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막말 리스크’ 파문 확산 우려에 도태우, 정봉주 후보의 공천을 전날 밤 급히 취소한 것을 두고 15일 정치권에선 “예고된 공천 참사”라는 평가와 함께 “‘제2의 도태우, 정봉주’가 얼마든지 추가로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유독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강성 지지층만 공략하는 극단적인 정치 문화가 판을 친 가운데, 여야 지도부가 이를 방치하고 공천 과정에서도 부실하게 검증해 공천 취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났다는 비판이다.
여야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마련한 경선 과정에서 강성 지지층의 입김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이전 총선에 비해 강화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지난해 공천을 위한 현역 의원 평가 기준에 ‘디지털 소통 실적’을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다. ‘의원 임기 시작 후 40개월 동안 올린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의 게시물이 1000건 이상이어야 만점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생기면서 현역 의원들의 강성 정치 유튜브 출연이 급증했다. 이에 질세라 원외 인사들도 지지층 사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정치 유튜브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출마 선언도 유튜브에서 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은 1월 ‘이동형 TV’에서 “이재명 대표와 함께 윤석열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출마 선언을 한 뒤 경기 용인병 경선에서 현역 정춘숙 의원을 제치고 공천을 받았다.
국민의힘도 당 텃밭인 서울 강남3구와 대구·경북, 강원, 부산·울산·경남에서만 당원 50%, 일반 국민 50%로 경선을 치렀다. 나머지 다른 지역은 일반 국민이 80%, 당원은 20%였다. 국민의힘은 “텃밭엔 당원 수가 많기 때문에 당원 조사로도 충분히 민심을 반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 발언과 ‘일베’ 게시글 공유 등이 논란이 돼 공천이 취소된 도 후보가도 대구 중-남에서 공천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하면 민심보다 강성 보수 지지층 당원들의 당심이 과하게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일반 여론조사도 성별, 연령 할당 없이 선착순으로 진행해 적극 지지층 혹은 동원자가 과표집됐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결국 경선에서 강성 지지층 입김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양당 경선이 워낙 지지층 중심으로만 돌아가다 보니 다 같이 ‘막말 감수성’이 낮아진 탓에 정작 본선을 앞두고 중도층 표심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정 경선에서 원내대표 출신 비명(비이재명)계 3선 박광온 의원을 꺾고 공천을 받은 친명(친이재명)계 김준혁 후보는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 입적과 관련해 “자승 죽음이 석연치 않다. 왜 자꾸 궁정동 안가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궁정동 안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 10·26 사태가 벌어졌던 곳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괜한 음모론을 부추길 수 있는 데다, 불교계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라며 “당에서 ‘전통문화특위’까지 만들어 불교계에 오래 공을 들여왔는데 정봉주 전 의원의 ‘조계종 김정은’ 발언 논란에 이어 또 한번 공든탑이 무너지게 생겼다”고 우려했다. 특히 김 후보가 해당 글을 쓴 시점은 당 총선기획단이 “막말과 설화 등 부적절 언행에 대해 철저하게 검증하고 공천 심사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때였다. 결국 당의 ‘부실검증’ 탓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 친명 양문석 “노무현은 불량품” 논란
김 후보 외에도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과 함께 주로 비명계 경쟁자들을 향한 막말성 공격을 이어왔던 후보들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 안산갑 경선에서 친문(친문재인) 현역 전해철 의원을 꺾은 친명 양문석 후보는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고 비하하는 표현) 뿌리를 뽑겠다”는 극언을 했다가 당직정지 3개월 징계를 받고도 공천장을 따냈다. 그는 친명 성향 유튜브에 출연해 “민주당 내 수박들 바퀴벌레들” 등의 혐오 발언도 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던 사실이 뒤늦게 다시 알려지면서 당 내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양 후보는 당시 한 온라인 언론사에 ‘이명박과 노무현은 유사불량품’, ‘미친 미국소 수입의 원죄는 노무현’ 등의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해당 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인 노 전 대통령은 불량품’이라고 비하하는가 하면,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 대해서도 “노무현 씨에 대해 ‘찬양’하는 일부 기억상실증 환자들”이라고 표현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통화에서 “노무현 정신을 부정하는 사람을 후보로 공천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민주당 지도부에 전달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울산에서 양 후보의 막말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여러분 반갑습니다”라고 동문서답으로 답했다.
이밖에 서울 은평을 경선에서 비명계 현역인 강병원 의원을 꺾고 승리한 친명계 김우영 후보도 과거 유튜브에서 강 의원을 겨냥해 “나이도 어린 놈의 자식”이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페이스북엔 강 의원 등 비명계 실명을 적고 영화 ‘서울의 봄’ 대사를 일부 인용해 “전차를 몰고 저 비겁자들의 대가리를 뽀개버리자”라고 썼다. 강 의원은 올해 1, 2월 두 차례에 걸쳐 당 공천관리위원회에 김 후보의 막말 및 증오발언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으나 사실상 묵살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공관위가 알고도 묵인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 막말 논란 친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공천
국민의힘에서 ‘막말 논란’을 일으킨 인사들도 이미 과거부터 여러 차례 같은 지적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당 지도부가 익히 알고도 강성 지지층 여론만 의식해 눈 감아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 중-남 공천이 취소된 도태우 후보는 극단적 발언을 이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2019년 8월 태극기집회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향해 “문재인의 기이한 행동을 볼 때 죽으면 그만하는가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고 했고, 2019년 2월 유튜브에선 “(5·18에) 북한 개입 여부가 문제된다라는 것이 사실은 상식”이라고도 했다.
막말 논란이 이어지는 장예찬 후보(부산 수영) 역시 당 지지층이 선호하는 강성 발언을 토대로 인지도를 높여왔다. 그는 지지층 내 인기를 토대로 지난해 청년최고위원에 당선됐고 이번 경선에서 현역 전봉민 의원(초선)을 꺾고 공천장을 따냈다. 장 후보는 이날도 “남자들은 룸(룸살롱) 두 번 갈 거 한 번만 가면 몇 명을 후원할 수 있는 거냐. 여자들은 백 좀 작작 사시고”라는 등의 과거 막말이 드러나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차 사과했다. 당 공관위 관계자는 “장 후보의 문제성 발언은 이미 알려져 있던 것”이라며 “지역 내 장 후보 지지율이 워낙 높은 게 (공천 취소 등 조치 여부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개혁신당도 막말 파문이 불거지자 충남 보령-서천의 이기원 후보에 대한 공천을 취소했다. 이 후보는 2017년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할머니가 강간당한 사실을 대자보로 붙여 놓는 꼴”이라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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