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누굴 맹종 한 적 없어…진짜 위기, 계산하고 몸 사릴때 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9일 20시 42분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가면 길이 된다. 진짜 위기는 경험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과도하게 계산하고 몸을 사릴 때 온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당내에서) 정치 경험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는 취지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전날 당 의원-원외 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자신의 ‘정치 경험 부족’에 대한 우려가 나온 것을 일축하며 비대위원장직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발언은 중국의 근현대 작가 루쉰의 단편소설 ‘고향’에 나오는 “본래 땅 위에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대목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장관은 친윤(친윤석열) 핵심인 자신이 당권을 잡으면 수직적 당정 관계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비판과 우려에 대해서도 “누구를 맹종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당내에서는 “한 장관이 비대위원장직 수락 결심을 굳혀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왔다.

● ‘김건희 특검법’에 “법 앞에 예외 없지만, 악법”
한 장관이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지난 주말 친윤(친윤석열) 그룹을 중심으로 ‘한동훈 비대위 체제 전환’이 수면 위로 올라온 지 나흘 만이다.

한 장관은 “어떤 제안을 받은 게 아니어서 특정 정당의 비대위 구성에 대해 제가 공개적으로 말씀드릴 문제는 아니다”라며 비대위원장직 수락 여부에 대해선 확답을 피했다. 국민의힘은 아직 한 장관에게 비대위원장 수락을 요청하진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질의 답변 과정에선 본인에 대한 여권 내 비판을 비롯한 정치 현안에 가감 없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윤석열 아바타’라는 비판이 나온다는 말에 대해 그는 “자신들이 이재명 대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절대 복종하니 남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이 28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는 이른바 ‘김건희 특검’에 대해서도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국민이 보기에도 그래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이 한 장관의 김건희 특검 대응을 정치무대에서의 첫 시험대로 보는 상황에서 일단 ‘일방적 옹호’에만 나서지 않을 뜻임을 내비친 것. 그는 다만 “수사 상황을 생중계하는 독소 조항까지 들어 있다”면서 “무엇보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전 선동을 하기 좋게 시점을 특정해서 만들어진 악법”이라고 했다.

한 장관은 이른바 ‘김 여사 명품백’ 논란에는 “내용을 보면 일단 ‘몰카 공작’이라는 건 맞지 않나”라며 “몰카 공작의 당사자인 서울의소리가 고발했던데 우리 시스템에 맞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가 진행돼 처리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명품백 논란을) 나한테 물어보라고 여러 군데 (언론에) 시키고 다닌다고 그러더라”며 “이걸 물어보면 왜 내가 곤란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민주당이야말로 이재명 대표 옹호하는 데 바쁘니까, 나도 그럴 건가 (여긴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 與, 주말 차기 비대위원장 지명할 듯
한 장관의 등판이 가까워지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 지도부도 비대위 전환을 위해 잰걸음을 하고 있다. 윤재옥 당 대표 권한대행은 20일 당 상임고문단과 비대위원장 인선을 위한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윤 권한대행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상임고문 전원(31명)에게 연락을 할 것”이라며 “당의 직능조직들을 통해서도 의견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윤 권한대행은 “전당대회에 준하는 수준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 내부에서는 여론조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 관계자는 “공무원(경찰) 출신의 윤 권한대행이 비대위원장 지명 이후에 아무런 잡음이 나오지 않게 모든 절차를 거치는 것”이라고 했다.

일련의 절차가 끝나면 이번 주말경 차기 비대위원장 후보자를 지명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 당 최고위원회의와 전국위원회에서 후보자 임명안이 의결되면 당권은 비대위원장에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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