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러대사, 러 외교차관과 만나
구금된 한국인 관련 협조 요청
러, 인질외교 논란속 기류 변화
러시아에서 탈북민 구출 활동 등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 선교사 백모 씨가 올해 초 러시아 당국에 체포돼 구금된 가운데, 러시아는 그동안 우리 정부의 소통 노력에 제대로 응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백 씨 구금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협의에 나설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는 13일(현지 시간)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2021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정부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는 등 양국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반대로 북-러 관계는 밀착하면서 러시아 현지에서 탈북민이나 북한의 파견 노동자 등을 도운 한국인들에 대한 통제는 강화됐다. 그런 만큼 백 씨처럼 체포를 당하는 사례 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러 , 우리 정부 소통 노력에 응하지 않아”
백 씨 상황을 잘 아는 현지 소식통은 “그동안 현지 우리 영사관에서 러시아 당국과 소통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지만 러시아 측에서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면서도 “다만 최근 기류가 변화해 러시아 당국이 소통할 뜻을 전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 대사는 13일 모스크바 외교부 청사에서 루덴코 차관과 만나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 등을 위해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을 요망한다는 뜻을 전했다.
앞서 러시아는 백 씨를 체포한 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지난달 문서로 우리 정부에 백 씨 체포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최근 러시아 당국은 돌연 관영 매체를 통해 1월 간첩 혐의로 백 씨를 체포해 모스크바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수감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하면 러시아 측이 한국에 대해 일종의 ‘인질 외교’를 펼치는 것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이어가자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고, 이제는 구금한 백 씨를 인질로 한국 정부를 겨냥해 일종의 경고장을 날렸다는 것. 백 씨와 가까운 다른 소식통은 “러시아 당국이 백 씨 부부 외에도 현지 한국인의 휴대전화를 수거해 가는 등 폭넓게 수사를 벌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 개선 명분을 만들고자 오히려 이런 상황을 만든 것 아니냐는 해석도 외교가에선 나온다. 러시아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루덴코 차관이 지난달 초 방한하는 과정에서 우리 측과 대화의 물꼬를 트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대사 신임장을 제정할 땐 이도훈 주러대사에게 이례적으로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였다.
● 러, 파견 北노동자 통제 더욱 강화할 듯
러시아는 당분간 현지에서 한국인들의 탈북민 지원 활동 등을 삼엄하게 통제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선 “시기의 문제일 뿐 이런 사태가 벌어질 거란 관측은 많이 나왔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대북 소식통은 “러시아 현지에 파견돼 있던 선교사들이 최근 귀국하는 사례도 많았다”고 전했다.
북한이 이미 올해 초 러시아에 현지 탈북민 통제 강화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 당국은 향후 러시아에 더욱 강한 통제를 요청할 가능성도 크다. 현재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규모는 1만∼2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파견 노동자의 체류가 장기화되면서 탈북 러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런 만큼 이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 기류가 강화될 수 있다는 것. 정부 소식통은 “열악한 노동 여건과 체류 장기화로 탈북 동향이 늘어난 건 사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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