말로 퇴행”이라며 “어떻게 우리 당의 당대표 하셨다는 분들은 하나같이 도덕성이 국민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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