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오전 10시 반. 인천 부평구 갈산동에 위치한 더불어민주당 이동주 의원 선거사무소는 휴일에도 이른 아침부터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사무소 입구에 들어서자이 의원과 이재명 대표가 어깨동무를 한 채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사진부터 눈에 들어왔다. 친명(친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이 의원(비례대표)은 지난해 12월 친문(친문재인)계 현역 홍영표 의원(4선) 지역구(인천 부평을)에 도전장을 냈다.
4·10 총선이 약 두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공천을 앞두고 민주당 내 친명계와 친문계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인천 부평을과 경기 안산 상록갑을 찾았다. 친명 후보가 친문 현역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 이른바 ‘자객 출마’ 논란이 불거진 지역이다.
● “자객 출마 아니”라지만 곳곳서 ‘친명 호소’
사무소에서 만난 이 의원 캠프 관계자는 “이 의원은 1998년부터 이곳에 거주하면서 상인 운동도 하고 치킨 호프집도 운영한 부평 토박이라 이 지역으로 출마하는 것”이라며 자객 출마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 본인도 이날 페이스북에 “부평의 정치를 교체하기 위해 출마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그럼에도 ‘친명 호소’가 이 의원의 핵심 선거 전략인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였다. 선거사무소가 위치한 건물 외벽에 걸린 대형 현수막에는 ‘이재명 당대표 직속 기본사회위원회 을(乙)기본권 본부장’ 이력이 적혀 있었다. 이 의원 보좌진도 “당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를 돌려보면 상당수가 ‘이 의원이 진짜 친명이 맞느냐’고 물어본다”며 “그럴 때면 ‘이 의원이 이 대표와 정책적 방향성이 같다’는 취지로 답변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연휴 기간인 10일에도 유튜브 등을 통해 ‘개딸(개혁의딸)’ 등 이 대표 강성 지지층에게 호소하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 의원은 “당 대표를 향해서 칼을 꽂는 행위들을 하는 세력들이 있다“며 ”이런 낡은 세력들은 과감하게 청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면전에 나선 이 의원과 달리 홍영표 의원은 ‘로키(low-key)’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 의원 사무소로부터 불과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홍 의원의 사무소에는 별도 선거용 현수막도 걸려 있지 않았다. 홍 의원이 아직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홍 의원이 설 명절을 앞두고 지하철역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건 봤지만, 그것 말고는 특별히 선거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4선 중진으로 원내대표를 지낸 홍 의원은 탄탄한 조직 기반을 앞세워 ‘친문 찍어내기’ 흐름에 맞선다는 전략이다. 홍 의원 측 관계자는 “민주당 시·구의원 전체가 홍 의원을 지지하고 있다. 여태 지역에서 역할을 다해 온 홍 의원과 ‘친명팔이’ 후보와 경선을 붙인다면 당의 행패”라며 “경선을 앞두고 조직이 똘똘 뭉치고 있다”고 했다.
● 주민들 “당내서도 편 갈려 싸워… 보기 싫다”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전해철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안산 상록갑에서도 친명-친문 내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경기 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전 의원의 선거사무소에는 휴일임에도 회의를 위해 사무소로 출근한 보좌진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 의원은 ‘지역발전론’을 앞세워 4선에 도전하고 있다. 선거사무소 건물 외벽엔 ‘안산에는 전해철’ ‘믿으니까 전해철’ 등 선거 슬로건이 적힌 대형 현수막 3개가 걸려 있었다.
이 지역에는 친명 원외인사인 양문석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양 후보는 당 경남 통영·고성 지역위원장을 지내다 지난해 4월 지역위원장직을 사퇴한 뒤 안산 상록갑에 도전장을 내 ‘자객 출마’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통상 지역위원장은 해당 지역으로 그대로 출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 후보는 지난해 6월 페이스북을 통해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로, 비이재명계를 비하하는 은어)의 뿌리요, 줄기요, 수박 그 자체인 전해철과 싸우러 간다”고 썼다가 당직 3개월 정지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양 후보는 그 뒤로도 줄곧 전 의원을 향해 “반(反) 개혁세력”이라며 날을 세워왔다.
양 후보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당내 반개혁파를 다 쫓아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전 의원과는 달리 당원의 뜻을 정치적 의사결정에 반영해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양 후보는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권리당원의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으로 선거 운동에 나서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민주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명 대 친문’ 갈등에 부정적이었다. 13년째 인천 부평구에 거주 중인 회사원 전모 씨(48)는 “민주당 지지자이기는 하지만, 당내에서도 편이 갈려 서로 싸우는 모습은 아무래도 좋게 봐주기 힘들다”며 “본인들끼리 싸우기보다 국민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정모 씨(39)는 “각자 진영을 앞세우기보다는 지역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으로 서로 경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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