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이 부자 정당에 투표하는 건 그들이 바보라서가 아니다

  • 주간동아
  • 입력 2024년 2월 12일 09시 14분


[돈의 심리] 부자 정당 집권 시절 가난한 이들의 삶 실제로 나아져… 가난한 이도 충분히 합리적

미국 가난한 흑인들의 삶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 시기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시기에 더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GettyImages
미국 가난한 흑인들의 삶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 시기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시기에 더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GettyImages
정치·경제와 관련해 오랫동안 수수께끼처럼 내려온 현상이 있다. 많은 국가에서 정당은 주로 진보당과 보수당으로 나뉜다. 진보당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부를 기치로 내걸고, 국민 복지 증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려 한다. 반면 보수당은 시장 경쟁을 중시하고 기업 활동을 독려한다. 기업가와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시행해 ‘부자 정당’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진보당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당이고, 보수당은 부자들을 위한 정당이다. 그럼 가난한 사람은 선거에서 진보당에 표를 더 줘야 한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부자 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당에 투표하지 않고 오히려 부자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있는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고, 보수를 대표하는 정당은 국민의힘이다. 그런데 막상 저소득층은 더불어민주당보다 국민의힘에 더 많이 투표해왔다. 선거 출구조사, 여론조사 등에서 지난 20여 년간 일관되게 나타난 현상이다.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계급배반투표라 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책이 미국 언론인 토머스 프랭크가 쓴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다. 미국 캔자스주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왜 부자 정당에 투표하는지를 분석했다. 프랭크는 그 이유를 가난한 사람이 보수층 논리에 끌려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봤다. 보수층은 선거에서 경제적 이익, 돈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민의 자유와 도덕 등 사회적·문화적 가치를 앞세운다. 보수당은 이런 긍정적 가치를 내세워 투표에서 이긴 다음, 경제적으로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내놓는다. 가난한 사람은 그런 전략에 휘말려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불리한 정책을 시행하는 보수당에 투표한다.

부자 정당에 투표하는 가난한 사람들
프랭크 이외에도 많은 연구자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 정당에 투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에 의해 정치에서 점차 밀려나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에게 심리적으로 지배당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 언론의 영향으로’ 가난한 사람은 이율배반적으로 부자 정당에 투표한다는 것이다.

여러 설명이 뒤따르지만 사실 그 이유는 하나로 묶인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못해 이리저리 돌려서 말하는데, 사실 진짜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바보라서’다. 가난한 사람들은 바보라서 사회문제를 잘 알지 못하고, 부자들에게 조종당하며, 보수 언론에 끌려다니고, 앞날을 예측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난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정당’에 투표하지 않고 ‘부자들을 위하는 정당’에 투표한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이 가정에 대해 많은 사람이 비판한다. 인간은 합리성에 지배되지 않으며, 비합리적인 면도 많다. 그런 비합리성을 무시하는 경제학은 인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래도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경제학이 좀 더 낫다고 본다. 경제학의 합리성을 비판하면서 인간의 비합리성을 중시하는 학문은 결국 다른 사람을 바보라고 본다. 자기 자신을 바보라고 여기지 않기에 자신은 똑똑하지만 다른 사람은 바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사람이 부자 정당에 투표하는 건 그들이 바보라서 그렇다는 결론을 얻는다. 하지만 경제학적 시각에서 가난한 사람은 단지 돈이 부족할 뿐이다. 가난하다고 다른 이들에게 조종만 당하는 바보가 아니며,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존재들이다.

흑인들 삶 더 어려워진 오바마 패러독스
1950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 중국은 대약진운동을 시작하면서 집단농장을 만들었다. 그동안 농부는 자기 땅을 일궈왔는데, 집단농장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소유가 된다. 사유재산을 없애고 공동재산화하면 사회 불평등이 사라지고 사람의 이기심에 의한 사회악도 모두 없어질 것이다. 공동소유는 사회주의자의 이상이었고, 공동소유를 시행하는 중국 집단농장 체제는 전 세계 사회주의자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제 공동생산, 공동소유, 필요에 의한 지출로 이상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중국 농민들이 모든 것이 공동소유가 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일까. 자기가 기르던 닭, 돼지, 소 등을 잡아먹는 것이었다. 기르던 가축을 잡아먹지 않은 농부도 있긴 했고, 소나 돼지가 많은 집에서는 다 잡아먹지 못했다. 이것들은 집단농장 체제가 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가져가 잡아먹어버렸다.

집단농장 체제를 주장한 사람들은 여러 명이 공동으로 가축을 돌보면 가축이 더 늘어나고 관리도 더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공동소유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자기 닭, 돼지를 동네 사람들이 모두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전에 그냥 자기가 잡아먹는 게 이득이었다. 정치가, 공무원, 학자, 지식인은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난한 농민들이 무턱대고 무식한 것은 아니다. 당시 중국에서 사회 최하층이기는 했지만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해서는 가장 확실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합리적인 가난한 사람들이 왜 부자 정당에 투표하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것으로 ‘오바마 패러독스’가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다. 그는 미국에서 사회 최하층을 구성하는 흑인의 삶을 나아지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오바마는 또한 흑인의 삶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오바마 재임 시절 흑인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여러 정책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실제 흑인의 삶은 오바마 재임 시기에 더 안 좋아졌다. 흑인이 더 잘사는 사회를 목표로 관련 정책을 시행했는데 오히려 흑인의 삶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것이 오바마 패러독스다.

더 큰 패러독스는 오바마 뒤를 이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흑인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해주겠다는 말을 빈말로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트럼프가 내놓은 정책은 모두 부자를 위한 것, 기업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가난한 흑인들의 삶이 트럼프 재임 시절 훨씬 나아졌다. 흑인 실업률이 크게 줄고 소득이 늘어 부자들과 소득 격차도 감소했다.

여러분이 흑인이라면 누구를 뽑아야 할까. 흑인,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고 공언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시행했으나 실제 삶은 더 어려워진 오바마를 지지해야 할까, 아니면 흑인을 위하겠다는 말을 한 적 없고 흑인들을 위한 정책에 아무런 관심이 없지만 실제 삶은 더 좋아진 트럼프를 지지해야 할까. 트럼프는 2020년 재선에 실패했으나, 2016년 선거에 비해 흑인 표는 훨씬 늘어났다. 흑인은 자신들을 위한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실제 자신의 삶을 나아지게 한 사람에게 표를 줬다.

진보 정책이 삶을 더 힘들게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정당은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최저임금을 올리고, 각종 보조금을 늘렸다며 생색을 낸다. 의료복지를 실시해 실제로 감기 치료비는 줄었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료가 올랐다. 가난한 사람은 감기 치료비만으로 정책을 판단하지 않는다. 의료와 관련된 모든 지출을 다 합쳐서 고려한다. 감기 치료비는 줄었어도 국민건강보험료가 올라 전체 비용이 상승하면 좋아할 수가 없다. 최저임금도 올랐다. 그런데 일자리를 얻기가 더 어려워졌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일자리가 줄어들면 먹고살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런저런 보조금으로 돈을 주기는 하는데, 물가가 오르고 세금이 올라 장바구니는 더 쪼그라든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당 의원들은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가난한 사람들은 나에게 표를 주지 않을까”라며 의아해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중요한 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겠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시행하겠다’가 아니다. 실제 자신들의 삶이 더 좋아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이율배반적으로 부자 정당에 투표하는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최소한 가난한 사람들이 바보라서 그렇다는 말보다는 나은 설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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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27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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