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 없는 ‘미래 권력’ 한동훈, ‘현재 권력’ 윤석열 넘어설까

  • 주간동아
  • 입력 2024년 1월 27일 09시 23분


‘용산의 역린’ 건드린 승부수… “尹 불리한 상황서 시작된 충돌”

“향후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게로 힘이 실릴지는 알 수 없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힘이 빠진 것은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명분과 타이밍, 세력이 모두 불리한 상황에서 싸움을 걸었다. 정치에서 의도보다 중요한 것이 의지고, 의지보다 중요한 것이 역량이다. 윤 대통령이 과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싸울 때만 해도 의도와 의지, 역량이 모두 받쳐줬다. 지금은 의도와 의지는 있어도 역량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험대 오른 한동훈 비대위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동아DB]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동아DB]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1월 25일 한 비대위원장과 윤 대통령 간 충돌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 박 대표는 “총선 공천을 앞둔 시점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한 비대위원장에게 유리한 상황”이라면서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논란으로 확산될 여지가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다툼 시점과 내용, 양상 모두 한 비대위원장에게 유리했다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갈등이 가시화됐다. 용산의 역린으로 여겨지던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대응을 두고 한 비대위원장과 윤 대통령이 이견을 보인 것이다. 이준석·김기현 지도부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툼이 해결되면서 윤 대통령의 레임덕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이 ‘인간적 결별’ 수순을 밟는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오면서 한때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나 서로 악수하며 사안은 일단락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살아 있다는 시각이 적잖다.

당초 한동훈 비대위는 많은 우려 속에서 출범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40% 벽을 좀처럼 넘지 못하는 탓에 ‘정권심판론’이 만연한 상황에서 총선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비대위’를 롤 모델 삼아 총선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는 시각이 적잖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 후반기인 2011년 12월 비대위 체제를 시작했고, 이듬해 19대 총선에서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152석을 차지하며 과반수 확보에 성공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20%대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여권에서는 구원투수로 등판한 한 비대위원장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다.

“현재 권력은 미래 권력 못 이겨”


문제는 한 비대위원장이 처한 상황이 박근혜 비대위 당시와는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박근혜 비대위에 몸담았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1월 24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현 상황은 당시와 완전히 다르다”고 평가했다. 그는 박근혜 비대위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축으로 ‘박 전 대통령의 독자적 정치 기반’과 ‘이명박 정권의 짧은 잔여 임기’를 뽑았다. 이 명예교수가 보기에 현 상황은 당시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퇴로가 없다. 한 비대위원장 입장에서는 윤 대통령과 갈등 국면을 만들 필요가 있다. 문제는 한 비대위원장의 정치적 기반이 윤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 임기가 꽤 남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총선 후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고, 이후에야 대선이 있다. 따라서 지금 한동훈 비대위가 처한 상황은 정권 임기 말 자신만의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시작했던 박근혜 비대위와는 매우 다르다.”

전문가들은 여권의 미묘한 기류 변화를 강조했다. 한 비대위원장이 대통령실에 정면으로 맞선 가운데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의 응집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을 이긴 적은 없다”며 “윤 대통령이 자신의 의도와 별개로 제2 윤석열을 키운 격”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공천 문제가 걸려 있고, 한 비대위원장 역시 점차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향후 구심점을 잃은 친윤계가 소멸하는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간 한 비대위원장의 최대 과제로 윤 대통령과 차별화가 꼽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1월 9일부터 사흘간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무선전화면접 방식을 통해 ‘장래 정치 지도자’를 조사한 결과 한 비대위원장은 22% 지지율을 받으며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표(23%)에게 오차범위에서 뒤졌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제는 같은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부정 평가자’ 가운데 5%만이 한 비대위원장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3%에 불과해 부정 평가(59%)에 비해 크게 낮았다. 여권이 ‘X세대’를 내세우며 한 비대위원장을 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른바 ‘윤석열 아바타’로 인식되는 상황에서는 확장성 측면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이 국면을 뒤흔든 것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앙투아네트 발언’이다. 김 비대위원은 1월 17일 JTBC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 “수도권에서 특히 민심이 좋지 않으니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고 하더라”며 “지금 이 사건도 국민 감성을 건드렸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관련 문제가 ‘국민 감성’을 건드린 만큼 “사안을 잘 설명하면 된다”거나 “대응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대통령실의 기존 관점이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 것이다.

국면 뒤흔든 ‘앙투아네트 발언’


한 비대위원장 역시 1월 19일 김 비대위원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입장을 밝힌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YTN 의뢰로 1월 21일부터 이틀간 정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방식을 통해 조사한 결과 유권자의 69%가 김 여사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그래프 참조). ‘별도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24%에 불과했다. ‘국민 눈높이’ 발언은 사실상 대통령실의 입장 표명을 요구한 셈이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동아DB]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동아DB]

대통령실 측은 즉각 반발했다. 국민의힘 이용 의원이 1월 21일 당 소속 의원들이 모인 텔레그램 단체채팅방에서 한 보수 성향 유튜버의 발언을 인용하며 “설득력 있는 사과 불가론을 제기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 의원은 이날 ‘윤 대통령이 한 비대위원장의 줄 세우기 공천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했다’는 취지의 기사도 공유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수행실장을 지내며 친윤계 핵심 인사로 꼽혔고, 각종 사안에서 당내에 대통령실 분위기를 전해왔다. 김 여사 역시 앞서 지인들에게 텔레그램 메시지 등을 통해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타 친윤계 의원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상황은 미묘하게 흘러갔다. 국민의힘 텔레그램 단체채팅방에 이 의원의 얘기에 호응하는 기류가 형성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 사이를 이간질하지 마라”는 취지의 글을 올려 응수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사무총장 역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단톡방에 올려 그것이 당 전체 의사인 것처럼 여론을 형성해가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한 비대위원장 역시 1월 22일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로 알고 있다”면서 “부족하지만 선민후사 하겠다”고 밝히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윤-한 충돌’ 3가지 시나리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1월 17일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김경율 비대위원과 함께 주먹을 쥐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1월 17일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김경율 비대위원과 함께 주먹을 쥐고 있다. [뉴스1]

정치권 관심은 김경율 비대위원의 행보에 쏠리고 있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김 비대위원을 안고 가느냐 여부로 한 비대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힘 싸움 결과가 판정 날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1월 25일 대통령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김 비대위원 사퇴론’에 대해 “그런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며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는 전날 김 비대위원의 사퇴가 이른바 윤-한 갈등의 출구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도 “그런 얘기를 들은 바 없다”고 일축했다. 한 비대위원장은 또한 김 여사 관련 논란에 대해서도 “내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성민 대표는 향후 한동훈 비대위가 3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첫 번째는 한 비대위원장이 지는 시나리오다. 그가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하거나 김경율 비대위원이 물러나는 경우인데, 이 경우 총선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한 비대위원장이 이기는 경우다. 다만 신구 권력 간 충돌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보수층 일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봐야 한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적당한 타협’이다. 이 경우 대통령실이 김건희 리스크를 알아서 풀어야 하고, 동시에 물밑에서 공천 조율도 해야 한다. 어떤 시나리오든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힘든 싸움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25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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