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72% “탈북前 1년간 식량배급 못받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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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체제이후 배급망 붕괴

6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바라보이는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의 한 마을에 주민들이 나와 있다. 통일부가 탈북민 증언 등을 토대로 
이날 처음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민 응답자의 50.7%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권 후 경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인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6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바라보이는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의 한 마을에 주민들이 나와 있다. 통일부가 탈북민 증언 등을 토대로 이날 처음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민 응답자의 50.7%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권 후 경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인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16∼2020년 탈북한 북한 주민 10명 중 7명(72.2%)이 탈북 전 1년간 식량 배급을 받은 경험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집권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민들 배를 굶게 하진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당국 차원의 배급제가 오히려 유명무실한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것.

통일부는 6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탈북해 국내에 정착한 6351명을 심층면접해 작성됐다. 조사 기간은 2013∼2022년이다. 탈북민 면접조사 결과는 개인정보 유출 등을 우려해 그동안 3급 비밀로 분류됐지만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20년 탈북한 주민 가운데 식량 배급은 물론 노임도 받지 못했다는 답변(50.3%)도 절반이 넘었다. 같은 기간 탈북한 주민 중 93.6%는 북한 거주 당시 “장사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배급제 붕괴로 주민들 대부분이 생존을 위해 장마당 등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93.1%는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지방 인민들에게 기초식품과 초보적인 생활필수품조차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례적으로 배급체계 붕괴를 시인한 바 있다.

이른바 ‘백두혈통’ 세습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2016∼2020년 탈북민 중 절반 이상(54.9%)이 백두혈통 세습에 반대한다고 답한 것. 2000년 이전 탈북민의 경우 이 수치는 22.7%에 그쳤다.

탈북민 절반 “김정은 집권뒤 경제 악화… 무임금-무배급 장기화”


탈북민 6351명 조사 ‘北실태’ 첫 공개
코로나 봉쇄 이후 배급제 경제 붕괴
평양外 접경지역선 ‘나무 난방’ 7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남포조선소를 방문해 전쟁준비를 위해 해군무력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조선중앙TV가 3일 보도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2024.02.0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남포조선소를 방문해 전쟁준비를 위해 해군무력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조선중앙TV가 3일 보도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2024.02.03.
“백두혈통 독재에 대한 민심 이반은 김정은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통일부는 6일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를 처음 공개했다. 2020년까지 탈북한 주민 6351명을 설문·면접 조사한 결과를 담은 것.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 보고서 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독재 체제에 대한 북한 내 불만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조사 당시보다) 현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도 했다.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국경을 봉쇄하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면서 배급제 등 경제 시스템이 급격히 붕괴됐다. 이에 김 위원장에 대한 체제 불만은 더욱 극심해졌을 거란 평가가 나온다.

● 평양 출신, 지방보다 김정은 세습 불만 더 커


2016∼2020년 탈북한 주민 가운데 북한 거주 당시 ‘백두혈통 영도 체계 유지에 반대했다’는 응답은 53.9%에 달했다. 같은 기간 탈북한 주민 중 김 위원장의 권력 승계가 정당하지 않다는 응답도 56.3%였다. 2011∼2015년 탈북한 주민의 응답(47.9%)보다 비율이 높아졌다.

출신 지역으로 보면 평양 출신 탈북민 중 54.7%가 김 위원장 권력 세습에 불만을 드러냈다. 접경지역(43.9%)이나 평양 밖 비접경지역(40.9%) 등보다 오히려 집권층이 밀집한 평양에서 세습에 더 크게 반감을 드러낸 것. 통일부 당국자는 “접경지역 탈북민은 경제적 이유로 불만이 많지만 평양 주민들은 정치적, 체제적 이유로 세습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했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경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답한 탈북민도 50.7%에 달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정권이 체제에 대한 내부 불만을 핵·미사일 도발을 통해 외부화하는 통치 방식을 모르는 주민들도 없다”고 했다.

● “배급제 붕괴에 남편은 ‘멍멍개’ ‘낮전등’”


북한은 연간 70만∼100만 t에 달하는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 당국은 무임금·무배급 ‘충성 페이’도 주민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 등 시장 거래에 사실상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배급제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여성이 장마당을 통해 가정 경제를 이끄는 경우도 늘었다. 남편이 불필요하다는 의미로 남편을 “멍멍개” “낮전등(쓸모 없는 존재라는 뜻)”으로 부른다는 탈북민 진술까지 나왔다.

정부 소식통은 “코로나19 시기 당국이 곡물 등 생필품 사적 거래를 금지하면서 일반 주민의 생계유지는 보고서 내용보다 더 척박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지방의 배급제 붕괴 상황을 이례적으로 시인할 만큼 지방 경제가 무너졌다는 정황도 이번 보고서에서 확인됐다. 접경지역에선 나무 연료로 난방을 하는 비율이 72.7%나 됐다. 마을 우물을 사용하는 비율도 20% 이상이었다. 그나마 평양만 석탄·전기 난방 연료 사용(68.7%)이나 개인 수도 사용(65.7%) 비율 등이 비교적 높았다.

김 위원장 집권기를 경험한 탈북민 응답자 중 기업소(공장)의 실제 가동 시간이 하루 6시간 이하였다고 답한 비율은 37.6%에 달했다. 전력 부족으로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전력을 조달하는 경우도 많다. 2020년 탈북한 주민은 “(전기 공급은) 하루 30분에서 1시간 정도고, 안 줄 때도 많았다. 중국제 태양판·축전지를 시장에서 자체 구입해 전기를 조달했다”면서 “전력은 국가가 10%, 자체적으로 90% 정도였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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