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소신파, 친명에 밀려 낙천
“애정어린 비판 용납않는 모습 걱정
재심 결과 상관없이 당에 남을것”
“더불어민주당은 생명체가 없는 ‘사막화’의 과정에 들어갔다. 조금 다른 의견, 애정 어린 비판조차 용납 못 하는 당으로 국민에게 비치는 것이 가장 걱정스럽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사진)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의 공천 파동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서울 강북을 재선 현역인 박 의원은 11일 치러진 경선 결선에서 친명(친이재명)계 정봉주 전 의원에게 패배해 탈락했다.
박 의원은 이재명 대표와 지난 대선 및 전당대회 때 연이어 경쟁했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국면에서 거듭 ‘불체포특권 포기’를 제안하는 등 당내 대표적 소신파로 꼽힌다. 그는 지난달 스스로 ‘현역 의원 평가 하위 10%’ 통보를 받은 사실을 밝히며 경선 과정 전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하위 10%는 경선 득표의 30%를 감산당한다.
박 의원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에 동조하지 않아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어야 한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조순형, 정대철 등 ‘성가시게’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끌어안았기에 야당 당수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까지 됐다”고 했다.
박 의원은 이날 당에 경선 결과에 대한 재심을 신청했다. 다만 “재심 결과에 관계없이 남아 당의 정상화와 재건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해 하위 10∼20%에 들고도 끝까지 경선을 치른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을 ‘민주당 바보들’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어제(12일) 저녁에도 낙천한 의원들끼리 ‘바보들의 모임’을 했다”며 “반듯하고 상식적으로 정치하는 ‘민주당 바보들’이 당이 사막화되는 과정에서도 끝내 상식과 바름을 토대로 합리성과 다양성을 되찾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패배의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그 길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했다.
지금 민주당과 달리… DJ, 비판하는 사람도 품고 대통령 돼”
민주당 박용진 의원 인터뷰 이상한 시스템 공천 탓 이기고도 져… 당 망가질 것 같아 가처분신청 안 해 조국당-진보당과 연대 잘못된 선택… 총선 이겨도 과정 평가 따로 있어야 DJ, 이해찬-노무현 등 내쳤다면… 야당 당수로서만 정치 마쳤을 것
13일 찾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책상 위에는 ‘국회도서관 이용 최우수상’ 상패가 놓여 있었다. 그는 “경선을 끝내고 오랜만에 사무실에 와보니 ‘국회도서관 입법지원 서비스를 폭넓게 활용해 뛰어난 의정 활동을 했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이 상을 줬더라”면서 “그런데도 우리 당에선 나보고 현역 의원 ‘하위 10%’라고 한다”며 웃었다.
이틀 전 치러진 결선에서 하위 10% 페널티로 득표 30%를 감산당하고 강성 친명(친이재명)계 정봉주 전 의원에게 패배한 박 의원은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기대한다”며 “다만 좋은 결과가 나쁜 과정까지 대변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총선 후 이재명 대표가 ‘사천 파동’뿐만 아니라 위성정당 창당에 따른 진보당과의 연합, 조국혁신당과의 사실상의 연대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총선 이후 반듯하게 정치하려는 사람들, 상식적으로 정치하려는 사람들, 국민 눈높이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 합리적인 민주당, 다양성의 민주당을 재건해 야권 전체를 통합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선 결과에 대한 소회는….
“내 예상치와 완전히 다른 결과여서 실감되지 않았다. 결선에서 권리당원(51.79%), 일반 국민(51.62%)으로부터 모두 절반 이상을 득표했다. 30% 감산만 아니었으면 당연히 이기는 결과였다. 당심과 민심에서 모두 이겼지만 이상한 ‘시스템 공천’ 때문에 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문제였다고 보는가.
