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35일 앞두고 여야가 막바지 공천 작업을 이어가는 가운데, 지역과 아무 연고 없이 갑자기 ‘벼락’ 공천된 후보 대부분이 지역 현안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맞춤형 공약이나 정책 개발은 후순위로 밀렸다. 전문가들은 “거대 양당이 선거 판세만 고려한 전략공천을 남발하면서 지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갑자기 내리꽂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다”며 “무연고 벼락공천의 피해는 모두 유권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국민의힘은 서울 서초구청장을 지낸 박성중 의원을 경기 부천을에, 서울 출신 이원모 전 대통령인사비서관을 경기 용인갑에, 전북 군산 출신 함운경 민주화운동동지회장을 서울 마포을에 우선추천(전략공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강원도지사를 지낸 이광재 전 사무총장을 경기 성남 분당갑에, 서울 광진을 국회의원을 지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경기 하남갑에, 부산 출신 류삼영 전 총경을 서울 동작을에, 경북 경주 출신으로 서울 도봉 지역에 연고가 없는 안귀령 대변인을 도봉갑에 전략공천했다. 모두 대표적인 ‘무연고 벼락공천’ 사례로 꼽힌다.
정작 공천을 받은 후보들도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수도권에 전략경선 형태로 공천된 민주당의 A 후보는 6일 통화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지역에 갑자기 공천을 받아 내가 느끼기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당장 경선까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아예 공약 개발은 포기하고 상대 후보 네거티브에 주력하기로 했다”고 했다. 수도권에 우선추천된 국민의힘 B 후보는 “아무 연고가 없는 지역에 갑작스럽게 공천됐다”면서 “겨우 당 조직의 도움을 받아서 급하게 공약을 만들고 있지만 꼼꼼하게 챙길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라고 토로했다. 이 외에도 ‘벼락공천’ 후보 다수가 지역 현안 파악을 위해 구·시의원들에게 관련 ‘속성 과외’를 받거나, 급하게 선거 캠프에 지역 관계자들을 채용하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자리에 지역을 잘 모르는 사람을 공천하는 건 지역 유권자를 무시하는 행위이자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고없는 곳 싫다는 데도 보내” “급한대로 구-시의원 공약 차용”
‘무연고 벼락공천’ “길도 모르고 숙원사업도 몰라”… “납작 엎드려 ‘도와달라’ 할수밖에” 주민들 “철새로밖에 안보여” 전문가 “결국 유권자들만 피해”
최근 수도권의 한 지역에 전략공천된 더불어민주당의 C 후보는 지역 내 구·시의원들에게 지역 현안에 대한 ‘속성 과외’를 받고 있다. 이 후보는 “이 지역에서 살거나 통학, 통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지역 지리부터 숙원 사업 등을 전혀 모른다”며 “공약은 구·시의원들이 기존에 만들어 놓은 안들을 차용하려고 한다”고 했다.
여야 공천이 막바지를 향하는 가운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일부 인사들을 연고가 없는 지역에 ‘전략공천’ 또는 ‘단수공천’ 형태로 내리꽂으면서 이른바 ‘무연고 벼락공천’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서 “지역을 전혀 알지도 못하는 후보가 지역민 입장과 이익을 제대로 대변해주겠냐”는 반발이 나오는 것. 전문가들도 “거대 양당이 당장 선거 승리에만 몰두해 공천하다 보니 지역 유권자의 대표성이 침해되고 있다”며 “전략공천에도 지역민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뜬금없는 공천에 나도 당황”
대구 출신으로 서울 광진을에서 5선을 했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연고가 없는 경기 하남갑에 전략공천되자 일부 지역민들은 최근 온라인에서 ‘반(反)철새 릴레이’ 시위를 시작했다. 앞서 민주당은 추 전 장관의 공천 지역으로 서울 동작을, 중-성동갑, 용산 등을 검토했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좋지 않자 경기 하남갑으로 막판 결정했다. 주민들은 “하남을 아는 사람이 하남을 발전시킬 수 있다”, “하남은 철새가 싫다” 등 문구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고 있다. 한 30대 유권자는 “자기들이야 벼락공천받은 입장이지만, 유권자 입장에선 철새로밖에 안 보인다”며 “뜨내기 후보가 어떻게 나를 대변하나”라고 했다.
실제 무연고 지역에 공천된 후보들은 지역에 대한 이해가 사실상 거의 없다 보니 기존 지역 조직의 도움 없이는 선거 준비가 어려운 실정이다. 경기권에 공천된 국민의힘 D 후보는 “지역 선정 등 공천 과정이 3일 만에 이뤄졌고, 정신 없는 사이 전혀 생각지 못한 뜬금없는 지역으로 공천을 받았다”면서 “기존 현역 의원의 도움이 없이는 지역 파악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우선추천을 받은 국민의힘 E 후보는 “연고가 하나도 없는 지역이라 가고 싶지 않다고 지도부에 몇 번을 말했지만, 공천관리위원회에서 ‘당신이 가야 이 지역에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해 왔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영입인재나 정치 신인들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역에 공천되면 구·시의원들에게 납작 엎드려서 ‘한 번만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야 지도부는 ‘벼락공천’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없는 반찬을 갖고 그럴듯한 상을 차리려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새로운 인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대한 선거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판을 짜다 보니 지역 연고가 없는 사람을 공천할 수밖에 없다는 것. 민주당 지도부 의원도 “그렇다고 지역에서 커 온 인사 위주로 공천을 하면 ‘재미없는 공천’이라고 묻히지 않냐”며 “선거 구도와 인지도, 험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다 보니 연고 없는 인사도 공천되는 것”이라고 했다.
● ‘허술한 공약’의 피해자는 결국 유권자
선거 때마다 ‘무연고 벼락공천’이 반복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당이나 후보가 공천 및 출마를 할 때 당선 확률만 따지고 지역 비전, 포부는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추 전 장관, 이언주 전 의원 등 인사들을 영입한 뒤 마땅한 공천 지역을 찾지 못해 애를 먹다가 결국 무연고지에 공천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총선 공천의 포인트는 양당 모두 지역 유권자는 안중에 없고 지도부의 정략적 판단만 있다는 점”이라며 “지역 역사와 현안을 잘 모르고 갑자기 공천된 인사가 당선이 된들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그 피해는 오롯이 유권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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