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의 역풍이 분다 [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8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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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통해 여과 없이 생중계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피습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유튜브를 통해 여과 없이 생중계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피습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헉!”

1월 2일 오전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인근 대항전망대에서 진행되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백브리핑을 유튜브 생중계로 보던 중 그가 칼에 찔리는 장면에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뒤로도 기사 작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몇 번을 돌려봤는데,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심장이 덜컹할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고작 화면으로 지켜보던 저조차 이렇게 놀랐는데, 피해자인 이 대표는 물론이고 현장에서 이를 본 사람들은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영화보다 더 잔인한 폭력의 시대에 유감을 표합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동아일보는 자극적 보도를 자제하며 가급적 피해자 입장에서 기사를 쓰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극단적 폭력을 유발하는 증오 정치를 멈추자는 기사도 연이어 보도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취재 과정에서 “언론부터 상대에 대한 혐오를 유발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자극적 발언을 아예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학계 및 정치 원로들의 지적을 듣고 반성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사건 후 약 일주일간 민주당이 보여준 스탠스는 줄줄이 여론의 역풍만 부르는 듯합니다. 이 대표에 대한 동정론이 막 생기려 하는 시점에 알아서 밥그릇을 차는 모습입니다.

119도 경찰도 못 믿는다는 제1야당
민주당은 줄곧 경찰과 소방, 의료진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사건 다음 날 ‘이재명 당 대표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수사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나 축소, 왜곡 시도가 일어난다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더니, 소방 당국이 이 대표 상처를 “1.5㎝ 열상(피부가 찢겨 생기는 상처)”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명백한 가짜 뉴스(허위 정보)”라고 반발했습니다. 소방 당국이 사건 직후 중간보고 단계에서 “목 부위 1㎝ 열상으로 경상 추정”이라고 했다가 당일 “1.5㎝ 열상”으로 정정한 것을 문제 삼은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인 강청희 전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왼쪽)이 권칠승 수석대변인(가운데)과 함께 3일 서울대병원 앞에서 이재명 대표의 피습 관련 치료 경과 상태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인 강청희 전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왼쪽)이 권칠승 수석대변인(가운데)과 함께 3일 서울대병원 앞에서 이재명 대표의 피습 관련 치료 경과 상태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이 총선 인재로 영입한 흉부외과 전문의 강청희 전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3일 서울대병원 앞에서 브리핑을 열고 “의학적 판단에 의하면 (이 대표 상처가) 1㎝ 열상은 전혀 아니다”라며 “육안으로 봤을 때 2㎝의 창상이나 자상으로 보는 게 맞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칼에 의해 가격당해 생긴 상처이기 때문에 열상이란 표현 자체가 맞지 않고 (상처) 사이즈를 (경찰과 소방 당국이) 축소하는 의미를 잘 이해 못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추후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수술장에서 측정한 것은 정확히 1.4㎝ 나오고 육안으로 봤을 때 2㎝이나 자상(칼에 찔려 입은 상처)으로 보는 게 맞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소방본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현장에서 눈으로 봤을 때 이 대표의 상처 부위에 대해 파악한 내용으로 의료진이 자세히 진료한 결과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해명했고요.

물론 의학 전문가로선 바로잡고 싶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 입장에선 자상이든, 창상이든, 열상이든, 이 대표가 피습당한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충격적인 팩트입니다. 굳이 이를 “눈으로 보기에 2㎝에 가까운 1.4㎝였는데, 소방 당국이 의도적으로 1㎝로 축소했다”는 식으로 정색하고 반발하는 것이 민주당을 향한 긍정 여론 형성에 도움이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은 경찰과의 기 싸움도 이어가는 중입니다.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사건 발생 직후 부산지검에 즉각 특별수사팀을 구성했고, 부산경찰청도 68명 규모의 대대적 특별수사본부를 차렸죠.

하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불만이 많은 듯합니다. 경찰이 수사기관이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자 당적 정보를 누설할 수 없도록 한 정당법을 근거로 피의자 당적을 공개하지 않기로 하자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7일 논평을 내고 “경찰의 소극적 행태가 또 다른 논란과 혼란을 부를 수 있음을 유념하고 그 어떤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하게 수사하기를 바란다”고 바짝 날을 세웠습니다.

제1야당이 소방 당국도, 경찰도 죄다 못 믿겠다는 게 과연 마땅한 태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평범한 국민은 누굴 믿고 살아가야 합니까.