“민주당이 신뢰를 잃었다. 하위 평가가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공천관리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는데 공관위조차 절차를 어기고 곧장 기각당했다. 임혁백 공관위원장이 내게 ‘나도 잘 모른다’는 취지로 말한 것도 황당했고, 점수를 모두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두 번이나 뒤집었다. 절차 위반 문제에 대해선 가처분 신청을 걸면 100% 승소할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까지 하면 당이 진짜 망가질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이 대표가 ‘박용진 의원도 공천 걱정 없는 당’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결과는 달랐다. 결선 후 이 대표로부터 혹시 연락이 왔나.
“그때도, 지금도 그 말에 큰 무게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락은 없었다. 다만 이 문제를 떠나서 정치인이라면 자기가 한 말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과 여건이 달라졌다고 말을 바꾸거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 많아지면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상황이 된다.”
―‘개딸’(개혁의딸) 등 강성 지지층을 공략해서 쉬운 길을 갈 수도 있었다.
“민주당이 사막화로 가는 길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막은 조용하고 어떤 생명체도 없다. 민주당을 이어온 생명은 다양성이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고 상생 작용을 일으켜 에너지를 만들어 왔다. 민들레도 피고 들꽃도 피고, 새 노랫소리도 들리고 풀벌레 소리도 들리는 생명 가득한 당이어야 한다. 우세종 하나로만 가면 단 하나의 유행병, 바이러스 침범으로 다 멸절돼 버린다.”
―민주당의 가장 문제는 무엇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DJ)도 비주류에게 공간을 열어줬다. ‘미스터 쓴소리’라고 불렸던 조순형, DJ에게 당권 도전까지 했던 정대철까지도 DJ는 품었다. DJ가 당시 자기를 비판하는 이해찬 전 대표에게도 공천을 안 주려고 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찾아가서 그건 안 된다고 결사반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DJ가 마지막에 ‘아, 맘대로 하시오’ 하고 수용했다고 한다. 만약 DJ가 이해찬, 노무현을 내쳤다고 한다면 그는 야당 당수로만 끝났을 것이다. 지금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사막화 과정에 접어들어, 조금은 다른 의견과 애정 어린 비판조차 용납 못 하는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전날 저녁 낙천한 의원 3명과 만났다고 했다. 그는 그 모임을 “하위 통보를 받고도 미련하게 당에 남아 끝까지 경선을 치르고, 온갖 구박과 모욕을 당한 바보들의 모임”이라고 부르며 “곧 사발통문을 돌려서 ‘민주당 바보’들끼리 만나보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이 사막화되는 과정에서도 상식과 바름을 갖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며 “지금은 비록 다 패배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도, 결국은 그게 맞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공천이 이재명 대표의 책임이라고 보는가.
“당 대표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책임지는 자리다. 이 대표가 선택한 길이라고 보고, 이번 총선 결과로 선택에 대한 책임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
―총선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어렵겠지만 민주당이 이기길 기대한다. 민주당 내의 비정상을 바로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선거를 통해 제1야당으로서 나라 전체의 비정상을 바로잡을 의무도 있다.”
―그럼 이 대표는 ‘내 선택이 맞다’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이 바보는 아니다. 좋은 결과가 반드시 나쁜 과정을 대신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쁜 과정에 대한 기억은 따로다. 과정에 대한 평가는 따로 있어야 한다.”
그는 민주당이 조국혁신당과 진보당과의 연대에 나선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조국혁신당의 20대 지지율이 0%, 30대 지지율이 1%(한국갤럽, 3월 5∼7일 전국 성인 1000명을 전화조사원이 인터뷰, 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 응답률 14.4%)였다. 우리가 지난 대선 때 20대 표심을 얻지 못해서 그렇게 고민하고 여러 번 사과했는데 또다시 잘못된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했다.
통합진보당 후신인 진보당이 민주당이 주도하는 야권 비례정당을 통해 원내 입성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도 “진보당의 인식과 시선도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라면서도 “그러나 국민이 지지하는 만큼만 의석수를 가지면 된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그 이상을 반영해 주려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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