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을 욕할 수 있다. 그게 국민의 권리’라고 말했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민주당에 몸담고 국민을 대표하겠다는 정치인이 김대중 노무현을 부정한다면 이는 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노무현재단 정세균 이사장)
민주당이 ‘비명횡사’ 공천 논란에 이어 강성 친명(친이재명)계 양문석 후보(경기 안산갑)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발언’을 두고 또다시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가 양 후보의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 일축하며 공천 유지 방침을 밝히자 친노뿐 아니라 친문 진영에서 “민주당의 가치를 상징하는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사람을 어떻게 후보로 내세우냐”면서 당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 당내에서는 “이번 진영 갈등은 앞선 비명 대 친명 갈등과 달리 차기 전당대회까지 이어질 수 있는 구주류(친노·친문)와 현 주류(친명) 간 대결”이라며 “당 정체성 논쟁은 단순 공천 논란보다도 폭발력이 큰 사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李, 주말 내내 양문석 두둔
이 대표는 17일기자들과 만나 양 후보가 과거 노 전 대통령을 ‘실패한 불량품’ ‘매국노’ 등으로 비하했다는 논란에 대해 “저잣거리에서 왕을 흉보는 연극을 해도 왕이 잡아가지 않았다. 그게 숨 쉴 공간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부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이날 오전 양 후보를 직접 만나 사실상 자진 사퇴를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선거 지휘는 선대위가 하고 공천은 최고위가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선대위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취지다.
전날에도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표현의 자유”라며 양 후보를 옹호했던 이 대표는 15일 심야에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일부 최고위원들의 문제제기에 “정치인이 정치인에 대해 말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취지로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가 주말 내내 양 후보를 옹호하고 나서면서 징계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해찬 상임선거대책위원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선거 때는 그런 것에 흔들리면 안 된다. 그대로 가야 한다”고 이 대표의 결정을 두둔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양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저의 글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유가족과 노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많은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내일 봉하마을을 찾아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후보직 사퇴에 대해서는 “사퇴 여부 또한 당원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필요하면 전 당원 투표도 감수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당 일각에선 “강성 지지층에게 물어보면 답은 뻔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 친노·친문 “민주당 정체성 지켜야”
친명계의 ‘마이 웨이’에 친노와 친문 진영은 주말 내내 들끓었다. 노무현재단은 이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총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던 인사들이 등장하는 상황에 대해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재단 이사장인 정 전 국무총리도 전날 입장문에서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이기에 앞서 노무현의 동지로서 양 후보의 노무현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선대위원장도 입장문에서 “양문석, 김우영 등 막말과 관련해 논란이 있는 후보들이 있다”며 “당이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했다. ‘원조 친노’인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도 “깊은 슬픔을 느낀다.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친문 진영의 반발도 이어졌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바로잡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15년 전 가슴속으로 다짐했던 대통령님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이번만큼은 지킬 것”이라고, 윤건영 의원도 “가슴 깊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 어렵다. 당 지도부는 부디 민주당의 가치와 명예를 지켜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최근 ‘공천 결과 승복’을 내세웠던 친노·친문 진영이 양 후보의 공천을 두고 일제히 반발한 것을 두고 당내에서는 총선 이후 펼쳐질 차기 전당대회의 예고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 친문 관계자는 “이재명 사당화 논란이 거세지는 상황인 만큼 차기 전당대회에서도 당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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