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 싱크탱크 ‘라이바’가 한반도 안보와 관련해 매우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라이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에서 전황을 상황도(狀況圖) 형태로 알려 주목받은 싱크탱크다.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최근에는 러시아 국방부 지원·통제 하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홍해 해상교통로 위기 등을 매일 브리핑하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와 중동 상황을 주로 다루는 라이바가 3월 7일(이하 현지 시간) 뜬금없이 한반도 상황도와 함께 “중국이 한미연합훈련에 맞서 폭격기를 띄우는 무력시위에 나섰다”고 발표했다.
●러 싱크탱크 “中, 한미연합훈련 맞서 무력시위”
이날 라이바는 “중국 H-6K 폭격기들이 최근 서해 상공에서 한국을 겨냥한 무력시위를 벌였다”며 “이번 훈련은 한국이 미국과 합세해 중국 인근 서해에서 실시한 ‘자유의 방패’ 훈련에 대한 대응”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라이바는 “한미연합군이 북한과 중국에 맞서 싸우기 위한 연합작전을 연습하고 있어 중국군도 이에 대응해 훈련을 실시한 것”이라며 중국이 어떤 의도로 폭격기를 띄웠는지도 상세히 설명했다.
라이바 측 설명을 종합하면 중국의 이번 훈련 시나리오는 다수의 폭격기를 출격시켜 한국 영토에 있는 표적에 정밀유도무기를 발사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훈련 의도를 설명하면서 라이바는 “미국이 주도하는 훈련 계획에 대북 타격 작전도 포함돼 있어 조만간 미사일 발사 같은 북한 당국의 대응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전망까지 내놨다. 그야말로 중국과 북한 입장에서 쓴 해설 같은 내용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라이바가 중국이 훈련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여부다. 라이바 주장대로 중국의 이번 훈련이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치자. 그렇다면 중국 폭격기들의 장거리 타격 훈련은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된 3월 4일부터 라이바의 게시물이 작성된 3월 7일 이전, 즉 3월 5~6일 이뤄졌을 개연성이 크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라이바가 자기네 상황도에 표시한 것처럼 폭격기 전력의 대규모 이동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개출처정보(OSINT)가 없었다. 필자가 항공기 위치탐지시스템(ADS-B)이나 폭격기가 비행한 상하이 비행정보구역(FIR)의 항공교통관제(ATC) 통신 내역은 물론, 상업용 위성사진 등의 OSINT를 확인한 결과다. 그럼에도 라이바는 중국 어느 기지에서, 어떤 기종의 폭격기가 각각 몇 대씩 이륙해 어떤 경로로 비행했고 무슨 훈련을 실시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상황도에 담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라이바가 공개한 내용은 OSINT가 아니라 중국 측 관제(官製) 정보일 공산이 크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위협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거나 한반도 주변에 군함·군용기를 보내 무력시위를 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이번 훈련처럼 그야말로 충격적인 도발을 공식 성명이나 관영매체 보도로 공개할 경우 상당한 외교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중국 측 이번 훈련 사실을 러시아가 사실상 선전매체로 활용하고 있는 싱크탱크에 전달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라이바가 상황도에 첨부한 해설에서 중국 측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내용을 담은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전후방 각지 한미연합전력 타격 목표
그렇다면 중국의 이번 도발은 구체적으로 어떠했을까. 라이바의 상황도에는 H-6K 폭격기 16대가 등장한다. H-6 시리즈는 옛 소련이 1950년대 만든 폭격기를 복제한 구닥다리 폭격기다. 다만 중국은 지속적인 성능 개량으로 이 폭격기를 ‘미사일 캐리어’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현재 운용되는 주력 모델은 H-6K·J·N으로, 모두 장거리 핵미사일 탑재가 가능하다.
중국이 이번 훈련에 동원한 폭격기는 장시성 우공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중부전구 예하 제36폭격기사단, 안후이성 루안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동부전구 산하 제10폭격기사단 소속 기체들이었다. 라이바 상황도를 보면 H-6K 폭격기는 우공 공군기지에서 2대, 루안 공군기지에서 6대, 상하이 충밍 기지에서 6대, 산둥성 르자오 공항에서 2대가 발진해 중국 연안을 따라 큰 원을 그리며 장거리 정밀유도무기를 투발했다. 목표는 한국 대통령실과 국방부·합동참모본부가 있는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령부·주한미군사령부·미8군사령부 등 미군 핵심 전력이 모인 경기 평택, 미 제7공군사령부와 한미연합공군 지휘소가 있는 오산공군기지, 주한미군의 군수지원부대인 제19원정지원사령부가 있는 대구, 주한미군 물류기지가 있는 경북 칠곡, 미군 제55보급창이 자리하고 유사시 증원 전력이 들어오는 부산이었다.
