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명순 여사 별세]
어제 향년 95세로… 11일 영결식
尹대통령 “YS의 정치 동반자” 애도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사진)가 7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손 여사는 이날 오후 5시 39분경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2015년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9년 만이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된다. 5일간 가족장을 치른 뒤 영결식은 11일 오전 10시에 엄수되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손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의 사이에 아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등 2남 3녀가 있다.
1929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손 여사는 이화여대 재학생이던 1951년 3월 6일 6·25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가 중매로 만난 김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손 여사는 YS가 서거한 2015년 11월까지 64년간 고락을 함께하며 묵묵히 남편 곁을 지켰다.
서울 상도동 자택에 찾아오는 YS 측근들에게 언제든 시래깃국에 갈치 한 토막을 내어온 특유의 내조법으로도 유명하다. 40여 년 야당 정치인 배우자 생활을 끝내고 1993년 2월 64세에 영부인이 됐으며, 대통령 재임 기간 공식적 역할 외에는 조용한 행보를 했다.
YS가 1983년 23일간 목숨을 걸고 신군부에 맞서 단식투쟁을 벌일 때는 외신기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실상을 알렸고, 당내 경선이 벌어질 때는 직접 대의원들을 찾아가 한 표를 호소하는 ‘행동파’ 면모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손 여사 별세 소식에 “보내드리는 마음은 안타깝지만, 하늘에서 김영삼 대통령님을 만나 행복하게 계시리라 믿는다”고 애도를 표했다. 윤 대통령은 “여사께서는 평생 신실한 믿음을 지키며 소박하고 따뜻한 삶을 사셨다. 신문 독자투고란까지 챙겨 읽으시며 김영삼 대통령님께 민심을 전하셨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정치적 동반자의 역할을 해주셨다”고 덧붙였다.
민주화 투쟁 내조… YS “가장 잘한 일은 아내 만난 것”
6·25전쟁때 부산서 YS와 결혼… 2015년 YS 서거까지 64년 함께해 ‘YS 23일 단식’ 외신에 직접 알리고… “니, 꿈이 대통령 아이가” 대권 독려 YS 재임때 참모부인 모임 없애고… 옷 상표 떼고 입어 구설수 안 올라 YS, 평소 “맹순아 잘자라” 손잡아줘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YS 재임 시절 참모 부인들과의 모임을 모두 없애고, 입는 옷의 상표를 모두 뗄 정도로 구설에 오르는 것을 피했다. 하지만 ‘정치 9단’ YS의 곁에는 항상 함께했다. 손 여사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 손님을 맞고 지지자들을 다독이며 민주화 투쟁의 길을 걷는 남편을 도왔다.
● YS의 ‘조용한 보좌관’
손 여사는 1929년 1월 2남 7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손 여사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3월 6일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가 YS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 재학 때였다. 당시 이화여대는 재학생의 결혼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손 여사는 주변의 도움으로 첫아이를 낳고도 졸업 때까지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고인은 YS가 서거한 2015년 11월까지 64년 동안 남편 곁을 지키며 묵묵히 내조했다. 남편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조용히 보좌하는 ‘내조형’ 스타일이었다.
손 여사는 YS 대권 도전에서도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손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음에도 1992년 대선에 본인이 직접 전국 유명 사찰과 유력 종단을 방문하며 YS 지지를 호소했다. 또 유세 현장에서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지기도 했다.
대통령 부인 시절 공식적인 역할 외에는 조용한 행보를 하던 손 여사이지만, 역대 대통령 부인 중 처음으로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에 참석해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를 만나기도 했다.
● YS “가장 잘한 일은 아내를 만난 일”
YS도 자신의 곁을 평생 지킨 손 여사를 끔찍이 아꼈다. YS는 생전에 상도동 자택 한쪽에 아내와 연애할 때 찍은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고 흐뭇한 표정으로 자주 바라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집쟁이 기질의 YS도 손 여사가 작심하면 고집을 꺾었다. 손 여사는 중요한 약속을 받아낼 때면 저녁상을 물린 직후 동갑인 YS에게 “니, 이리 온나!” 하면서 담판을 지었다고 한다. 손 여사가 “니, 꿈이 대통령 아이가”라고 반말로 내지르면 YS도 꼼짝 못 하고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손 여사에 대한 YS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일화는 많다. YS는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손 여사를 “맹순아(명순아), 맹순아”로 불렀다. 손 여사는 “애들도 있는데 왜 자꾸 이름을 부르냐”고 하면 “내가 안 불러주면 누가 맹순이 이름 불러 주노. 니도 내한테 ‘영삼아, 영삼아’ 해라”라고 농 섞인 말을 했다. 잠자리에 함께 누울 때는 늘 “맹순이 잘 자라” 하며 손을 꼭 잡았다. 동갑내기 아내는 그런 그에게 늘 깍듯한 존댓말을 했다.
YS는 2011년 결혼 60주년을 맞아 회혼식(回婚式)을 열어 “인생을 돌이켜보면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두 가지 있다”며 “하나는 동지들과 더불어 군사독재정권을 물리치고 민주화를 이룩해낸 일이고 다른 하나는 60년 전 손명순을 제 아내로 맞이한 일”이라고 말했다.
YS는 “김영삼의 오늘이 있음은 손명순의 한결같은 사랑과 내조 덕택이었음을 여기서 고백한다”며 “이 자리에서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참으로 고마웠어. 맹순이가 예쁘고 좋아서 60년을 살았지. 사랑하오”라고 말했고 손 여사에게 입을 맞췄다. 회혼식장에선 YS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손 여사를 “최고의 보좌관”이라고 치켜세우는 내용이 동영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YS는 1995년 2월 이전까지의 관례를 깨고 손 여사의 모교인 이화여대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생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이 국립대나 사관학교가 아닌 사립대 졸업식에 참석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YS는 “여러분의 선배 한 분과 가족을 이룬 나도 이화의 가족”이라고 말하며 손 여사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대통령 퇴임 이후 YS 부부는 힘든 나날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외환위기로 국가가 휘청거린 데다 차남 현철 씨는 재판 중이었다. 손 여사는 2015년 11월 22일 YS 서거 당시 상도동 자택에 머물고 있어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이날 아침 소식을 전해 들은 손 여사는 충격으로 손을 떨며 “춥다. 안 추웠는데 춥다”는 말로 상심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손 여사는 YS의 서거 직후부터 건강이 악화됐고 평소 타지 않던 휠체어를 탈 정도로 몸을 가누기 힘든 상태였다.
7일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손 여사는 2022년 1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폐렴으로 입원한 뒤 별세 전까지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국민의힘은 이날 애도 논평에서 “손 여사는 평생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거목이었던 김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키셨다”며 “오랜 세월 민주주의 투사로, 야당 정치인으로, 또 제14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버팀목은 반려자 손 여사”라고 했다. 이어 “손 여사와 김 전 대통령께서 함께 맨땅에서 일궈내 후대에 물려주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되새긴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8일 애도 논평을 낼 예정이다.
손명순 여사의 발자취
△1929년 1월 16일 경남 김해 진영에서 출생 △1949년 이화여대 약학과 수석 입학 △1951년 대학 3학년 재학 중 장택상 국회부의장 비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결혼 △1953년 이화여대 졸업 △1973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연구과정 수료 △1983년 김 전 대통령 신군부 맞서 단식투쟁 시 외신에 전화 걸어 실상 제보 △1993년 2월∼1998년 2월 14대 대통령 부인 △1995년 제4차 세계여성대회 기조연설 △2024년 3월 7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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