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면 공정거래위원회 과장급 이상 직원들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집니다. 매년 공정위가 실시하는 상향식 간부평가 때문입니다. 직장 괴롭힘을 근절하고 조직 문화를 바꾸자며 도입된 제도가 인기 투표로 변질돼 스트레스만 준다는 토로가 끊이질 않습니다.
공정위는 매년 12월 초 약 2주간 간부평가를 실시합니다. 리더십, 업무능력 등 분야마다 점수를 매겨 총점(100점 만점)을 내는 식입니다. 외부로 파견 가지 않고 1년 동안 최소 4개월을 공정위에서 일한 과장급 이상은 모두 평가 대상입니다. 1년 중 해당 간부와 하루라도 함께 일한 직원 모두가 점수를 줍니다.
이 제도는 김상조 위원장 시절이던 2019년 1월 노조와의 자율 협약으로 도입돼 그해 연말 처음으로 시행됐습니다. 노조가 간부를 대상으로 해오던 ‘갑질 설문조사’를 공정위가 정식 제도로 도입한 것입니다. 간부평가 점수가 상위권에 든 간부는 약 2주간 내부망에 이름과 평가 내용이 공개됩니다. 하위 10%는 이름은 빼고 평가 내용만 공표됩니다. 하지만 사실상 전 직원이 누가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알게 됩니다.
부하직원이 상사를 평가하는 제도는 다른 정부 부처에도 있습니다. 기재부 역시 사무관 이하 직원들이 ‘닮고 싶은 상사’와 ‘안 닮과 싶은 상사’를 매년 뽑습니다. 하지만 공정위의 상향 평가는 기재부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인사권자가 평가 결과를 인사에 참고하도록 한 점입니다. 자율 협약 당시 공정위 노사가 “평가 결과를 인사관리에 반영하도록 노력한다”고 약속한 데 따른 것입니다.
공정위는 평가 결과가 참고 자료로만 쓰일 뿐 반드시 인사 조치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인사권자인 위원장에게 하위 10% 직원 명단과 평가 내용이 모두 전달되다 보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인사 참고 자료로 쓰일 만큼 중요한 평가가 인기 투표로 변질되고 있다며 호소하는 직원들도 많습니다. 공정위의 한 과장급 직원은 “후배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며 의욕적으로 일하던 과장이 이유 없이 괴롭히는 상사처럼 평가되기도 했다”며 “익명 인기 투표가 인사에 참고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기가 꺾인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다른 간부급 직원은 “‘이기적이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 등 비난에 가까운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평가내용이 익명으로 공개되더라도 누군지 다 소문이 돌다 보니 당사자의 상처가 크다”고 했습니다. 상향 평가가 직원들 사이를 갈라놓는다는 것입니다.
공정위가 노조 입김에 휘둘린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며 공정위에서도 이 제도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입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갑질을 조심하게 되는 장점은 있지만 간부급 직원들이 지나치게 위축되는 부작용도 분명 있다. 내부적으로 이 제도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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