이번 훈련에 동원된 중국 폭격기는 대당 CJ-20 공중 발사 순항미사일 6발 또는 B-611 기반 공중 발사 탄도미사일 2발을 탑재할 수 있다. CJ-20은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 CJ-10의 공중 발사 모델로, 사거리가 2000~2500㎞에 달한다. 음속(마하) 0.8 속도로 저공 침투하는 장거리순항미사일이다. B-611 기반 공중 발사 탄도미사일은 ‘중국판 킨잘’로 불리는 사거리 500~600㎞급 미사일이다. 두 미사일 모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H-6K 폭격기 16대 모두 CJ-20 미사일 발사를 시뮬레이션했다면 최대 96발, B-611 기반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뮬레이션했다면 최대 32발이 가상 발사됐을 것이다.
중국은 전면전 상황에서 대량의 항공기·장거리 미사일을 동시에 투발하는 ‘기습·강압’ 원칙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로켓군 예하 제65기지의 6개 미사일여단도 H-6K 폭격기 편대의 미사일 가상 발사에 맞춰 대량의 미사일 비(非)사격 훈련을 실시했을 공산이 크다. 참고로 제65기지의 6개 미사일여단은 유사시 한반도에 대량의 미사일을 쏟아붓는 게 주된 임무로, 이때 동시에 투발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수는 108발에 달한다.
●유사시 中 미사일 탐지·요격 어려워
중국이 이번 도발 같은 패턴으로 유사시 한미연합전력을 타격한다면 막을 수 있을까. 중국이 서해상에서 이런 대규모 적대 행위를 했을 때 방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군 E-737 조기경보기가 초계 비행하는 낮에는 서해로 접근하는 중국 미사일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전투기 긴급 발진이나 지대공미사일 요격 등으로 대처가 가능하다. 반면 조기경보기가 비행하지 않는 야간에 이런 공격이 이뤄질 경우 한국군 대응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지상 배치 레이더와 방공무기가 북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해로 날아오는 중국군 미사일에 가장 먼저 대응해야 할 해군 제2함대의 방공 능력은 대단히 취약하다. 가장 강력한 전투함인 광개토대왕급(KDX-I) 구축함이나 대구급(FFX Batch-Ⅱ) 호위함은 반경 20㎞ 이내 공중 표적만 요격할 수 있다. 나머지 전투함들은 미사일 요격 능력이나 함대공미사일이 없어 대응 자체가 어렵다.
중국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을 파악해 전투기를 띄워도 문제다. 유사시 긴급 출격하는 F-5E/F 계열 전투기들은 너무 낡아 순항미사일을 탐지·추적·요격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FA-50 전투기는 레이더로 적 순항미사일을 탐지·추적할 수 있지만, 공대공 무장이 빈약해 효과적으로 요격하기 어렵다. KF-16과 F-15K 일부 기체가 유사시 8분 내 출격할 수 있는 전력으로 대기하고 있으나 그 수가 적다.
중국은 유사시 대규모 미사일로 한국을 공격할 의지를 갖고 있다. 게다가 이번 무력시위 훈련을 통해 그 능력을 점검하기까지 했다. 한국으로선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중국이 노리는 주된 목표는 한국 내 미군 거점이다. 유사시 이들 목표를 확실하게 파괴하기 위해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도 있다. 이번 중국 폭격기들의 가상 타격 표적이 된 서울에는 1000만 명, 오산과 평택에는 70만 명, 대구·칠곡에는 270만, 부산에는 340만 명이 산다. 중국이 핵미사일을 쏘면 그야말로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많은 국민이 잊고 있지만, 중국은 6·25 전쟁 당시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에 대적한 적국이었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수교 후 경제적으로 교류해왔지만 군사적 측면에선 여전히 적대 관계다.
●‘한국 공격용’ 中 핵미사일 수백 발
중국은 수십 년째 한반도만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의 단거리탄도미사일 수백 발을 한국에 겨누고 있다. 사실상 ‘한국 공격용’ 미사일로, 여기에 핵탄두도 실을 수 있다. 이번 도발에선 폭격기까지 앞세워 유사시 한국 전역을 초토화할 의지와 수단을 내비쳤다. 한국을 겨냥한 이 같은 중국의 적대 의지와 군사적 수단은 약화되거나 후방으로 철수된 적이 없다. 이는 한중 교류와 협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양국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나 마찬가지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파기하고 중국에 복속되지 않는 한, 어떤 외교정책을 취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얘기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이제 북한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공세적 억제 전략을 포함한 군사 대비를 본격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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