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 이후 진영 대립 격화… 유튜브-SNS 타고 극단 현상 확산
욕설-비난 퍼붓고 허위정보 퍼뜨려… “李습격범, 평소 정치유튜브 즐겨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피습 사건 다음 날인 3일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증오 발언이 쏟아졌다. 총선 정국에서 강성 지지층끼리 똘똘 뭉쳐 여야 상대 진영은 물론이고 같은 진영 내에서도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을 향해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고 허위 정보를 확산한 것. 이 대표를 습격한 피의자 김모 씨(67)가 평소 정치 유튜브를 즐겨 봤고 과거 ‘태극기 집회’에 참여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도 나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극단적 내용의 정치 유튜브와 SNS 문화가 만들어낸 ‘집단극화’(group polarization·개인보다 집단의 의사결정이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현상)가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화와 타협을 포기한 채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진영 정치의 극대화가 부른 ‘증오정치’ 문화가 바이러스처럼 확산되고 있다는 것. 이대로면 98일 남은 총선도 국민을 대표할 후보와 공약을 검증하지 못한 채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를 기반으로 한 ‘분노 투표’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도 이어졌다.
3일 민주당 당원 게시판과 이 대표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 등에는 여권 정치인들을 겨냥한 저주성 발언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전날 당원들을 향해 “제가 습격당했을 때처럼 생각해 달라”며 이 대표를 겨냥한 혐오성 발언 자제를 부탁한 것에 대해서조차 “너도 습격해 줄게” “꼭 다음엔 네가 부메랑 처맞아라” 등 노골적인 비난이 나왔다.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해 온 이낙연 전 대표와 비명계 ‘원칙과 상식’ 의원들을 겨냥한 욕설과 혐오 발언도 이어졌다.
극우 성향의 유튜브에서는 이 대표를 겨냥한 각종 루머와 비난이 쏟아졌다. 유튜브와 연동된 실시간 채팅방에선 “세계인을 상대로 한 사기극” “또 연극했다. 사형시켜야 한다”는 주장부터 “그 정도 칼로 찔렸는데 피가 그렇게 적게 나온 것이 말이 안 된다” “(장난감) ‘당근칼’로 찔렀냐”는 조롱이 이어졌다. 이 대표가 재판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입원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병상 침대에 눕혀서라도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오프라인보다 ‘맹목적 집단화’가 쉬운 유튜브와 SNS를 토대로 극단적인 주장을 맹신하고,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은 거부하는 증오정치 문화가 증폭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개별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성향의 사람들도 온라인에서 모여 집단을 이루게 되면 극단적 보수 또는 진보로 변하는 일종의 집단극화 현상”이라며 “네 편, 내 편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양극화가 유튜브와 SNS를 거치면서 더 달아오르는 양상”이라고 했다.
“(칼날이) 좀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데 아쉽다. (아예) 골로 보냈어야 하는데.” “민주당 전체를 대패로 밀어야.”(극우 성향 유튜브 댓글)
“(한동훈) 배××(배를 속되게 이르는 말)에 칼 꽂고 애국가 부르고 싶다.” “한 씨 죽어버려라.”(이재명 대표 팬카페 댓글)
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게시판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을 두고 양극단으로 갈라졌다. 이 대표 지지층은 여권 인사들을 향한 극단적인 분노를 쏟아냈고, 심지어 같은 당내 인사들을 향해서도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다. 여권 강성 지지층은 피해자인 이 대표를 겨냥해 “차라리 죽지 그랬냐”고 주장했다. 같은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 또는 비명(비이재명) 성향 지지자들도 ‘이재명 자작극’설에 가세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의 직접 참여가 가능한 SNS라는 무기를 사람들이 손에 쥐면서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꾼’만 늘어났다”고 했다. 이들을 앞세운 ‘증오정치’를 이용했던 정치인들도 더 이상 이들을 통제하지 못한 채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1대 총선이 코로나바이러스 속에 치러졌다면, 22대 총선은 증오바이러스가 창궐한 가운데 치러질 것”이라며 “여야가 ‘증오 없는 선거를 치르자’는 신사협정이나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튜브 알고리즘에 올라탄 ‘증오정치’
이날 카카오톡 등 SNS에서 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이 대표를 습격한 범인과 김건희 여사 간 관련성을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범인 김모 씨가 충남 아산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했는데, 김 여사와 가족들이 인근 지역에서 땅투기를 했다”는 논리다. 야권 관계자는 “너무 멀리 나간 지라시(사설 정보지) 같다”고 했다.
이들은 같은 민주당 내 인사들을 향해서도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이날 당원 게시판에는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해 온 이원욱 의원을 향해 “이원욱 이 씨×××를 ‘아웃’시키자” “사이코패스로 의심된다”는 글이 올라왔다. 최근 신당 창당을 공식화한 이낙연 전 대표가 이 대표의 쾌유를 기원했다는 뉴스에도 “이 ××가 진짜 악질” 등 욕설이 난무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서도 “악마” “탈당하라”는 악플이 달렸다.
이날 여권 지지층은 극우 성향 유튜브 댓글과 온라인 게시판 등에서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 중인 이 대표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고작 6바늘 꿰매고 1인실을 꿰찼냐” “응급 헬기 타고 응급실 한 칸 먹고 (할 일이냐)”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양 진영 지지층이 SNS에 갇혀 ‘괴물’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술 발달로 인한) 탈진실 시대”라며 “진실이 무엇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고 했다. SNS상의 일방적 동조가 극단적 여론을 형성한다는 것.
특히 한 번 시청한 내용과 비슷한 콘텐츠를 선별해 보여주는 유튜브 알고리즘 특성이 강성 지지층이 자신의 의견만 맞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믿음에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무시하는 확증 편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이승환 서울 중랑을 당협위원장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유사한 성향의 콘텐츠가) 계속 뜨기 때문에 더 극단으로 간다”고 했다.
● “정치인-유튜버 ‘전략적 공생관계’”
증오정치 문화는 정치인들이 만든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치인은 자기 진영 안에 들어온 사람들의 표만 지키면 1, 2표 차로도 이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맹종하는 지지자가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조진만 교수도 “환호하는 관중만 바라보려는 일부 정치인들이 극우 극좌 유튜버들과 ‘전략적 공생 관계’를 맺은 탓”이라고 했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이 용기를 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정치인들도 언제 칼 맞을지 모르는 상태가 됐는데 더 이상 눈치 볼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증오정치 문화 증폭이 계속되면 이번 총선이 ‘정치 자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인뿐 아니라 지지층까지도 서로 대화를 거부한 채 상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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