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슈퍼호넷 탑재되는 F414급 고성능 엔진… ‘시행착오’ 중국의 5분의 1 예산으로 개발
9000억 위안(약 164조6000억 원) 거금과 20년이라는 시간. 중국이 신형 항공기 엔진을 개발하는 데 쓴 돈과 시간이다. 물론 이는 전투기뿐 아니라 수송기와 여객기에 들어가는 엔진 개발비, 각종 인프라 구축에 들어간 비용도 포함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연평균 8조 원에 달하는 돈을 항공기 엔진 개발에 퍼부었다는 것은 분명 막대한 투자다.
중·소 분쟁에 뒤틀린 중국 전투기 개발史
중국은 1950년대 중반부터 자국에 전투기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지금까지 전투기만 1만 대 이상 생산한 나라다. 중국에서 처음 생산된 전투기는 소련제 MIG-17F 기종이다. 당시 중국은 MIG-19, MIG-21 전투기 도입 계획을 세우고 소련으로부터 필요한 기술과 부품을 들여와 점차 국산화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소련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전투기 도입 계획이 꼬이기 시작했다. 당초 소련은 중국 측에 전투기는 물론, 엔진을 비롯한 핵심 구성 부품을 제공하고 기술자까지 파견했다. 하지만 중·소 관계가 단절되면서 중국은 이 모든 것을 자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오랫동안 중국의 주력 전투기로서 2000대 이상 배치된 ‘중국판 MIG-21’ J-7은 기술적으로 대단히 단순한 기종이었다. 그럼에도 최초 부품을 인수한 시점부터 중국이 양산에 성공하기까지 15년 넘게 걸렸다. 중국은 1962년 3월 소련과 MIG-21 거래 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J-7이라는 이름의 초도 기체가 첫 비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중국이 기술적 불안정성을 해결하고 J-7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이다. 당장 소련으로부터 각종 부품과 조립 설명서를 받긴 했지만, 엔진을 실제로 복제하는 게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엔진을 일단 뜯어본 뒤 다시 조립해나가는 식의 ‘단순 복제’는 엔진 설계도와 기술 자문을 받아 복제품을 만드는 정식 기술 도입보다 난도가 높다. 엔진에 들어가는 각종 소재를 자체 생산하지 못하면 완벽한 국산화도 어렵다. 엔진용 소재를 만드는 기술은 현 시점에도 극히 일부 국가만 가진 고난도 기술이다. 특히 항공기 추력(thrust)을 높이는 게 관건인데, 추력을 높이는 것과 정비례해 기술적 난도도 높아진다.
중국은 소련 붕괴 후 혼란에 빠진 러시아에 달러 뭉치를 안겨주고 Su-27SK 전투기를 구입했다. 이를 계기로 본격화된 중국의 지난한 엔진 국산화 여정을 보면 전투기용 엔진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당시 중국은 Su-27SK 전투기를 면허생산 방식으로 도입하기로 하고 러시아로부터 부품을 들여와 자국에서 생산했다. 다만 러시아와 계약을 위반하고 일부 기체를 빼돌려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시도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2006년 출고된 J-11B였다. J-11B의 레이더·전자장비·동체·엔진 등 모든 구성 요소는 중국에서 생산된 복제품이었고, 서류상으로는 러시아제 원형인 Su-27SK와 동일했다. 그러나 일선에 배치된 J-11B는 “도저히 못 쓰겠다”는 집단 항명이 벌어질 정도로 기술 신뢰도가 형편없었다.
용광로보다 높은 고온 견뎌야 하는 전투기 엔진
특히 중국이 러시아 AL-31F 엔진을 복제해 만든 WS-10 엔진의 수준은 처참했다. 추력이 원 모델의 70%에 불과해 전투기가 충분한 연료와 무장을 싣지도, 제원상 최대속도로 날지도 못한 것이다. 마하(음속) 1에 근접한 고아음속 구간에서 엔진이 극심한 진동 끝에 기체에서 떨어져나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당시 북경군구에서 실시된 근접 공중전 훈련에서는 엔진 충격이 동체까지 전해져 전투기가 공중 분해되는 일도 있었다. 결국 2010년 북경군구의 일부 공군 부대가 J-11B 인수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고, 2014년에는 같은 기종 16대가 공장으로 반품되는 초유의 사태도 일어났다.
항공기 엔진, 특히 전투기용 엔진은 그야말로 정밀공학의 결정체다. 기동성이 중요한 전투기에는 높은 추력을 발휘하는 저(低)바이패스 터보팬(low-bypass turbofan) 엔진이 탑재된다. 날개를 회전시켜 엔진 앞 공기를 빨아들이고, 압축된 공기에 연료를 분사해 연소시킨 후 폭발적으로 팽창한 가스를 뒤로 내뿜어 추진력을 얻는 방식이다. 전투기 엔진은 여기에 후연기(after burner)까지 장착해 추력을 높인다. 후연기는 터보팬 엔진이 분사하는 배기가스에 다시금 연료를 섞어 한 번 더 연소시킨 뒤 엄청나게 팽창된 가스를 내뿜어 50% 이상 추력을 높이는 장치다. 이 과정에서 터빈 입구 온도(TIT)는 용광로와 비슷하거나 더 높아진다. 용광로가 어지간한 금속은 전부 녹여버리는 엄청난 고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전투기 엔진이 얼마나 뜨거운 열을 버텨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이 오랫동안 다양한 기종에 적용한 J-7용 터보제트 엔진의 TIT는 1005도 수준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J-11B를 만들면서 복제를 시도한 AL-31F 엔진의 TIT는 이보다 약 40% 높은 1392도에 달한다. 중국은 이 정도 엄청난 고온을 견딜 소재 기술이 없었다. 이처럼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 채 고성능 엔진을 베끼다 보니 문제가 터진 것이다. 여기에 미국, 유럽, 러시아제 전투기 엔진을 압도하는 국산 모델을 하루빨리 만들어내라는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압박이 더해져 개발은 난항을 겪었다. 그 결과 중국이 소련 AL-31F 수준의 엔진 한 종류를 개발하는 데 들인 시간만 20년, 비용은 1500억 위안(약 27조4000억 원)에 달한다.
