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현지시간)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 주 유엔 한국대표부의 황준국 대사는 “한국과 수교하고 싶다”는 갑작스런 제안을 받았다. 맞은 편엔 주 유엔 쿠바 대표부 헤라르도 페날베르 포르탈 대사가 앉아있었다.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이 2016년 외교수장으로서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한 이후로도 8년 넘게 계속된 한국의 수교 ‘러브콜’에 쿠바가 호응한 것이다.
16일 외교가에 따르면 한국이 쿠바의 의사를 확인한 8일부터 국교를 맺은 14일까지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양국의 협상은 숨가쁘게 이뤄졌다. “보안이 생명”이라는 공감대 아래 한국과 쿠바의 유엔 대표부는 뉴욕 모처에서 장소를 옮겨가면서 여러 차례 회동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과거 수교를 맺기 앞서 몇년 동안 협상을 이어간 전례도 있었던 것에 비교하면, 이번 수교는 유례 없이 빠르고 압축적으로 모든 협상과 사전 준비가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과 쿠바 모두 ‘가능한 최대한 빨리’ 수교를 맺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 영향이 컸다.
한국과 쿠바의 수교가 가시화된 것은 설연휴를 앞둔 이달 7일부터였다. 황준국 대사에게 포르탈 대사가 먼저 전화를 걸었던 것. 두 사람은 앞서 다자회의나 만찬에서 얼굴을 익혔지만, 통화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내일 만나자”는 포르탈 대사의 제안에 황 대사가 응했다. 그리고 이튿날 이뤄진 만남에서 포르탈 대사가 수교를 원한다는 쿠바 측의 입장을 전달한 것. 지난해 우리 측의 수교 의사를 전했지만 ‘형제 국가’ 북한을 의식한 듯 “다른 고려사항이 있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쿠바의 입장이 달라진 것이다.
유엔 대표부는 한국에 있는 외교부에 쿠바 입장을 전달했다. 보안을 위해 외교부와 유엔 대표부 안에서도 극소수만 정보를 공유했다. 수교 움직임이 알려질 경우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며 방해에 나설 것이 분명했다. 북한은 2015년 한국 정부가 쿠바와의 수교 의사를 내비친 직후 리수용 당시 외무상을 쿠바에 보냈다. 2016년 윤 전 장관의 쿠바 방문을 앞두고는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먼저 쿠바를 찾아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견제했다.
수교를 위해서는 한국과 쿠바 모두 국내에서 절차를 밟아야 했다. 한국의 경우 쿠바와의 수교 안건을 국무회의에 상정해 위원들의 심의 의결을 받아야 했다. 헌법에 따르면 외국과의 조약안이나 중요한 대외 정책 사안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양국은 수교를 위해 국내에서 필요한 최소 시간이 얼마인지를 감안해 “가장 빠른 시기”로 수교일을 정하자는데 공감했다. 먼저 수교일을 14일로 하자고 제안한 건 쿠바 측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밸런타인 데이라 양국의 우정을 상징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14일 오전 8시 한국과 쿠바가 뉴욕 모처에서 만나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순간까지도 양국의 긴장감은 이어졌다. 당국은 쿠바 측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수교를 위한 외교 공한을 언제 교환하고, 수교 사실을 몇시 몇분에 공표할지까지 합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설 연휴 기간 쿠바와 최종 합의 결과를 보고받고 승인했다. 이어 쿠바가 수교 의사를 처음 밝힌 지 6일 만인 14일 전격 수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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