전국 의사들을 적으로 돌린 민주당
2일 오전 부산에서 습격당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당일 오후 서울대병원으로의 전원을 위해 헬기로 서울 동작구 노들섬에 도착한 모습. 뉴스1
2일 오전 부산에서 습격당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당일 오후 서울대병원으로의 전원을 위해 헬기로 서울 동작구 노들섬에 도착한 모습. 뉴스1
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의사들과도 척지는 모양새입니다. 발단은 이 대표가 1차로 후송된 부산대병원 대신 서울대병원으로의 전원(轉院)을 선택하면서였죠. 정청래 최고위원은 당시 부산에서 기자들과 만나 “목이 민감한 부분이지 않냐. 후유증 이런 걸 고려해서 잘 하는데 가서 해야 할 것 같다. (이 대표) 가족들이 원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부산에선 즉각 “지역 의료체계를 무시하느냐”는 반응이 터져 나왔습니다. 국내 최고 수준의 한국형 외상센터를 갖춘 부산대병원의 자존심을 건드린 거죠. 부산시의사회는 4일 성명을 내고 “환자 상태가 아주 위중했다면 당연히 지역 상급종합병원인 부산대병원에서 수술받아야 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헬기가 아닌 일반 운송편으로 연고지 종합병원으로 전원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들은 정 최고위원의 발언도 문제 삼으며 “의료기관을 서열화하고 지방과 수도권을 갈라치기 했다. 이러고도 민주당이 지방 의료 붕괴와 필수 의료 부족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 지역 의사회에서 이 대표의 ‘닥터헬기’ 탑승에 대해 ‘특권의식’이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습니다. 광주광역시의사회는 5일 성명에서 “전형적인 특권의식에 몰입된 행동이자 내로남불의 정석”이라고 했고, “사회지도층이 모범을 보이지 않았다”(전라북도의사회) “지역의료 이미지를 저하하는 좋지 않은 선례”(대전시의사회) “편법과 특권으로 얼룩진 서울행”(경상남도의사회) 등 전국에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서울시의사회도 “야당 대표가 위급 상황에서 지역 최고 중증외상센터의 치료를 외면했다. 헬기로 이송된 것은 의료 전달 체계를 뛰어넘는 선민의식과 내로남불 행태”라고 했습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8일 서울중앙지검에 이 대표와 측근들이 헬기 이송으로 부산대병원과 서울대병원의 업무를 방해했다며 고발장을 낼 예정입니다.

1월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인근 대항전망대에서 지방 균형 발전 중요성을 언급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이 대표는 이 발언 직후 차량으로 걸어가던 중 습격당했다. 유튜브 화면 캡처
1월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인근 대항전망대에서 지방 균형 발전 중요성을 언급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이 대표는 이 발언 직후 차량으로 걸어가던 중 습격당했다. 유튜브 화면 캡처
마침 이 대표는 피습 직전 가덕도 현장에서 “지방 소멸 문제는 각별하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될 부분”이라며 지역 균형 발전을 강조하던 중이었죠. 2021년 12월 대선 후보 때는 공공의료 공약을 발표하면서 “지방에도 뛰어난 진료와 연구역량을 갖춘 국립대병원이 있다”고 강조했었건만, 정작 본인은 꼭 서울에서 치료받고 싶었나 봅니다.

‘가세연’은 안되고, 김어준은 된다?
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극우 유튜버와의 전쟁에도 나섰습니다. 당 지도부는 5일 ‘당 대표 정치테러 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일부 종편 패널과 극우 유튜버 등의 막말 및 가짜뉴스 유포에 강력히 대응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당 차원에서 기민하게 대응하겠다”고 했죠. 당 국민소통위원회는 전날 방송통신심위위원회에 ‘성창경TV’, ‘이봉규TV’, ‘가로세로연구소’ ‘뻑가 PPKKa’ 등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에 대해 “사실관계는 무시한 채 단순히 조회수만 노린 악질적인 영상”이라며 심의도 신청했습니다.

방통위가 논란성 유튜브 방송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점에 적극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민주당이 이런 지적을 하려면 자신들도 극좌 성향 유튜브인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와 거리를 뒀어야죠. 사건 발생 직후 김어준 유튜브에는 정청래 최고위원과 안귀령 상근부대변인 등 당 관계자부터 영입 인재인 강청희 전 의협 부회장과 류삼영 전 총경 등이 연일 출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도 당 지도부고 중진이고 할 것 없이 줄줄이 등판했었고요.)

김어준은 3일 방송에서 이 대표를 찌른 흉기를 “횟집 혹은 정육점에서 쓰는 칼이라고 하던데”라고 했습니다. 경찰 출신 류삼영 전 총경이 “그런 스타일은 아니고 장식품인 것 같다”고 하자 김 씨는 “그럼 저렇게 생긴 칼을 인터넷에서 주문해서 날카롭게 갈았나 보다”라고 추측성 발언을 이어갔죠. 하지만 경찰 발표에 따르면 해당 흉기는 ‘등산용 칼’이었습니다.

김어준은 다음날 방송에선 범인의 당적 확인을 촉구하며 “중대한 범죄의 배후가 밝혀진 경우가 거의 없다”며 배후 음모론에 불을 지피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당내에서 최고 강경파로 꼽히는 정 최고위원마저 “당적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선을 긋더군요.

▷정청래 : 저는 당적 보유를 가지고 너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그것을 이용하고 싶은 의도 같은 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민주당 당원이든 국민의힘 당원이든 있을 수 없는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김어준 : 그건 맞는데, 제 말은 1년 반 평상시에 민주당 문재인, 문재인 빨갱이 다 없어져 버려야 해. 이렇게 생각하던 사람이 1년 전에 당직을 옮겼다면 그러면 그때 이미 그런 마음을 먹은 거 아니냐, 이거죠.

(중략)

▶김어준 : 성공한 정치인 암살이나 살해 시도도 그렇고, 실패한 것도 그렇고. 배후가 만약에 있다면, 그런 게 밝혀진 적이 거의 없다. 혼자 하는 경우도 있죠.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경우인지 아닌지 명백하게 확인될 때까지, 끝까지 확인해 봐야 할 중대한 범죄 아닙니까. 정말로

▷정청래 : 국민의 명령으로 알고 그렇게 저희도 추적하고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역풍이 불고 있는 것에 대해 “그럼 너네도 성공해서 헬기 타라” “한동훈도 습격하겠다”는 등 온갖 악성 댓글로 방어막을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총선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치르는 선거는 아닙니다. 이 때문에 입원 치료 중인 이 대표도 당무 복귀 후 낼 첫 메시지를 누구보다 고심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 피해자인 이 대표의 빠른 쾌유와, 재발 방지를 기원합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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