옆 나라 중국의 시행착오를 지켜본 덕일까. 한국은 상당히 신중하고 차분하게 전투기용 엔진 국산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지난해 12월 26일 ‘첨단 항공엔진 개념연구 계획 발표 및 항공엔진 관련 기업 간담회’를 열고 “2030년대 중후반까지 1만5000파운드급 터보팬 엔진 개발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국산 터보팬 엔진 개발을 위한 개념 연구에 착수했다고 천명한 것이다. 방사청 발표에 대한 국내 언론 보도만 보면 한국이 이제야 전투기 엔진 개발에 착수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발표는 오랫동안 조용히 추진된 한국형 터보팬 엔진 개발 사업이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는 상태에서 당국이 자신감을 갖고 경과를 설명한 것에 가깝다.
‘제공호’부터 쌓인 국내 항공기 엔진 기술력
한국은 1980년 KF-5E/F 제공호 엔진을 면허생산하며 40여 년 동안 전투기용 엔진 기술을 축적해왔다. 첫 생산한 J85-GE-21A 엔진은 중국이 처음 접한 소련제 R-13과 비슷한 TIT를 가졌다. 국내 방산 분야 연구소와 기업은 이때부터 팬블레이드를 비롯한 주요 부품을 하나 둘 국산화하며 터보팬 엔진 부품 제조 기술과 내열 소재 기술을 쌓기 시작했다. KF-16이 도입된 시기에는 이 전투기에 들어가는 F100-PW-229 엔진을 면허생산하며 일부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F-15K 전투기 도입 당시에는 F110-STW-129A라는 일부 국산화 모델도 만들었다. 국산 T-50 훈련기, FA-50 전투기가 생산되는 오늘날 F404-GE-102 모델을 기술 도입 형식으로 국내 생산하고 있다.
국내 방산업계는 오랜 기간 미국 업체들과 정식 계약으로 기술·부품을 받아 전투기용 엔진 기술을 국산화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1350도 수준의 TIT를 가진 터보팬 엔진 기술까지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공호 시절부터 팬블레이드·압축기·터빈 디스크·노즐 등 핵심 구성 요소 기술을 확보했거나, 이미 미국산과 동일한 성능을 가진 국산화 제품을 만들어 군에 납품하는 터다. 이 정도 기술이라면 T-50용 엔진과 유사한 제품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만, 한국 정부와 업체는 중국처럼 서두르지 않고 ‘정석’ 절차를 밟아 착실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방사청이 2030년대 중반까지 개발하겠다고 밝힌 엔진은 현재 KF-21이나 미군 F/A-18E/F 슈퍼호넷 전투기에 탑재되는 F414급에 해당한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자 단계적 진화 방식의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우선 5500파운드급 엔진을 만들어 이를 경량 무인전투기 KUS-LW에 적용해 성능 및 신뢰성을 검증한 후 △1만 파운드급 엔진을 개발해 중형 무인전투기 KUS-FC에 탑재한 다음 △엔진 TIT를 점진적으로 올려 궁극적으로는 전투기 탑재가 가능한 수준의 1만5000파운드급 엔진을 만드는 게 한국형 전투기 엔진 개발의 구상이다.
이렇게 신중에 신중을 기해 개발된 1만5000파운드급 엔진도 곧장 전투기에 탑재되지는 않을 예정이다. 우선 KF-21 전투기의 예비 엔진, T-50 훈련기 후속 기종의 엔진으로 적용해 충분한 데이터와 신뢰성을 확보한 후 전투기용 엔진으로 본격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엔진을 섣불리 썼다가 자칫 중국처럼 전투기가 추락하고 공중에서 두 동강 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국산 전투기 수출 유연성 제고 기대감
올해 시작되는 엔진 개발 프로젝트의 완료 목표 시기는 2037년이다. 방사청이 추산하는 전체 사업 예산은 약 5조 원이다. 중국이 한 종류의 엔진을 개발하고자 퍼부은 돈의 5분의 1도 안 되는 예산과 4분의 1에 불과한 사업 기간으로 고성능 엔진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국형 F414 엔진’이 완성되고, 이 엔진이 T-50/FA-50 후계 기종이나 KF-21 블록 3 같은 차세대 기종에 탑재되면 한국은 진정한 의미에서 전투기 독자개발·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현재 전투기 동체부터 레이더, 전자장비, 각종 센서와 엔진까지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일본, 영국 정도다. 2030년대 중반이 되면 한국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전투기 구성 요소를 오롯이 독자 생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이 국내에서 개발·제작한 전투기를 해외에 팔 때 미국 등 기술 유관국가의 수출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형 전투용 항공기의 수출 유연성이 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당국 계획대로 국산 전투기 엔진이 성공적으로 제작돼 한국이 진정한 항공 선진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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