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진출 과정에서 여성, 사회적 약자, 전문가 등의 등용문 역할을 해온 비례대표 취지가 외면받고 있다. 거대 정당의 비례대표 공천 심사 결과, 그동안 정치권에서 금기시돼 온 비례대표 재선 도전자들이 나타나면서 ‘기득권’ 유지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거에 비해 영호남 등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배려도 보기 힘들다. 새로운 정치를 외치던 제3지대에서는 ‘비례대표 과잉경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국민의힘)는 35명, 더불어민주연합(민주당)은 30명의 비례대표 명단을 구성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 이상 지지율을 기록 중인 조국혁신당은 20명으로 구성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미래 전신인 미래한국당은 19석, 민주연합 전신인 더불어시민당은 17석을 각각 획득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여야 주요 정당의 당선권을 15~20번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만, 야권의 경우 민주연합과 조국신당 등으로 인해 당선권 예측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비례대표는 정당의 총득표수 비율에 따라 당선자를 결정하는 선거제도로 소수정당의 사표를 방지해 의회 다양성을 확보하고, 청년·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등용문 역할이 기대된다. 지역주의 완화도 비례대표 역할로 꼽힌다.
이번 비례대표 명단에서는 이같은 취지가 무색됐다는 지적이다. 국민의미래 15번에 김예지 의원, 민주연합 6번에 용혜인 의원이 배치되면서 등용문이 아닌, 현역 의원 기득권 유지 장치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 의원의 비례대표 재선 도전을 향한 진보진영의 비판은 이어졌고, 여권에서는 친윤(친윤석열) 핵심으로 꼽히는 이철규 국민의힘 공관위원이 공개적으로 비례대표 재선을 주지 않는 관례를 어겼다며 김 의원을 직격하는 등 진영 내에서도 논란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여성이다. 거기다 김 의원은 장애인”면서도 “현역 의원인 두 사람이 사회적 약자라는 데 동의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지역주의 완화에도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미래의 경우 김화진 국민의힘 전 전남도당위원장은 22번, 주기환 전 광주시당 위원장은 24번에 이름을 올리면서 당선권 밖에 배치됐다. 비례대표 당선권 몫의 25%를 호남인사로 추천하기로 한 규정은 무시됐고, 주 전 위원장은 이에 반발해 사퇴했다.
민주연합에서도 험지 TK(대구·경북) 몫인 임미애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은 13번, 조원희 전국농업인위원회 수석부의장은 22번, 서재헌 대구시당 청년위원장은 26번에 배치됐다. 조국신당 바람으로 이들은 당선권 밖으로 분류된다.
후보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미래의 경우 과거 총리실에서 징계받은 이력이 있는 이시우 전 총리실 서기관이 17번에 배치돼 논란이다. 비대위원이 다수 임명되면서 계파논란이 발생했다. 당 인재영입위원이 포함되면서 적절성 논란도 나온다.
민주연합은 공천 과정에서 종북·반미 논란이 불거지면서 시민사회와 민주당 간 갈등이 드러났고, 최종 발표 이후에도 이 논란은 진행 중이다. ‘정권심판론’을 내세운 조국신당은 과거 윤석열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인사를 배치하면서 당 정체성을 드러냈지만, 정치적 보복이란 지적을 받는다.
주요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비례대표 심사가 남은 개혁신당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과거 ‘김종인 사용설명서’ ‘대한민국 비상대책위원장 김종인’ 등의 책을 쓴 곽대중 대변인도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는데, 현재 공천을 책임진 김종인 공천관리위원장을 높이 평가한 책을 써 당 결정에 따라 형평성 논란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곽 대변인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과거 주사파 활동을 했다가 전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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