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목적에 기반한 확신범은 일반적으로 성인이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을 피습한 A 군(15)은 확신범으로 분류되는 통상의 성인 범죄자와 양상이 달라 보인다. 15세면 신념 체계가 확고하게 굳어지기 전인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번 문제를 단순히 ‘여야 갈등에 기인한 정치 테러’로 정의하는 데 이견이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월 29일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배 의원 피습 사건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배 의원은 1월 2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건물에서 중학생 A 군으로부터 돌덩이로 17차례 공격당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고 사흘 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다. A 군은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전에 돌덩이를 소지했고 범행 당시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만큼 계획범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교수는 “패딩에 돌을 넣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며 이번 범죄의 경우 계획성이 농후하다고 분석했다.
“배현진, 희생양일 수도”
국민의힘 경기 수원정 예비후보인 이 교수는 범죄심리학을 한국에 들여온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자문교수로 활동한 그는 스토킹방지법 등 약자 보호를 위한 제도 정비에도 기여해왔다. 이 교수는 “배 의원이 온라인 공간에서 이른바 ‘희생양’이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배 의원 개인을 향한 특정 온라인 공간의 적대적 기류가 테러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15세 A 군만의 문제인가, 아니면 인터넷 게시판 문제인가, 더 나아가 혐오주의 문제인가를 따져볼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미성년자가 저질렀다는 점이 이전 정치 테러와 구별되는 것 같다.
“미성년자는 대부분 우발 범죄를 저지른다. 가령 길을 걷다 해코지를 하고 싶어지면 사회적 약자에게 주먹질을 하는 식이다. 정신과적 문제를 안고 있다면 미성년자도 이른바 ‘묻지 마 폭행’까지는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사안의 경우 계획성이 농후해 보인다는 점이다. 범행 현장이 건널목 등 공공장소가 아닌 사적 공간이었다. 배 의원의 활동 경로를 모르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시간대와 장소에서 피습이 일어났다. A 군은 과거 경복궁 낙서 피의자 구속심사 현장에서 출입 통로에 대기하고 있다가 모방범에게 지갑을 던지기도 했다. 이번 사안에서도 A 군이 관련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입수 경로가)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일 수 있다.”
경찰 수사 핵심이 정보 입수 경로여야 한다고 보나.
“그렇다. 배 의원이 (일정과 관련해) 관련 장소를 고지하지 않았다. A 군은 며칠 전부터 해당 미용실을 찾았다고 한다. 이 같은 사적 정보를 어디서 입수했는지, 여러 사람 가운데 왜 하필 배 의원을 노렸는지 등에 주목해야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배현진이라는 이름이 계속 (부정적으로) 언급되면서 급기야 A 군이 배 의원을 목표 대상으로 삼게 됐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무작정 오프라인의 치안 수준을 더욱 엄격히 하자는 얘기보다 사이버공간에서 정치인을 혐오 대상으로 삼는 과정이 어떤 경로로 퍼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유사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계획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A 군이) 우연히 배 의원을 만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패딩에 돌을 넣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해코지할 목적을 갖고 일종의 둔기를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계획 없이 이 같은 일련의 행위가 이뤄질 수 있겠나. 그건 불가능하다.”
“묻지 마 폭행과 양상 달라”
배 의원의 소식을 접하고 “남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지난해 12월 초 국회의원 출마 선언을 한 후 연구실로 ‘사지로 가지 말라’는 쪽지가 왔다. 쪽지를 확인하고 ‘연구실에 있었으면 큰일을 당할 수도 있었겠구나’라고 느꼈다. 온라인상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적대적 행위가 광범위하게 지속된다면 이는 심각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사건들은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가 흔치 않고, 묻지 마 폭행과도 양상이 다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 등을 대상으로 한 혐오와 이에 따른 (테러에 대한) 예고적 분위기 등은 온라인상에서 충분히 추정될 수 있다. 경찰이 관련 첩보를 미리 수집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과거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후 (후속 사고를) 줄일 수 있었던 이유도 당국이 기민하게 대응한 덕분이다. 당시 윤희근 경찰청장이 강경 대응 방침을 발표한 후 온라인상에서 살인 예고 글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테러를 예고하는 분위기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비판은 좋은데, 굳이 이름을 거론하면서 비판해야 할 이유가 있나. 정치적 행위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해도 된다. 다만 개인 이름을 언급하면서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예컨대 15세 A 군에게 배 의원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돌덩이로 17차례 내려찍을 정도의 적대적 의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택시로 ‘도산공원→강남 미용실’… A 군 행적 살펴보니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1월 25일 오후 5시 20분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건물 입구에서 A 군(15)으로부터 돌덩이로 17차례 피격을 당했다. 당시 A 군은 배 의원에게 접근해 “국회의원 배현진이냐”라고 물은 뒤 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 의원은 즉시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으로 이송돼 두피의 1㎝ 열상을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고, 사흘 후 퇴원했다. 경찰은 A 군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는 등 범행 동기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범행 당일뿐 아니라 과거 행적을 파악하고자 통화 내역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록도 확보해 분석 중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