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경쟁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
지역구 명부-보좌진 선거운동 등… 기존 의원들 절대적 유리한 구조
신인에 20% 가산점으론 역부족… 전문가 “후원금 등 선거법 개정을”
“정치 신인은 상시로 후원금을 모금하는 현역 의원과의 ‘실탄 경쟁’에서부터 이길 수 없는 구조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현역 의원 지역구에 도전장을 낸 한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 “선거를 치르려면 일찌감치 돈이 필요한데 후원금 모금이 선거 120일 전부터 가능해 상시 후원금 모금이 가능한 현역과 격차가 크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정치 신인 입장에선 현역과의 당내 경선에서 출발선이 한참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인적 쇄신’을 목표로 당내 경선에 나서는 정치 신인에게 최대 20%의 가산점을 주기로 하는 등 신인 우대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실제 현실에선 이 같은 구조적 한계 때문에 신인이 현역 프리미엄을 넘어서긴 여전히 어렵다는 분위기다.
● 현역 9억 원 vs 신인 1억5000만 원
신인 출마자들은 돈 문제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현역 의원의 경우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 선거가 없는 해에는 1억5000만 원의 후원금을 모을 수 있다. 21대 국회 임기 중엔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2024년 총선이 있기 때문에 현역 의원은 4년간 최대 9억 원을 모금할 수 있다. 반면 원외의 정치 신인은 선거 120일 전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부터 최대 1억5000만 원까지만 모금할 수 있다.
충남 지역에 출마하는 한 예비후보는 “인지도가 낮은 신인은 친인척이나 지인 외엔 후원금이 나올 곳이 사실상 없다”며 “명함 만들고, 문자메시지 보내고, 지역을 돌며 인사하는 단계 하나하나가 모두 돈인데, 자비로 수천만 원씩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 지역 출마를 준비 중인 예비후보도 “원외 인사도 정치 후원금을 모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결국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사람 외에는 사실상 도전이 어렵다”고 했다.
● 현역들 시·구의원, 보좌진 동원해 선거운동
신인들은 현역 의원이 자신의 보좌진(9명) 외에 지역구의 시(도)·구(군)의원 4, 5명을 본인 선거운동에 동원하는 점도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 공직선거법상 지방의회 의원들은 공무원 신분에도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차기 공천을 위해 현역 의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구의원들은 경선 투표권을 가진 책임(권리)당원을 대거 모집하면서 일종의 ‘충성 경쟁’에 나서고 있다. 한 전직 의원은 “시·구의원은 지역 사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라며 “지역 공약을 만들고, 당원을 모집하는 데 있어 신인은 따라올 수 없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맨파워’로 무장한 현역 의원 캠프가 암암리에 경쟁 후보의 선거운동을 방해하는 일도 있다. 수도권에 출마한 한 전직 국회 보좌관 출신 예비후보는 “지역 현역 의원의 보좌진이 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축하 화환을 보낸 사람들 명단을 확인한 뒤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항의한 일도 있다”고 했다.
● 현역은 최신 당원 명부로 전화·문자 홍보
통상 각 지역구 당협(지역)위원장을 맡는 현역 의원들이 총선을 앞두고 위원장직을 사퇴하기 전 미리 지역구 당원들의 연락처와 주소가 담긴 최신 명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점도 신인들에 비해 크게 유리한 부분이다. 이를 토대로 전화·문자 선거운동을 벌일 수 있기 때문. 경기 남부권에 출마한 한 예비후보는 “정치 신인들은 교회, 향우회, 시민단체 등을 찾아가 유권자 연락처를 달라고 읍소한다”며 “현역이 내비게이션을 달고 운전한다면 신인은 지도 한 장 없이 뛰어드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예비후보 등록 이전에 일정한 조건을 갖춘 후보에 대해서는 원외도 모금할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며 “시·구의원을 선거운동에 동원하지 못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